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 읽음
박찬수 한겨레 대표 방송 진출 공식화, 보도전문채널 검토
미디어오늘
0
“보수 일변도의 방송 공론장 형평성을 회복하기 위해선 진보 성향 방송사가 필요하다.”

지난달 29일 선임된 박찬수 한겨레 대표이사가 ‘한겨레의 방송시장 진출’이라는 해묵은 과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자신의 임기 내 방송 진출 계획을 구체화하고, 방송사를 운영할 수 있도록 사옥 이전도 검토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다.

박찬수 대표이사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한겨레가 생존하기 위해선 방송 진출이 필수적이며, 컨소시엄을 구성해 보도전문채널을 개국하는 건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보도전문채널 개국이 어려울 경우 우선 문턱이 낮은 PP(Program Provider)를 개국하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2007년 12월 ‘뉴미디어전략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방송 진출 방안을 연구했으며, 이후 사장 선거 때마다 관련 공약이 이어졌다. 2024년엔 TBS 인수 의사를 타진하기도 했지만 현실화되지 못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8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겨레 사옥에서 박찬수 대표이사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 한겨레 신입기자로 입사해 대표이사 자리까지 올랐다. 2023년 대표이사 선거에서 탈락하는 등 고배의 순간도 있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1989년 입사 후 한겨레가 성장하고 확장하는 시기 기자 생활을 했다. 2010년 이후 한겨레의 위상과 영향력이 줄어간다는 것을 체감하게 됐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바꿔보고 싶었다. 특히 최근 입사한 직원들을 보면 급성장하던 시기를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과거보다 좀 위축된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직접 한겨레의 영광을 되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대표이사 선거에 도전하게 됐다.”

- 선거 과정에서 방송 진출을 공약했다. 막대한 예산이 드는 일인데, 현실성이 있을까.

“방송 진출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종이신문에 의존하는 사업 구조를 넘어 방송·뉴미디어 영역에서 영향력을 키워야 한겨레가 ‘진보의 중심’으로 다시 설 수 있다. ‘유튜브만 하면 되지 않냐’라고 말할 수 있지만, 유튜브는 정파성이 강한 플랫폼이라서 저널리즘을 관철해내기 쉽지 않다. 진보 성향의 방송사에 대한 필요성도 있다. 종합편성채널의 시작이 보수신문이었고, 보도전문채널 역시 정권에 따라 성향이 흔들릴 수 있다. 보수 일변도의 방송 공론장 형평성을 회복하기 위해선 진보 성향 방송사가 필요하다. 종합편성채널은 막대한 자본금이 필요하기에, 컨소시엄을 구성해 보도전문채널을 개국하는 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임기 중 추진하려고 한다. 보도전문채널을 당장 개국할지, PP 진출을 한 뒤 점진적으로 넘어갈지 등 로드맵을 검토 중이다. 방송법 개정에 대한 문제도 있고 차분하게 검토하고 있다.”

- 사옥 이전도 공약했다. 방송 진출을 하면 상암으로 사옥을 이전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가장 큰 고민은 현재 사옥의 상징성이다. 1991년 조건영 건축가가 한겨레의 가치를 담아 설계해 신축한 사옥인데, 역대 대표이사들이 사옥 이전을 공약으로 걸었지만 실행되지 못한 주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마포 지역 지가가 올랐기에 현 사옥을 매각한다면 다른 곳으로 충분히 이전할 수 있다. 내후년이 한겨레 40주년인데, 그 무렵 새 사옥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할 계획이다. 한겨레가 방송 사업에 진출한다면 이를 위한 사무실도 필요하다. 독자, 주주, 퇴직 선배 등과 함께 컨센서스를 이룰 예정이다.”
- 이번 지방선거에서 TBS와 협업할 계획이다. 독자 콘텐츠가 아닌 TBS와 협업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방선거 개표일 TBS와 공동 개표방송을 준비하고 있다. TBS는 윤석열 정권 시기 지방 권력에 의해 한순간에 마이크를 놓아야 했다. 이는 수도권 시민의 알권리가 송두리째 부정당했다는 뜻이며, 정치권력이 입맛대로 지역 공영방송 존폐를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선례를 남긴 사건이다. 한겨레와 한겨레TV는 언론의 공공성·독립성을 시민, TBS 구성원과 함께 추구해 가겠다는 취지에서 이번 개표방송을 기획하게 됐다. 현재 협의체를 꾸려 기획·구성 단계부터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 큰 틀에서 스튜디오 등 방송 인프라는 TBS에서, 구성과 출연진 섭외 등은 주로 한겨레TV에서 맡을 계획이다.”

