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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푸AI 홍콩 상장 흥행, 미 제재 넘은 고성능 GLM-4.7
한국금융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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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패권 경쟁에서 미국이 중국에 던진 가장 날카로운 무기는 반도체 수출 통제다. 엔비디아 A100은 막혔고, H100은 금지됐다. 중국의 AI 스타트업들은 손발이 묶인 채 달리라는 명령을 받은 셈이었다. 그 불리한 조건 속에서 2026년 1월, 홍콩 증시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공모가 116.20 홍콩달러로 상장한 즈푸AI(智谱AI, Zhipu AI)에 무려 1,159대 1의 청약 경쟁률이 몰렸다. 상장 직후 주가는 최대 8%까지 치솟았다. 총 43억4,000만 홍콩달러, 약 5억5,800만 달러를 조달했다. 세계 최초로 증시에 입성한 대형 언어모델(LLM) 순수 스타트업. 그것이 즈푸AI였다.

적자 기업이 어떻게 이 난리를 쳤을까. 2025년 상반기 매출 1억6,178만 위안, 순손실 23억6,000만 위안. 수익보다 손실이 15배 빠른 회사다. 그런데 시장은 열광했다. 이유를 알면, 중국 AI 산업의 전략 지도가 보인다.
칭화대 연구실에서 시작된 불씨 - 탕제(唐杰)라는 이름

즈푸AI의 창업자는 일론 머스크도 아니고, 샘 올트먼도 아니다. 칭화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 탕제(唐杰)와 리쥐안쯔(李娟子)다. 두 사람은 수십 년을 지식 그래프와 자연어 처리 연구에 바쳤다. 2019년 6월, 그 연구가 회사의 옷을 입었다. 칭화대 연구실에서 분사한 즈푸AI의 탄생이었다.
▲즈푸AI 공동창업자인 탕제 칭화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업계는 처음에 주목하지 않았다. 교수 두 명이 만든 회사, AI 모델 하나 없이 비전만 가득한 스타트업. 그러나 2022년 8월, 중국 내 스타트업 가운데 최초로 자체 개발한 사전 훈련 거대언어모델을 공개했다. GLM-130B, 1,300억 매개변수 규모의 괴물이었다. 중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이 모델은 학계와 산업계를 동시에 뒤흔들었다.

탕제의 논리는 단순하고 명쾌했다. AI 패권은 결국 모델의 질로 결판난다. 칩이 막혀도 모델 설계와 훈련 효율로 극복한다. '오픈소스로 가되, 성능으로 증명한다.' 그것이 즈푸AI의 전략이었다.
▲즈푸AI의 홍콩상장 기념식
▲즈푸AI 10년 연대기 - 연구실의 꿈에서 홍콩 IPO까지(그래픽; 한국금융신문)
GLM-4.7, "월 3달러로 GPT를 이긴다"

AI 세계에 조용한 폭탄이 하나 터졌다. 2025년 12월 22일, 중국 즈푸AI(Z.ai)가 GLM-4.7을 공개했다. 오픈소스다. 공짜로 내려받아 쓸 수 있다. 클라우드로 쓰면 월 3달러다. 그런데 벤치마크 성능은 월 200달러짜리 OpenAI, 앤트로픽의 최상위 모델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GLM은 '일반 언어 모델(General Language Model)'의 약자다. 4.7은 전작 4.6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규모는 약 3,500억 파라미터의 MoE(전문가 혼합) 아키텍처로 설계됐다. 최대 20만 토큰의 문맥을 처리할 수 있다. 긴 코드베이스 전체를 한 번에 읽고 분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특화 영역은 코딩이다. 실전 코딩 능력을 측정하는 LiveCodeBench에서 84.9%를 기록했다. 클로드 소넷 4.5보다 높다. 실제 GitHub 이슈를 얼마나 잘 해결하는지 측정하는 SWE-bench에서는 73.8%로 오픈소스 모델 중 1위다. 수학 경시대회 문제를 푸는 AIME 2025 벤치마크에서는 95.7%를 찍었다.

