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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영화제 개막작 나의 사적인 예술가, 켄트 존스 감독 내한
데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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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2007년 전주에서 첫 초청 이후 일정 안 맞아 계속 못 와…개막작으로 초청받아 더블로 기뻐"

"중요한 건 받아들이는 자세. 누구나 원하는 걸 다 이루지 못해. 이뤘다는 생각도 환상일 수도"

"AI 논의, 도구는 도구일 뿐이고 어떻게 쓰느냐는 인간의 몫"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나의 사적인 예술가'(Late Fame)는 과거에 머물러 있던 한 예술가의 시간을 흔들어 깨우며, 그가 마주하게 되는 현재를 따라간다.

영화 중심에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는 두 배우가 있다. 블록버스터와 독립영화를 넘나들며 거장 반열에 오른 윌렘 더포가 한때 시인이었던 주인공 에드를 연기하고, '패스트 라이브즈'의 그레타 리가 그와 조우하는 글로리아 역을 맡아 정교한 앙상블을 이뤘다.

이들을 한데 모은 이는 켄트 존스 감독이다. 그는 영화평론가 출신으로, '필름 코멘트'의 편집장을 지내며 여러 세대에게 영화적 통찰을 전해왔다. 이후 마틴 스코세이지와 협업하며 '나의 이탈리아 여행기', '히치콕 트뤼포' 등 영화사를 조망하는 깊이 있는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장편 극영화 데뷔작 '다이앤'(2018) 이후 오랜 기다림 끝에 내놓은 이번 신작 역시 그의 통찰력 있는 예술적 식견이 녹아있다.
영화는 70세를 목전에 둔 우체국 직원 에드의 일상을 비춘다. 과거 보헤미안 문화의 중심지였던 뉴욕에서 시인으로 활동했던 그는 이제 시를 잊은 채 고독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옛 시집을 발견한 젊은 예술가 무리가 그를 '재발견'된 거장으로 추앙하며 나타나고, 평온했던 에드의 세계는 다시 요동치기 시작한다.

아르투르 슈니츨러의 동명 소설을 현대 뉴욕으로 옮겨온 이 영화는 예술가들의 허영과 열망, 그리고 그 이면의 비참함을 우화적인 터치로 그려낸다. 동시에 한바탕 소동이 지나간 자리에서 자신의 결핍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하는 한 인간의 성숙한 뒷모습을 담담하게 응시한다.

여러 차례 전주국제영화제의 초청을 받았지만 번번이 인연이 닿지 않았던 그는, 이번 방문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정확하게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요. 제일 처음 전주에서 초청을 받았던 게 2007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다음에도 '히치콕 트뤼포', '다이앤'까지 초청을 해주셨는데 그때는 일정이 맞지 않았어요. 제가 정확하게 기억하는 건 딱 하나입니다. 너무 후회스러웠다는 거죠. 그래서 이번에 초청을 받았을 때 정말 뛸 듯이 기뻤고요. 처음에는 개막작이라는 걸 몰랐어요. 그냥 '초청돼서 좋다'였는데, 개막작이라고 해서 두 번 더, 더블로 기뻤습니다. 여기에 그레타 리까지 같이 올 수 있다고 하니까 더 좋더라고요."

예술가들의 낙원으로 소비되어온 뉴욕이지만, 영화는 그 이면에 존재하는 계급 현실과 환상의 균열을 함께 드러낸다. 이와 함께 에드가 기억하는 과거의 뉴욕과 글로리아가 마주한 현재의 뉴욕, 그리고 젊은 세대가 그리는 환상 속 뉴욕까지 서로 다른 시간과 인식이 겹쳐지며 하나의 도시를 다층적으로 구성한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뉴욕은 세 가지 버전이 공존합니다. 하나는 에드가 기억하는 과거의 뉴욕, 즉 처음 왔을 때의 향수, 소호의 분위기 같은 것들이죠. 그리고 글로리아가 생각하는 뉴욕은 예술의 메카, 모든 아티스트가 꿈을 펼치는 곳이죠. 세 번째는 젊은 그룹이 생각하는 뉴욕입니다. 약간 환상적인 버전이죠. 돈도 있고, 여유도 있고, 시간도 많아서 카페에 앉아 노닥거리며 이야기할 수 있는 뉴욕입니다. 원작에서는 모임을 갖는 카페는 소호가 아니라 웨스트 빌리지입니다. 더 비싼 지역이죠. 여기서 제가 보여주고 싶었던 건 그런 카페는 더 이상 뉴욕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실내는 뉴저지, 외부는 맨해튼과 브루클린에서 찍었어요. 지금 소호는 80년대 중반 건물은 그대로지만 예술가들의 에너지가 와해되고 사라졌어요. 지금은 럭셔리 브랜드가 들어선 젠트리피케이션의 상징이 됐죠."

