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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신뢰의 조건, 현장 소통과 신중한 언행
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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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 안팎에서 가장 논란이 된 이슈는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의 ‘국민배당금’ 관련 발언이었다. 초과세수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국민 환급을 시사하는 듯한 언급이 나오자 시장은 즉각 술렁였고, 대통령실은 곧바로 “확정된 바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반도체 호황과 증시 급등, 법인세 회복으로 나라 곳간이 예상보다 빠르게 채워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세수가 더 걷힌다고 해서 곧바로 ‘국민배당’으로 이어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공직자의 말은 단순한 의견이 아니다. 시장을 움직이고 기대를 만들며 때로는 혼란을 키운다. 같은 이유로 공직자의 언어는 무거워야 한다. 확인되지 않은 정책일수록 신중해야 하고, 국민 삶과 직결된 사안일수록 더 절제돼야 한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전혀 다른 방식의 행보도 있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전북 익산의 온라인 스튜디오에서 ‘일일 쇼호스트’로 나선 것이다. 양파 공급과잉과 가격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는 농가를 돕기 위해 라이브커머스 방송에 직접 출연해 소비를 독려했다. 단순한 메시지 전달을 넘어 양파 효능과 보관법까지 설명하며 판매에 나섰다.

냉정하게 보면 장관이 쇼호스트로 나선다고 양파 가격이 극적으로 반등하지는 않는다. 농산물 가격은 수급과 소비, 유통 구조가 맞물린 복합 문제다. 공급과잉 역시 라이브커머스 몇 차례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그러나 국민은 항상 ‘효율’만으로 정책을 평가하지 않는다. 가격 폭락으로 생계가 흔들리는 농민 입장에서는 주무 부처 장관이 현장에 내려와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신호 자체가 의미를 갖는다. “정부가 알고 있다” “외면하지 않는다” “같이 고민하고 있다”는 메시지는 정책 못지않게 중요한 신뢰의 출발점이다.

반대로 현장과 떨어진 채 숫자와 정치적 수사에 기대는 정책은 쉽게 공허해진다. 진정성은 주관적인 개념이지만 국민은 생각보다 민감하게 공직자의 태도를 읽어낸다.

최근 정책을 둘러싼 논란 역시 상당 부분은 입안자가 얼마나 ‘현장’을 이해하고 접근했는지에 따라 불필요한 잡음을 줄일 수 있었던 사안들이다.

부동산 정책도 다르지 않다. 정부는 ‘실수요자 보호’를 강조하지만 무주택 서민에게 중요한 것은 집값이 실제로 안정되는지, 공급이 체감되는지다. 발표 때마다 수치와 계획이 쏟아져도 현장에서 변화를 느끼지 못하면 신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물가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는 중동발 충격에 대응해 최고가격제, 유류세 인하, 할인 지원 등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국민은 브리핑 자료 속 수치보다 집 앞 주유소 기름값과 마트의 채소값으로 정책 효과를 판단한다.

공직자의 진정성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현장을 알고 있는지, 국민이 답답해하는 지점을 실제로 체감하고 있는지에서 드러난다. 정책 실패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저 사람들은 우리 삶을 모른다”는 냉소일 것이다.

특히 양극화와 자산 격차가 심화된 지금, 공직자의 태도는 정책 못지않게 중요한 변수다. 국민은 누가 옳은 말을 했느냐보다 누가 자기 현실을 이해하려 하는지를 본다. 같은 정책도 어떤 자세로 설명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온도는 크게 달라진다.

결국 공직자의 진정성은 대단한 희생이나 연출에서 나오지 않는다. 국민은 완벽한 정책보다 자기 삶을 이해하려는 정부를 원한다. 그 진심은 브리핑이나 SNS의 문장보다 현장에서의 작은 행동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말을 줄이고, 현장에 더 가까이 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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