-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 대표이사를 맡게 됐다. 특히 최근 ‘현대차 장남 기사제목 수정’ 문제로 경영진이 총사퇴하는 혼란을 겪었다.

“독자와 시민들께 걱정을 끼쳐드린 점 매우 송구하게 생각한다. 내부 감사보고서를 통해 이번 사안의 성격과 문제를 분명히 지적했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컨센서스가 내부에 공유됐다. 후속 인사까지 끝나서 조직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 디지털 기사 수정·삭제 기준 마련 등 제도적 보완 작업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는 상태다.”

- 편집국 간부가 부동산 개발업자 김만배씨에게 금품을 받는 등 최근 한겨레를 둘러싼 여러 사건이 불거졌다. ‘한겨레’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가 있기에 시민들의 실망감이 더 크게 다가왔을 것 같다.

“실망감은 한겨레의 숙명이다. 독자와 시민들은 한겨레에 훨씬 높은 도덕성과 책임감을 요구한다. 대기업이나 정부에 기대지 않고 ‘국민주 신문’으로 창간한 한겨레의 본질 같은 거다. 한겨레 창간 38년이 지났고 직원 숫자는 500명을 넘겼다. 그러다 보니 여러 사건·사고가 발생한다. 중요한 건 사건·사고를 감추거나 축소하지 않고 빠르고 단호하게 처리해 제도적인 개선책을 마련하는 거다. 한겨레 내부의 시각에 매몰된다면 신뢰를 잃어버릴 수 있기에, 이런 점에 집중하면서 점검을 하는 게 필요하다.”

- 문재인 정부 때를 생각해보면, 민주당 정부에서 진보 성향 언론이 겪는 어려움이 크다. 주요 독자가 정부 지지층인 만큼, 정부에 비판적 보도를 할 경우 구독자 이탈을 우려해야 할 수도 있다.

“사실 보수 정부가 집권했을 때 콘텐츠 생산 방향이 명확한 측면이 있다. 진보 정부가 집권하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독자와 시민들은 진보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강한 열망이 있기에 단순한 정부 비판 보도로 독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 한겨레의 보도가 정부, 나아가 우리 사회 성공에 바람직하다는 것을 이해시켜야 한다. 김대중 정부 당시 청와대를 출입했는데, 과한 비판 보도도 있었지만 결국 ‘정부에 도움되는 보도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단기적으론 독자들과 긴장 관계가 생길 수도 있지만, 이는 언론의 숙명이다. 한겨레의 비판 보도가 궁극적으로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 정부가 바뀔 때마다 ‘여사’에 대한 호칭 논란도 제기됐다. 한겨레도 호칭 문제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다.

“중요한 건 사회적 압력에 따라 우리가 정한 기준을 쉽게 바꾸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 때는 한겨레 기준에 따라 권양숙 여사를 ‘씨’라고 표현했다. 당시 독자 항의가 있었지만 표기 원칙을 설명해 큰 논란으로 번지지 않았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 시절 권양숙 여사를 ‘씨’로 표기하자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결국 대통령 부인을 ‘여사’로 부르는 걸로 기준을 바꿨다. 정권이 바뀐 뒤 ‘김건희 여사’라고 표기하니 엄청난 항의를 받았다. 기준이라는 것을 바꿀 때는 그 이유와 과정을 투명하게 설명하고 독자들과 충분히 소통하는 절차를 갖추는 게 필요하다.”

