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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금리 급등에 증시 불안, 한은 4회 인상 가능성
에너지경제
인공지능(AI) 기대감 속에 고공행진을 이어온 글로벌 증시가 최근 급격히 흔들리면서 향후 시장 흐름에 관심이 쏠린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장기화에 따른 고유가발(發) 인플레이션 우려로 글로벌 채권 금리가 급등하자 증시 전반에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AI 산업 중심의 성장 흐름은 이어질 것으로 보면서도 글로벌 채권시장을 향후 증시의 최대 리스크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17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따르면 뉴욕증시 3대 지수는 지난 한 주간 모두 숨 고르기 장세를 나타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0.13% 상승하는 데 그쳤고, 나스닥종합지수와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약보합으로 마감했다. 특히 나스닥지수는 7주 만에 처음으로 주간 약세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 15일에는 기술주를 중심으로 매도세가 거세게 나타났다. 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는 각각 1% 넘게 하락했고, 엔비디아(-4.42%)를 비롯해 마이크론(-6.69%), 인텔(-6.18%), AMD(-5.69%) 등 AI 반도체 관련주들이 일제히 급락했다.
한국 증시 역시 충격을 피하지 못했다. 코스피는 이날 장중 사상 처음으로 8000선을 돌파했지만 이후 6% 가까이 급락하며 7500선마저 내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8.61%, 7.66% 하락했다. 특히 코스피의 장중 고점(8046.78)과 저점(7371.68) 차이는 675포인트로 역대 최대 변동폭을 기록했다. 종전 기록은 지난 3월 4일의 612.67포인트였다.
◇ 美·英·日 국채금리 급등…“미중 정상회담 실망"
시장에서는 최근 글로벌 채권시장 불안이 위험자산 투매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미국 30년물 국채 금리는 이날 하루에만 11bp(1bp=0.01%포인트) 급등한 5.128%를 기록해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7월 이후 약 19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글로벌 채권 벤치마크인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와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물 국채 금리도 각각 13.8bp, 9bp 상승해 4.597%, 4.08%를 기록했다. 채권 가격은 금리와 반대로 움직인다.
주요 선진국 국채 금리도 동반 급등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영국 30년물 국채 금리는 5.8%를 넘어 1998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일본 30년물 국채 금리는 사상 처음으로 4%를 돌파했고, 10년물 국채 금리 역시 1997년 이후 최고치인 2.7%대까지 상승했다. 독일과 스페인, 호주에서도 장기 국채 금리가 일제히 올랐다.
정치 불안, 재정악화 우려 등 각 시장별 배경은 조금씩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 전쟁 여파로 국제유가가 급등한 가운데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까지 장기화하면서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발표된 미국 4월 물가지표들이 잇따라 예상치를 웃돌면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추가 긴축에 나설 가능성까지 시장에서 반영되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이란 전쟁과 관련해 뚜렷한 돌파구를 만들지 못한 점도 시장 불안을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바클레이스의 에마뉘엘 코 유럽 주식전략 총괄은 “인플레이션 재확산이 이미 타격을 입은 채권시장 부담을 더욱 키우고 있다"며 “영국의 정치 위기가 채권시장 위험 프리미엄을 끌어올렸고, 이런 스트레스가 선진국 채권시장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JP모건자산운용의 케이 허르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s)이 다시 돌아온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채권 자경단은 정부의 재정적자가 커지거나 인플레이션 위험이 가중될 때 국채를 대거 매도하는 투자자들을 일컫는다.

◇ \'AI 낙관론\' 안 끝났지만…채권 금리가 최대 변수
시장에서는 이번 조정이 단기적인 숨 고르기에 그칠지, 아니면 금리 상승을 반영한 본격적인 자산 재평가의 시작이 될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투자자들의 AI 낙관론 자체는 여전히 강한 분위기다. 블룸버그가 미국·유럽·아시아 지역 자산운용사 32곳을 대상으로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80%는 향후 3~6개월 동안 주식이 채권이나 원자재 등 다른 자산군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절반가량은 최근 S&P500 상승세를 이끈 초대형 기술주와 AI 관련주를 가장 유망한 투자처로 꼽았다.
