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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비장애 예술인 협업, 관계의 기술 전시 개최
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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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 중 

휠체어에서 내려온다. 발과 손, 그리고 몸이 붓이 된다. 선사랑드로잉회의 '우리 몸 크로키-공간 그림 퍼포먼스'는 서로 다른 몸이 하나의 캔버스를 채운다.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 내 모두미술공간에서 열리고 있는 2026 모두공감기획전 '관계의 기술: 기꺼이 기어이 기대어'(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예술 공동체 선사랑드로잉회의 대형 드로잉 작품과 함께 작품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이 담긴 영상을 볼 수 있다. 평소 휠체어에서 내려올 일이 없던 참여자들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열정 하나로 기꺼이 바닥으로 내려온다. 비장애인인 친구들 역시 기꺼이 작은 도움을 내어준다. 양말을 신기고 팔토시 착용을 돕는다. 그리고 10명이 넘는 사람들은 서로 기대어 그림을 그린다. 한 사람이 물감을 흩뿌리면, 또 다른 이는 그 위를 지나가며 흔적을 남긴다.  
'기꺼이 기어이 기대어'는 장애예술인들의 창작 활동을 관계의 관점에서 조명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박시내 큐레이터는 자립이 아닌 연립을 말했다.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기대는 게 아니에요. 서로를 맞대고 함께 서 있는 거죠. 장애예술인의 작업을 보면 작가 본인이 없으면 작업이 성립할 수 없지만, 동시에 보호자나 친구가 없어도 성립이 안 되는 지점들이 있어요. 사실 우리 일상도 대부분 그렇게 흘러가지 않나요?" 

전시는 물리적 거리에 주목하지 않는다. 마음과 마음의 거리를 본다. 김진우, 둥지(김보라, 오다솜, 송하정), 라움콘(Q레이터, 송지은), 발달장애인 독립공간 예술쉼터, 선사랑드로잉회, 이정현 등 6개 작가/팀의 작품이 출품됐다. 서로 다른 몸을 통해 형성된 다양한 감각을 긍정하고, 협력의 과정을 통해 축적한 창작물들이다.

우린 보폭을 맞추며 여기까지 왔다

라움콘의 '함께 조각'은 완성된 조각 작품이 아니다. 이 작품은 '함께하는 옷'을 통해 삶 속 상호의존을 드러낸다. 혼자서는 입기 어려운 옷을 함께 입고, 걸으며 타인의 신체, 호흡, 속도, 균형에 자연스레 보폭을 맞춘다. 서로 엇갈리고, 멈추고, 조율하며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빚어지는 '과정으로서의 조각'을 보여준다.  
라움콘은 문화예술 기획자 Q레이터와 시각예술가 송지은이 함께하는 아티스트 듀오다. Q레이터는 뇌출혈로 편마비를 겪은 후 걷는 법, 먹는 법 등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며 감각을 새로이 이해하는 경험을 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우리는 여기에 오기까지 혼자서 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보이지 않는 협력이 존재한다'고. 
둥지의 작품 '둥지의 풍경'은 각각의 작업을 품는다. 워크숍 참여자들은 '당신만의 둥지를 만들어보세요'란 간단한 스코어에 따라 실, 천, 종이 등 다양한 오브제로 작품을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개별 둥지들이 다시 하나로 모여 커다란 둥지가 된다. 
암호로 끄적임으로 소통
색청공감각자인 이정현은 음악을 시각적 기호로 번역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첼리스트로도 활동하는 그는 클래식 음악을 다룬 작품을 주로 선보인다. 다만, 제주 4·3 사건의 추모곡 '애기 동백꽃'을 시각화한 작품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결이 보인다. 하얀 눈과 산, 그리고 누이를 그리워하는 동생을 볼 수 있다. 여느 작품에 비해 사람의 형상이 두드러지는 점도 특징이다. 그의 작업은 작가만의 고유한 암호일 수 있겠으나, 또 다른 누군가에겐 그 자체로 위로가 되겠다.  
김진우의 '진우와 함께하는 기차여행_롤링페이퍼기' 역시 관계의 확장이다. 뇌병변장애가 있는 그는 종종 홀로 기차에 오른다. 기차를 타는 것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다. 그가 끄적인 여행길의 드로잉은 작가의 아버지 김인규와 만나 여행의 흔적을 따라가는 롤링페이퍼기가 됐다. 김진우는 이 기계를 들고 복지관에서 발달장애인들과 여행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며 자연스레 관계를 맺어간다. 전시장에서는 김인규가 이끄는 '발달장애인 독립공간 예술쉼터'가 지난 3년간 축적해온 작업을 모은 '우리가 쌓아온 이야기'도 함께 선보인다. 

전시는 5월 2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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