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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 관광 353만원 지출, 가성비 탈피 고부가가치 전략 필요
데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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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의 봄, 대한민국은 다시 한번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글로벌 아이콘 BTS의 완전체 컴백과 고양 콘서트를 보기 위해 몰려든 외국인 인파는 우리 문화 콘텐츠의 힘이 여전히 건재함을 증명했습니다. 하지만 축제의 환호성이 잦아든 뒤 마주한 통계는 우리에게 복잡한 질문을 던집니다. 지난 29일 발표된 지표에 따르면, 공연 관람을 위해 방한한 외국인이 한국에 머물며 쓴 돈은 1인당 평균 353만 원입니다. 일반 관광객 평균(245만 원)보다 108만 원을 더 썼고 체류 기간도 길었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저는 묻고 싶습니다. 전 세계 1등 아이돌의 무대를 보기 위해 인생의 한 페이지를 걸고 한국을 찾은 이들의 가치가, 고작 일반 여행객과의 ‘백만 원 차이’로 설명되는 것이 최선일까요? 이는 전 세계 1등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한국 여행이 여전히 ‘가성비’라는 좁은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현실을 방증하는 뼈아픈 대목입니다.
오늘날 외국인 관광객의 여행 패턴은 정형화된 관광지 방문에서 벗어나 한국 MZ세대의 일상을 그대로 복제하는 ‘로컬 지향형’으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백화점 면세점 대신 성수동 골목길의 팝업스토어에서 줄을 서고, 화려한 기념품점보다는 작은 소품숍에서 자잘한 굿즈를 구매하는 데 열광합니다. 편의점에서 한국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컵라면을 먹고 신제품 간식을 인증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가장 ‘힙한’ 경험입니다. 이러한 소액 다빈도 소비 위주의 흐름은 한국의 라이프스타일을 전파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국가적 차원의 관광 수익 극대화라는 관점에서는 분명한 한계를 지닙니다.

우리가 ‘가성비의 제국’이라는 칭호에 안주하는 동안,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기회비용은 증발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얼마나 많이 오느냐’가 아니라 ‘어떤 깊이의 경험을 제공하여 더 오래 머물게 할 것인가’를 전략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그 핵심은 단순한 상품 판매를 넘어선 고부가가치 융복합 관광 생태계의 구축에 있습니다.

1인당 소비액이 5000달러를 상회하는 룩셈부르크는 금융 허브의 강점을 살려 비즈니스 출장객을 위한 하이엔드 서비스를 패키지화했고, 호주는 대자연 속 ‘장기 체류’를 통해 여행객이 스스로 시간을 잊게 만듭니다. 우리에게 특히 시사점을 주는 것은 태국입니다. 과거 저렴한 배낭여행지였던 태국은 이제 최고급 리조트와 결합한 ‘의료 및 웰니스’의 메카로 거듭나며 관광객의 지갑을 열고 있습니다. 아랍에미리트 역시 럭셔리 쇼핑과 독보적인 도시 브랜딩을 통해 ‘비싼 값을 치러도 아깝지 않은 시간’을 제공하죠. 결국 이들은 물건이 아니라 그 나라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적 서사’와 ‘경험의 가치’를 팔고 있는 셈입니다.

이제 우리도 머릿수 경쟁에서 벗어나 외국인이 우리 땅에서 보내는 ‘시간의 질’을 높여야 합니다. 가장 먼저 주목할 분야는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의료관광과 K-뷰티 웰니스의 결합입니다. 단순히 시술만 받고 떠나는 단계에 그치지 말고, 고즈넉한 공간에서 전문적인 에스테틱을 받으며 명상하는 체류형 프로그램을 제안합니다. 태국이 증명했듯 ‘치료’를 넘어선 ‘치유’의 경험에 한국식 뷰티 웰니스를 조합한다면, 관광객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게 하는 대체 불가능한 상품이 될 것입니다.
동시에 독보적 자산인 ‘K-헤리티지(K-Heritage)’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럭셔리 콘텐츠도 필요합니다. 뻔한 호텔 대신 고풍스러운 고택에서의 하룻밤을 제공하는 한옥 B&B는 한국적 미학의 정수를 체험하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팔도의 산해진미를 경험하는 한정식부터 직접 김치를 담그는 김장 체험, 정갈한 다과를 만들어보는 쿠킹 클래스 등 식문화를 정교한 서사로 엮어내야 합니다. 서구의 럭셔리와는 차별화된, 공간의 여백과 시간의 깊이가 주는 ‘정신적 풍요’에 초점을 맞춘 한국형 프리미엄은 한국을 ‘한 번 보고 가는 곳’이 아닌 ‘깊이 있게 탐닉하는 곳’으로 격상시킬 것입니다.

K-컬처는 이미 전 세계인의 마음을 훔쳤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이 우리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려면, 콘텐츠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경험의 단가’를 끌어올리는 정교한 전략이 필요합니다. 가성비라는 안전한 항구는 이제 안녕을 고할 때입니다. 물건을 파는 나라에서 시간을 파는 나라로, 저렴한 즐거움 대신 대체 불가능한 품격을 주는 나라로 진화해야 합니다. 353만 원이라는 숫자를 넘어 우리 문화의 무게에 걸맞은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는 일. 그것이 지금 글로벌 문화 강국 대한민국이 마주한 가장 우아하고도 치열한 숙제입니다.
김희선 Team8 Partners 대표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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