GLM-4.7의 핵심 혁신은 'Preserved Thinking(보존 사고)'이다. 일반 AI는 대화가 길어지면 앞서 한 추론을 잊는다. 복잡한 코딩 작업에서 치명적인 약점이다. GLM-4.7은 멀티턴 대화 전반에 걸쳐 추론 흐름을 유지한다. 30시간짜리 장기 작업에서도 이전 단계 논리를 기억하며 이어나간다. Claude Code, Cline, Roo Code 등 주요 코딩 툴과도 직접 연동된다.

세 가지 사고 모드가 있다. 답변 전 반드시 먼저 생각하는 'Interleaved Thinking', 멀티턴에서 추론을 연속으로 이어가는 'Preserved Thinking', 그리고 요청 난이도에 따라 추론 깊이를 조절하는 'Turn-level Thinking'이다. 가벼운 질문엔 빠르게, 복잡한 문제엔 깊게. 연산 비용을 스스로 최적화한다.

OpenAI와 앤트로픽은 2025년 내내 월 200달러짜리 프리미엄 구독을 업계 표준으로 굳혀왔다. GLM-4.7은 그 논리를 정면에서 깨뜨린다. API 요금은 입력 토큰 100만 개당 0.6달러, 출력 2.2달러다. GPT-4 Turbo 대비 10분의 1 수준이다. 로컬 실행은 무료다. 단, 로컬 구동에는 데이터센터급 GPU 또는 다중 GPU 환경이 필요하다.

GLM-4.7을 단순한 저가 모델로 읽으면 반만 본 것이다. 2025년 1월 미국이 즈푸AI를 수출 통제 명단에 올리면서 미국산 칩과 클라우드 접근이 막혔다. 같은 시기 미국은 중국 기업의 클로드 API 접근도 제한했다. 즈푸AI는 즉시 움직였다. 개발자들이 클로드 API를 GLM-4.7 API로 엔드포인트 하나만 바꿔도 전환이 되도록 설계했다. 제재가 내수 독점의 기회가 됐다.

국내 40개 이상의 중국산 칩과도 호환된다. 엔비디아 없이도 돌아간다는 뜻이다.코딩에 특화된 오픈소스 AI, 성능은 GPT급, 가격은 7분의 1. 미국이 막으려 했던 그 회사가, 막힌 덕분에 더 날카로워졌다.

오픈소스로 세계를 포위한다 - GLM의 전략

즈푸AI가 중국 내 경쟁사들과 다른 점은 오픈소스에 대한 집착이다. GLM-130B를 시작으로 ChatGLM-6B, GLM-4.5 Air까지 핵심 모델을 무료로 공개했다. '일반 소비자용 GPU 한 장으로도 추론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면에 내세웠다. GPU 공급이 제한된 중국 시장에서 이것은 혁명적인 선언이었다.

가격 경쟁력도 무기다. GPT-4 Turbo의 경우 입력 토큰 100만 개당 10달러, 출력 30달러다. 즈푸AI의 GLM-4.7은 입력 0.6달러, 출력 2.2달러다. 10배 이상 저렴하다. 딥시크가 가격 파괴로 시장을 흔들었다면, 즈푸AI는 오픈소스와 가성비의 조합으로 개발자 생태계를 장악하는 전략을 택했다.

2025년 9월 기준 글로벌 챗봇 아레나(Chatbot Arena) 리더보드에서 GLM-4.5는 세계 5위를 기록했다. GPT 시리즈와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중국 정부가 승인한 챗봇 11개 중 하나로 선정됐을 당시 블룸버그 테스트에서 바이두의 어니봇, 텐센트의 챗봇을 모두 제쳤다. 성능으로 증명했다.