동명의 원작 시공간을 현재로 옮겨온 과정에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재발견된 예술가’라는 설정과 그 중심에 놓인 에드라는 인물에 집중된다.

“현대 뉴욕으로 옮긴 건 제 선택은 아니었고, 이미 시나리오에 있었습니다. 저는 아르투르 슈니츨러이 날카로운 아이러니가 매력적이라 좋아해요. 그런데 세미 버치 시나리오가 원작보다 따뜻한 시선이 있어 좋았어요. 특히 제가 가장 매력적으로 느낀 건 에드라는 인물이었습니다. 잊혀진 시인에게 한 청년이 와서 ‘당신을 재발견했다’고 말하잖아요. 그게 굉장히 공감이 됐어요. 저도 평론가로서 ‘이 감독은 재평가돼야 한다’고 글을 쓸 때 느꼈던 감정이 있었거든요.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매혹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예전에 꿨던 꿈을 다시 꾸는 거고, 젊었을 때로 돌아가는 시간 여행이니까요.”
인물들이 살아온 시간과 처한 환경, 계급 위치에 따라 예술은 다르게 작용한다. 이는 영화 전반의 정서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또 하나 스크립트에서 마음에 들었던 건, 예술을 진지하게 다루는 사람들의 열정이었습니다. 그걸 영화 안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었고요. 에드가 경험하는 건 지금의 현실과 다른 과거입니다. 본인이 예술가였던 시절의 열정, 그때의 감정같은 것들이요. 글로리아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젊은 그룹이 있는데, 그들의 예술은 조금 슬픕니다. 너무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자기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것에 가까우니까요. 이 세 가지를 통해 서로 다른 상태의 예술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시의 진정한 에센스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실제 시인들의 목소리를 내레이션처럼 사용했습니다. 정말 시인들이 직접 낭독한 목소리들이고, 살아 숨 쉬는 시를 그대로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극에선 에드가 왜 시를 더 이상 쓰지 않고 우체국 직원으로 일하는 지에 대해선 나오지 않는다. 그저 시가 사라진 자리에 남겨진 투박한 일상만을 비출 뿐이다.

"에드가 스스로 시를 그만두고 떠난 인물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창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를 가능하게 했던 환경과 조건들이 하나둘 무너지면서 더 이상 그 안에 있을 수 없게 된 거죠. 그래서 저는 에드가 시를 떠났다고 보지 않고, 오히려 시가 그를 떠났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 시인들의 목소리, 크레딧에 등장하는 시인들은 끝까지 시인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에드는 그렇지 못했기에, 그 목소리를 계속 듣고 동경하는 거죠. 결국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이니까요."
젊은 인물들은 시대의 문제를 드러내는 장치이지만 그들을 향한 감독의 연민이 느껴진다.

“원작에서는 젊은 인물들이 가식적으로 나오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SNS의 홍수와 과거에 대한 향수 속에서 길을 잃은 젊은 세대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혼란을 담고 싶었습니다. 웃기는 장면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감정이 깔려 있습니다. 그걸 포착하고 싶었습니다.”

소셜미디어를 둘러싼 왜곡된 소통 구조는 특정 사회를 넘어, 오늘날 전 세계가 마주하고 있는 공통의 문제의식이다. 켄트 존스 감독은 이에 대해 보다 분명한 시선을 드러냈다.

