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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익 우선 야만의 시대, 한국 실리 외교로 대응
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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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질서가 인권이나 민주주의가 아닌 자국의 이익과 힘의 논리를 우선하는 ‘야만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규칙과 명분은 퇴색했고, 힘과 자원을 둘러싼 냉혹한 계산만 남아 있다. 이 전환을 가속화하는 상징적 인물이 바로 도널드 트럼프다. 트럼프는 집권 1기부터 이란을 ‘악랄한 반미 국가’로 규정해 왔다. 그러면서 그는 여러 자리에서 이란을 둘러싼 군사적 압박의 실질적 목적이 석유와 전략적 요충지에 있음을 숨기지 않아 왔다. 이는 이란 문제가 단순한 이념 대립이나 안보 갈등의 차원을 넘어, 에너지와 해상 교통로를 둘러싼 국제 정치경제 문제임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그 과정에서 국제법이나 민주화, 인권과 같은 명분은 부차적인 문제다. 중요한 것은 누가 자원을 통제하는가이다. 실제로 중동에서의 군사적 긴장은 국제유가 변동성과 직결된다. 세계 각국의 물가와 금리, 산업비용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국이 중동에서의 긴장을 전략적으로 관리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한 힘의 논리가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전쟁 과정에서 반복되는 대규모 민간인 희생과 인도적 참사에 대한 냉담한 태도는 이러한 현실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패권 국가의 행동에는 일관된 본능이 작동한다. 패권 그 자체가 존재 이유다. 이를 상실하는 순간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때문에 군사력, 경제 제재, 금융망 등 가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패권을 유지하려 한다. 세계화의 시대가 저물고 각국에서 ‘신보호무역주의’와 ‘신중상주의’가 다시 고개를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이 실물 자산과 원자재 확보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자유무역’이 주는 이익에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리카도(David Ricardo)’식 ‘자유무역’의 원리를 통해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는 방식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원하는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금, 광물 등 실질적인 가치를 지닌 원자재를 확보하는 것만이 국가와 미래 세대의 생존을 위한 것으로 인식한다. 과거 개척 시대에 먼저 깃발을 꽂은 사람이 주인이 되는 것과 같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통해 먼저 자원을 선점하려 하고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미국 내 정치 구조와 직결된다. 과거 세계화의 물결에 따라 철강, 조선, 해운 등 기반 제조업이 붕괴하면서, 미국 내 백인 중산층의 삶이 무너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몰락한 중산층을 지지 세력으로 확보하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생산 기지를 미국으로 돌리려 한다. 해외 투자를 강압·유치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 중심의 공급망으로 재편하고, 미국 기업들이 다시 전 세계를 지배하게 만드는 구조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미래의 핵심 자원을 직접 확보하는 것이 실물 패권의 지속적인 유지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작금의 세계화 시스템은 무엇보다도 페트로달러 시스템을 통한 달러 패권의 유지다. 전 세계 석유 거래를 오직 달러로만 결제하게 함으로써 달러에 대한 수요를 인위적으로 창출하는 한편, 이를 통한 국채 발행으로 자국 내 인플레이션과 부채 문제를 전 세계로 수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미국이 갖는 막대한 무역 적자도 결국 국채나 금융 자산에 대한 투자 형태로 만들어 월가로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 거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금융 패권을 계속 유지하려 한다. 여기에는 지정학적 리스크도 결합된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은 유가 상승과 달러 수요를 자극하는 동시에 미국의 강력한 협상 수단이 된다.

트럼프가 중동 전쟁을 둘러싸고 논란이 되는 발언을 반복하는 것은 우발적인 행동이 아니다. 상대를 혼란에 빠뜨리고 여론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어들이는 ‘노이즈(Noise) 전략’이다. 극단적 언사는 실제 실행 의도라기보다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전술이다. 세상 사람들이 트럼프의 발언에 매몰되어 있을 때, 그는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과 타협을 이끌어낸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반발도 무력화한다. 트럼프가 막무가내인 것으로 보이나, 이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계산된 행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협상력이 약한 상대에게는 과도할 정도로 강경하게 행동함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관철하는 패턴을 반복해왔다. 문제는 이러한 전략이 장기적으로 미국 스스로의 패권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단기전으로 이란의 정권 교체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군사적으로는 물론, 전략적으로도 실패했다. 이란을 과소평가했으며, 동맹국의 에너지 취약성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는 한국과 같은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에는 직접적인 경제적 타격이다. 이는 달러 패권의 균열을 가속화하고, 아시아 중심의 새로운 질서로 이동할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미국이 추구하는 신중상주의와 보호무역주의 기조는 차기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앞으로 오랜 기간 동안 바뀌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구조로의 변화가 한국에 던지는 직접적인 질문이 있다. 변화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한국은 어떤 기조를 유지해야 할 것인가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동맹은 영원하다'와 같은 관념적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제 사회가 명분 보다는 국익 우선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만큼, 특정 진영에 매몰되지 않고 유연하게 접근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둘째, 이란과의 외교 채널을 물밑에서 유지하고 관계를 안정시키는 것이다. 한국이 미국의 대 이란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을 외교적으로 전달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이와 관련된 입장을 미 대사관이나 백악관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피력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셋째, 한국의 국익을 위해 에너지 다변화와 전략 비축율 확대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러시아와도 이분법적 판단에서 벗어나 관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는 현재 국제적 제재 상황 속에서도 한국과 같은 실용적인 파트너와의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경제적 고립을 탈피하고 이익을 도모하려 하고 있다. 과거의 지정학적 환경과는 다른, 실리 중심의 외교와 경제적 필요성에서 비롯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북·중·러가 일체로 결속되어 있다는 서방의 프레임을 거부하며, 국가별 사안에 따라 유연하게 협력하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한국은 이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야만의 시대’는 선언이 아니라 현실이다. 문제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국가의 선택이 미래를 결정한다는 점이다.

필진 주요 이력

▷독일 브레멘대학 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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