동남아시아 전략도 예리하다. 미국 시장이 막힌 대신, 동남아 정부와 대학을 전략적 전초기지로 삼았다. 자국 데이터를 외부에 유출하지 않으려는 신흥국들의 수요가 즈푸AI의 '주권형 AI' 서사와 딱 맞아떨어졌다. 미국이 제재로 닫은 문을, 즈푸AI는 동남아로 우회해 열었다.
▲글로벌LLM 경쟁 구도 비교
인내자본(耐心資本:장기투자)의 논리 - 적자를 투자로 읽는 중국

즈푸AI의 재무 구조는 얼핏 보면 재앙이다. 2025년 상반기에만 연구개발비 15억9,500만 위안을 쏟아부었다. 전년 동기 대비 85.7% 급증이다. 매출 1억9,100만 위안의 무려 8배가 넘는 R&D 투자다. 창업 이후 누적 적자는 수십억 위안. 그럼에도 알리바바, 텐센트, 메이투안, 샤오미, 앤트그룹이 줄줄이 투자했다. 총 83억4,400만 위안을 조달했다. 중국 정부도 세 차례 직접 투자에 나섰고, 가장 최근 청두시의 투자만 3억 위안에 달한다.

이것이 중국이 말하는 '인내(耐心) 자본', 즉 장기투자로 인내하는 자본의 실체다. 중국 정부의 논리는 냉혹하리만치 명확하다. AI 기초 모델 개발 역량은 국가 인프라다. 오픈AI에 종속되면 디지털 주권이 없다. 적자는 감수한다. 기술 자립이 먼저다. 적자가 두려우면 미래도 없다. 인내심(耐心) 없이는 챔피언도 없다

홍콩 상장을 택한 이유도 이 맥락에서 읽힌다. 즈푸AI는 처음에 중국 본토 커촹반(科创板) 상장을 시도했다. 그러나 12월 12일까지 감독당국의 회신이 없었다. 바로 홍콩으로 방향을 틀었다. 더 유연한 상장 기준, 더 빠른 자금 조달, 그리고 글로벌 투자자에게 노출되는 기회. 홍콩이 답이었다.
▲즈푸AI와 량량스예(亮亮视野)가 공동개발한 AR 기능을 탑재한 AI 스마트안경
교수가 AI를 바꾸는 날 - 한국이 읽어야 할 신호

란젠항톈의 장창우가 금융인으로 로켓을 만들었다면, 즈푸AI의 탕제는 교수로 AI 산업을 바꾸고 있다. 두 회사의 공통점은 하나다. 아웃사이더가 산업을 재편한다. 그것도 제재와 봉쇄 속에서.

한국은 어떤가. 네이버 하이퍼클로바X, 카카오의 KoGPT가 있다. 그러나 글로벌 벤치마크에서 GPT-4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소식은 없다. 오픈소스로 전 세계 개발자 생태계를 장악한다는 전략도 없다. 제재를 해자(垓字)로 전환하는 역발상도 없다.

즈푸AI가 홍콩 증시에서 1,159대 1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할 때, 그 투자자들이 베팅한 것은 모델의 현재 성능이 아니었다. AI 패권 경쟁에서 중국이 독자적으로 살아남는다는 가설이었다. 그리고 그 가설은 빠르게 현실이 되고 있다.

미국의 제재가 역설적으로 중국 AI 생태계를 강화하고 있다. 강제로 오픈AI에서 이탈한 중국 기업들이 즈푸AI, 딥시크, 문샷AI로 몰리고 있다. 내수 시장이 거대한 훈련장이 되고 있다. 25,000만 명의 ChatGLM 사용자가 즈푸AI의 데이터 해자(垓字)다.

한국의 선택지는 두 가지다. 기초 모델 개발에 국가 차원의 집중 투자를 하여 독자 경쟁력을 구축하거나, AI 응용 서비스와 특화 산업 AI에서 경쟁력의 무게 중심을 옮기거나. 어느 쪽이든, 지금 결정해야 한다. 즈푸AI가 세계 최초 LLM 상장 기업이 된 날, 유예 기간은 이미 끝났다.
중국 칭화대에서 석사, 푸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우경제연구소에서 반도체와 IT애널리스트로 17년간 일했다. 대우증권 상무, 한화증권 전무를 지내고 이후 19년간 중국경제와 금융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으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중앙대 경영전문대학원에서 MBA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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