“소셜미디어에는 속임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대화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게 아닙니다. 시차가 있고, 그 때문에 오해와 충돌이 생깁니다. 그 충돌이 재미가 되고, 트래픽이 되고, 오락이 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그걸 더 원하게 되죠. 인플루언서라는 개념에도 사람들은 스펀지처럼 흡수한다는 전제가 있어요. 저는 인플루언서를 비난하기보다 그들이 속한 시스템을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배우 그레타 리는 극의 중심에서 에드의 결핍과 글로리아의 고립을 잇는 가교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특히 글로리아라는 인물이 가진 미묘한 온도 차를 완벽하게 포착해낸 그의 연기력에 대해 깊은 신뢰를 드러냈다.

“그레타 리와 작업한 건 저에게 선물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레타는 굉장히 정교한 연기를 하는 배우입니다. 아주 작은 표현이 스크린에서는 엄청난 임팩트로 확장됩니다. 편집할 때 프레임 단위로 보면서 정말 놀랐어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해냈더라고요.”

시적인 감수성과 유머, 그리고 그 이면에 깔린 슬픔과 풍자가 공존하는 이 영화의 분위기는, 결국 서로 다른 감정들을 하나의 리듬으로 엮어내는 연출 방식으로 이어진다.

“밥 딜런이 ‘박자가 리듬을 덮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는데, 리듬은 계속 밑에서 흐르는 겁니다. 저는 그 리듬이 계속 움직일 수 있도록 연출합니다. 연출은 정해진 것과 살아 있는 것을 만나게 하는 작업입니다. 스크립트와 배우죠. 이건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촬영감독, 의상, 미술, 편집까지 함께 만드는 작업입니다. 그래서 감독이 통제하기보다 어떤 일이 벌어지게 두는 게 중요합니다. 배우들의 에너지, 서로 섞였을 때의 에너지는 예측할 수 없으니까요.”

에드는 다시 우체국의 단조로운 일상으로 복귀했고, 글로리아는 짧았던 머무름을 뒤로한 채 뉴욕을 떠났으며, 뜨거웠던 젊은 예술가들의 모임은 각자의 현실 속으로 흩어지며 와해됐다. 찬란했던 한때의 소동이 지나간 자리에는 무거운 정적과 피할 수 없는 현실만이 남은 듯 보였다. 그러나 영화는 이 흩어짐을 단순한 실패나 몰락으로 그려내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가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를 묵묵히 짊어지는 과정이자, 환상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성숙의 단계로 비춘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받아들임입니다. 누구도 원하는 걸 다 이루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도 환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해피엔딩이 정말 존재하는지 질문하게 됩니다. 에드는 결국 ‘그래, 시 다시 안 써도 괜찮아’라고 받아들이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친구들과 당구 치러 가는 장면이 중요했습니다. 친구들도 에드에게 자신들에게 왜 그랬냐고 아무도 묻지 않죠. 에드는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관록이 있는 인물인 거예요.”

현재 할리우드를 비롯한 전 세계 영상 산업은 AI라는 거대한 기술적 변곡점에 직면해 있다. 감독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AI를 단순한 위협이 아닌, 창작자의 의도를 정교하게 다듬는 '도구'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AI를 논할 때 우리는 흔히 '인간이 AI에 잠식당해 결국 삶이 파괴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도구는 도구일 뿐, 결국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는 인간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성난 황소' 촬영 당시, 신기술이었던 스테디캠의 성능만 믿고 즉흥적으로 찍은 장면을 결국 폐기했습니다. 기술이 결과를 대신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죠. 데이비드 핀처 역시 '세븐' 리마스터링 과정에서 관객조차 눈치채지 못할 디테일을 보정하기 위해 AI를 활용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는 AI가 창작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의 의도를 더 정교하게 구현하기 위한 도구로 쓰인 사례입니다. 저는 AI가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논쟁에만 매몰되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그런 식의 접근은 정작 중요한 '인간의 책임'을 희석시키기 때문입니다. 결국 본질은 이 도구를 얼마나 책임 있고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끝으로 그는 한국 관객들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를 전하며, 작품이 지닌 의미가 공감으로 이어지길 바랐다.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공감되고 의미 있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관객들을 만날 수 있게 돼서 기쁘고요. 원제 그대로가 아닌 ‘나의 사적인 예술가’라는 제목도 저는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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