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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미스 2호 기록 경신, 유인 심우주 탐사 재개
위키트리달의 뒷면을 돌아 다시 지구로 향한 이 여정은 54년 전 멈춰 섰던 아폴로 시대의 경계를 넘어서는 장면이기도 하다. 한동안 멈춰 있던 유인 심우주 탐사의 시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1968년 아폴로 8호가 처음으로 달 궤도에 진입했을 당시만 해도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인류가 곧 달에 머무르고 기지를 세우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 기세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꺾였고 달은 ‘도달했던 곳’이면서도 동시에 ‘다시 쉽게 갈 수 없는 곳’으로 남게 됐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성과에서 한 발 물러나 1960년대 우주 개발 경쟁의 본질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당시 달 탐사는 과학적 성취라는 이름을 내세우고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냉전 체제 속에서 벌어진 미국과 소련의 정치적·군사적 경쟁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1968년으로 시계를 되돌리면 우리가 흔히 ‘달 탐사의 황금기’라 부르는 장면의 출발점이 보인다. 그해 크리스마스이브 인류 최초로 달 궤도에 진입한 아폴로 8호는 지구로 한 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지구 돋이(Earthrise)’라 이름 붙여진 이 이미지는 칠흑 같은 우주를 배경으로 달의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푸른 지구의 모습을 담아내며 전 세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국경도 이념도 보이지 않는 하나의 행성으로서의 지구를 처음으로 마주한 순간이었다는 점에서 이 사진은 인류의 시선을 바꿔놓은 상징적 장면으로 기록됐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우주 개발을 국가적 과제로 격상시켰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1961년 미 의회 연설에서 “이 나라가 10년이 끝나기 전에 인간을 달에 보내고 무사히 귀환시키겠다”고 선언한 이후 달 착륙은 사실상 국가 전략의 핵심 프로젝트로 추진됐다.

막대한 자원이 투입된 만큼 달을 향한 여정은 빠르게 속도를 냈다. 미국은 머큐리 계획으로 유인 우주비행의 기반을 다지고 제미니 계획을 통해 장기 체류와 우주선 도킹 우주 유영 등 달 착륙에 필요한 기술을 축적했다. 당시 기준으로는 전례 없는 속도였고 실패와 사고를 겪으면서도 달 착륙을 향한 일정은 계속 이어졌다.

이러한 준비의 정점에서 등장한 것이 아폴로 계획이었다. 초대형 로켓 ‘새턴 V’를 기반으로 한 아폴로 우주선은 인류를 지구 궤도 밖으로 보내 달까지 향하게 할 수 있는 핵심 시스템이었다.
다만 아폴로 계획이 곧장 성공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1967년 1월 지상 시험 중 아폴로 1호 화재 사고가 발생해 거스 그리섬 에드 화이트 로저 채피 등 우주비행사 3명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이 사고로 NASA는 유인 발사를 한동안 중단하고 우주선 내부 구조와 배선, 해치, 산소 환경 등 안전 설계를 대대적으로 손봐야 했다.
비극적인 사고 이후 아폴로 계획은 더 신중한 검증 과정을 거쳤다. 무인 시험과 지구 궤도 시험을 거쳐 1968년 아폴로 7호가 처음으로 유인 지구 궤도 비행에 성공했다. 같은 해 아폴로 8호는 인류 최초로 달 궤도에 진입하며 지구 궤도를 넘어서는 유인 비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처럼 달 탐사는 과학기술 경쟁을 넘어 체제 우위를 입증하기 위한 상징적 무대였다. 경제적 부담과 기술적 위험에도 불구하고 우주 개발이 국가적 우선순위로 설정된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이는 인류 전체의 성취로 기록됐지만 동시에 미국이 냉전 경쟁에서 결정적 우위를 점했다는 정치적 메시지로도 해석됐다.