그러나 응답자 응답자 대다수는 30년물 미 국채 금리가 5%선 위에 계속 지속될 경우 증시 상승세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둔화)과 주요 중앙은행들의 매파적 기조 역시 현재 증시가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위험 요소로 꼽혔다.
RBC캐피털마켓의 로리 칼바시나는 미 10년물 국채 금리마저 5%까지 오를 경우 증시에 대한 강세론이 흔들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역사적으로 이 수준의 금리가 주식 밸류에이션을 압박해왔다고 설명했다.
나틱시스 웰스매니지먼트의 브누아 펠루아 CIO는 “주식시장이 지나치게 낙관적인 시각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있다"며 “금리가 계속 상승할 경우 투자자들은 결국 현실을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기업 실적이 증시 향방을 좌우는 핵심 변수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웰스파고 투자연구소의 사미르 사마나는 “현재 투자자들의 핵심 투자 논리는 결국 기업 실적"이라며 “만약 실적 성장세가 꺾일 경우 더 많은 투자자들이 주식을 매도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 1분기 S&P500 기업들의 주당순이익(EPS)은 전년 동기 대비 27% 넘게 증가하며 시장 예상치를 두 배 이상 웃돌았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나 코로나19 이후 회복 국면을 제외하면 2004년 이후 가장 강한 성장세다.

◇ 한은, 공격적 금리인상 예고?…韓 채권시장도 흔들
한국 역시 글로벌 채권 금리 상승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의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주 한때 3.77%까지 오르며 2023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저점 대비 상승 폭은 86bp를 넘어섰다. 블룸버그는 이를 글로벌 시장 전반의 고금리 장기화 흐름과 맞물린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씨티그룹은 향후 1년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전망을 기존 25bp씩 두 차례에서 네 차례로 상향 조정했다. iM증권과 신영증권은 국고채 3년물 금리가 각각 4%, 3.8% 수준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트레이더들 역시 향후 1년간 한국은행이 약 120bp 수준의 추가 긴축에 나설 가능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시장에서도 한은이 기준금리를 최소 4차례 인상할 가능성을 예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은은 지난달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2.5%로 동결한 바 있다.
iM증권의 김명실 연구원은 “시장에서는 내년 한국 경제 성장률이 2% 중반대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이 확산하고 있다"며 “이는 한은이 기존에 제시했던 1.8% 성장률 전망치를 웃도는 수준으로 채권시장에는 핵심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은 대만, 일본과 함께 AI 투자 확대에 따른 반도체 경기 호황으로 물가 압력이 커지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반도체 업황 개선과 AI 투자 확대가 한국 경제 성장 구조 자체를 바꾸면서 현재 금리 수준만으로는 과열된 경기를 진정시키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이 채권시장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바클레이즈의 손범기 이코노미스트는 보고서에서 “AI 투자 지출의 폭발적 증가가 한국 수출에 혁신 충격을 일으키고 있다"며 “반도체와 AI 호황이 국내총생산(GDP)을 끌어올리는 효과는 마치 새로운 유전을 발견한 것과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바클레이스는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을 2.6% 수준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한은이 지난 2월 제시한 2.0% 전망치를 웃도는 수준이다. 씨티그룹 역시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9%에서 3.0%로, 2027년 전망치는 2.4%에서 2.8%로 각각 상향 조정했다.
강한 반도체 수출은 세수 증가로도 이어지고 있다. 씨티그룹은 한국 정부의 추가 법인세 수입이 올해 하반기 약 20조원, 2027년에는 120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정부 재정지출 확대 여력을 키워 성장률과 채권 금리를 동시에 끌어올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신영증권의 조용구 연구원은 “채권 금리 상승세가 아직 정점을 찍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고유가의 2차 파급 효과와 강한 성장세, 세수 증가에 따른 추가 재정지출 가능성 모두 채권시장에는 부정적인 요인"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최근 금리 상승세가 과도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골드만삭스는 시장이 네 차례 이상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지나치다며 지정학적 긴장이 완화될 경우 금리도 안정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