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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억 빚 극복한 백종원, 좋아하는 일 시작하라
위키트리빽다방, 새마을식당, 홍콩반점, 한신포차. 전국 골목 어디서든 그의 브랜드를 마주칠 수 있고, TV를 틀면 그의 얼굴을 본다. 더본코리아 대표로서 수십 개의 외식 브랜드를 운영하며 연매출 수천억 원을 거두는 지금의 백종원만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한때 17억 원의 빚을 지고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며 홍콩으로 건너갔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 실패를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수많은 실패를 딛고 59세가 된 백종원이 "지금부터라도 꼭 하라"고 조언하는 한 가지는 무엇일까?

1966년 충남 출신인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중고차 딜러로 장사를 시작했다. 2주 만에 차 6대를 팔았을 정도로 재능이 있었지만, 거리가 조작된 차인 줄 모르고 팔았다가 고객에게 뺨을 맞는 일을 겪는다. 2019년 KBS2 '대화의 희열2' 출연 당시 그는 이 경험을 이렇게 회상했다.
"장사에 대한 책임, 소비자에 대한 책임, 제품에 대한 자신감. 장사 철학이 처음 생겼다."
뺨을 맞은 그 순간이 오히려 그에게는 장사 철학의 출발점이 됐다.
이후 연세대학교에 진학한 백종원은 1학년 때 압구정의 한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포장 배달이 막 생기던 시절, 직접 손으로 쓴 전단지 200장을 아파트에 돌렸더니 주문이 폭주했다. "내가 떠올린 전략에 반응이 온 게 쿵쾅거리더라. 그런 게 장사의 매력"이라고 했던 그는 결국 할머니로부터 가게를 통째로 인수했다.

1993년 인테리어 사업과 쌈밥집을 동시에 운영하던 백종원은 지인으로부터 미국산 건축자재 독점 수입 제안을 받았다. 목조주택 붐이 일던 시기였고, 사업은 초반에 잘 풀렸다. 건설회사까지 세웠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허세가 있어서 양복 차려입고 해외 오가는 사업가가 꿈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1997년 IMF가 터졌다. 계약서에 쓰인 평당 단가대로 집을 지어야 하는 상황에서 자재비가 치솟으면서 짓는 족족 적자가 났다. "도망갔어야 했는데 도망도 못 갔다"는 말처럼, 그는 줄어드는 게 아니라 불어나는 빚을 감당해야 했다.
최종적으로 쌓인 빚은 무려 17억 원에 달했다.

그는 남아있던 쌈밥집에 채권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남은 건 이 식당 하나인데 나눠 가지면 얼마 안 남는다. 기회를 준다면 이 식당으로 일어나서 빚을 꼭 갚겠다."
"그때 일은 못 잊는다. 가장 창피했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고 그는 방송에서 말했다. 급한 빚은 어음 연장에 일수, 사채까지 써가며 막았다.

그는 극단적 선택을 위해 홍콩으로 떠났다. 침사추이 부두에서 페리에서 뛰어내리려 했지만, "내가 수영을 좀 해서 건져지면 망신만 당할 것 같더라"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건물에 올라가려 했지만 홍콩 고층빌딩마다 문이 잠겨 있었다.
그렇게 발이 묶인 그의 눈에 들어온 건 거리 식당에 주렁주렁 걸린 오리였다.
"일단 먹어보자 하고 먹었는데, 먹는 것보다 다 신기하고 맛있더라. 안 되겠다, 내일 해야겠다. 한 이틀 먹다 보니까 이 아이템 갖고 뭔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죽으러 간 홍콩에서 살아 돌아온 이유가 음식이었다.

골목식당 방송에서 그는 당시를 이렇게 털어놓았다. "사업 망해서 죽으려고 하다가 다시 가게 대청소부터 시작했다. 전단지 돌리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아파트 수위분들한테 멱살 잡히고 자전거 타고 쫓아가다가 망신당하고…"
"그걸 악으로 풀었다. 어떻게 하든 손님 더 오게 하려고."
17억 빚을 다 갚은 뒤 그는 하나씩 브랜드를 만들어 나갔다. 본가, 새마을식당, 홍콩반점, 빽다방, 한신포차. 지금 더본코리아가 운영하는 브랜드만 수십 개다.

"절대적으로 지금부터라도 좋아하는 걸 하라."
건설업 실패에 대해 그는 후회한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경험이 요식업으로 완전히 돌아오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그는 50대 이후의 전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일관된 메시지를 전해왔다.
희망을 보고 살아야지, 과거에 사로잡혀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안 된다. 이건 골목식당에서 사업 실패로 좌절한 사장에게 건넨 말이기도 하지만, 돌아보면 20년 전 홍콩에서 음식 한 점에 목숨을 건진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1966년생, 올해 59세인 그가 지금도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방송에 나오고, 새 브랜드를 내는 원동력이 바로 이 한 문장에 모두 담겨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