아폴로 13호는 비행 중 산소탱크 폭발 사고로 달 착륙에 실패했지만 승무원들이 달 궤도 인근을 돌아 지구로 무사히 귀환하면서 또 다른 의미의 생환 기록을 남겼다. 그 외 임무들은 달 표면 탐사를 수행하며 인류 최초이자 지금까지 유일한 ‘유인 달 착륙’ 기록을 남겼다.
반면 소련은 달 궤도 진입과 무인 탐사에서는 성과를 냈지만 끝내 유인 달 착륙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소련은 미국과 경쟁하며 ‘N1 로켓’을 기반으로 한 유인 달 착륙 계획을 추진했지만 핵심 발사체가 연속적으로 폭발하며 개발 자체가 좌초됐다. 이후 루나(Luna) 시리즈를 통해 무인 탐사선 착륙과 시료 채취에는 성공했지만 사람을 달에 보내는 단계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여기에 더해 경쟁의 또 다른 축이었던 소련 역시 점차 동력을 잃어갔다. 1970년대 들어 경제적 부담이 커지고 우주 개발 우선순위가 낮아지면서 유인 달 착륙 계획은 사실상 중단됐다. 이후 소련은 우주정거장(살류트, 미르) 중심의 전략으로 방향을 전환했고 달 탐사는 점차 후순위로 밀려났다.
결정적인 변화는 냉전 체제 자체의 붕괴였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우주 개발을 둘러싼 양극 경쟁 구조도 사실상 막을 내렸다.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추진되던 대규모 유인 탐사의 명분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워졌고 미국 역시 막대한 비용이 드는 달 탐사를 계속 이어갈 이유를 찾기 힘들어졌다.
그렇게 냉전 경쟁이 막을 내리자 달 탐사를 계속 이어가야 할 명분도 빠르게 약해졌다. 가장 큰 변화는 ‘왜 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아폴로 시대에는 소련보다 먼저 도달해야 한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지만 경쟁이 끝난 이후에는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달에 다시 갈 이유를 설득하기 어려워졌다. 여기에 경제적 부담과 대중의 관심 감소까지 겹치면서 달 탐사는 자연스럽게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됐다.

기술적 한계라기보다 ‘효율성’의 문제도 컸다. 이미 달에 도달하고 착륙하는 데 성공한 상황에서 같은 방식의 임무를 반복하는 것은 새로운 성과를 만들어내기 어려웠다. 실제로 아폴로 후반으로 갈수록 대중의 관심과 정치적 지지도 점차 줄어들었고 일부 계획된 임무가 취소되면서 달 탐사의 동력도 함께 약해졌다.
이런 흐름 속에서 미국의 우주 전략도 방향을 틀었다. 달과 같은 심우주보다는 지구 근궤도에서의 활용에 집중하는 쪽으로 이동했다. 그 결과가 우주왕복선 프로그램과 국제우주정거장(ISS) 체제였다.
결국 달은 인류가 한 차례 도달했던 공간이면서도 막대한 비용과 낮은 실용성 그리고 사라진 경쟁 명분 때문에 다시 쉽게 향할 수 없는 장소로 남게 됐다. 기술의 문제라기보다 그 기술을 다시 활용할 필요성과 환경이 충분히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 공백은 더욱 길어졌다.

가장 큰 변화는 달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과거에는 도달 자체가 목표였다면 이제는 그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 됐다. 특히 달 남극 지역에는 얼음 형태의 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를 산소와 수소로 분해해 연료로 활용하려는 구상이 떠오르고 있다. 달이 단순한 탐사의 대상이 아니라 더 먼 우주로 나아가기 위한 ‘전진 기지’이자 일종의 ‘우주 주유소’로 재해석되고 있다.

정치적 환경도 달라졌다. 냉전 시기처럼 단일 경쟁 구도가 아닌 미국·중국·유럽 등 여러 국가가 동시에 달을 향하는 다극 경쟁 체제로 바뀌었다. 단순한 승부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우주 공간에서의 영향력과 자원 활용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흐름 속에서 NASA의 아르테미스 프로그램도 진행되고 있다. 아르테미스는 달 궤도 비행과 착륙, 장기 체류로 이어지는 단계적 계획이다. 달에 다시 가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이후 화성 등 더 먼 심우주 탐사를 준비하는 성격도 함께 갖고 있다.
아르테미스 1호가 무인 시험 비행이었다면 아르테미스 2호는 약 50여 년 만에 인간을 다시 달 근처로 보내는 유인 비행 단계다. NASA는 이를 통해 오리온 우주선의 유인 비행 능력과 심우주 항행 절차를 확인한 뒤 다음 단계에서 실제 착륙에 필요한 시스템 검증으로 넘어간다는 계획이다.

실제 유인 달 착륙은 그다음 임무인 아르테미스 4호에서 2028년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이 임무에서는 우주비행사들이 오리온 우주선에서 민간 달 착륙선으로 옮겨 타고 달 표면으로 내려가는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착륙 후보지는 물이 얼음 형태로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 달 남극 지역이다.
앞으로의 달 탐사는 다시 달에 닿는 것을 넘어 안전하게 오가고 머무르며 더 먼 우주로 나아가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세기 전 아폴로가 ‘도착’의 시대를 열었다면 아르테미스는 그 이후를 준비하는 새로운 달 탐사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