- 최근 ‘김어준의 겸손은 없다 뉴스공장’, ‘매불쇼’ 등 진보성향 유튜브 채널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대중 영향력뿐 아니라 정치적 영향력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위기감이 클 것 같다.

“정치 영역만 놓고 본다면 유튜브의 영향력은 레거시 미디어 못지않게 크다. 세대와 집단에 따라서는 이미 앞섰다고 볼수도 있다. 보수진영도 마찬가지다. 조중동 등 보수언론이 장동혁 체제를 비판하더라도 핵심 지지층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본다. 핵심 지지층에게는 유튜브를 통해 정치 정보를 접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순 없다. 이는 곧 정치적 영향력이기도 하다. 한겨레가 지난해 「뉴스다이브」라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시작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유튜브 플랫폼을 통해 영향력 확장을 꾀한 것이다. 다만 언론이라면, 어떤 방향의 영향력을 추구해야 하는지는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영향력을 확장하되 그 방향이 한겨레가 추구하는 진보적 가치와 맞아떨어지게 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게 앞으로의 과제이기도 하다.”
- 한겨레 유튜브 채널 ‘한겨레TV’ 구독자가 98만 명에 달한다. 다만 구독자에 비해 영상 조회수가 높진 않다.

“조회수를 기준으로 한다면 개인이 운영하는 대형 유튜브 채널과 비교할 때 못 미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다만 특정 정치인·정당 팬덤 중심인 정치 유튜브 시장에서 나름대로 사실 검증과 충실한 맥락 해설을 하고 있으며, 저널리즘의 핵심 원칙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다. 그런 상황에서 약 100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유의미한 매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작게 볼 수 없는 성과다. 아쉬운 게 없는 건 아니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분산된 영상조직을 영상국으로 통합했다. 또 정치·시사 콘텐츠만이 아니라 지식·교양, 생활밀착형 경제 콘텐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적인 실험·시도를 할 예정이다.”

- 직원 스스로 대표이사를 선출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내부 파벌 문제와 잦은 선거로 인한 피로감이라는 부작용도 있다. 정치적 사안에 대한 내부 갈등 문제도 있는데, 이를 통합해야 한다는 숙제도 있다.

“파벌, 분명히 있다. 한겨레뿐 아니라 어느 조직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한겨레 신문 초창기에도 파벌 다툼이 심했다. 당시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지금의 상황은 양호하다고 본다. 특히 조직 입장에선 하나의 생각만 가지고 나아가는 게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어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본다. 내부 갈등의 경우 조국 사태·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정치 진출을 두고 불거진 적 있다. 이 사안을 두고 진보 진영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왔는데, 이런 시각 차이가 한겨레에도 투영됐다고 보면 된다. 내부 갈등의 극복 방법은 ‘저널리즘 기준’이다. 각자 생각이 다른데, ‘생각을 바꿔라’고 이야기할 순 없다. 저널리즘 기준과 원칙에 따라 콘텐츠를 생산하고, 그 범주 안에서의 의견 차이는 이해하고 수용해야 한다. 정치·사회적 현안에 대해선 저널리즘책무실을 중심으로 다양한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소그룹 토론을 진행하고, 이를 구성원들에게 공유할 계획이다.”
- 종이신문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동시에 한겨레 영향력도 약해지고 있다. 위기 타개 방법은.

“한겨레 영향력과 위상이 예전에 비해 줄어든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가장 큰 요인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다. 한겨레가 중요한 정치사회적 이슈에서 진보 세력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때론 저널리즘 원칙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 부분도 분명히 있다. 한겨레 영향력과 위상을 과거와 똑같이 되돌리는 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피니언 리더가 가장 신뢰하는 매체로 다시 올라서는 건 꼭 필요하고 그걸 현실적인 목표로 삼으려고 한다. 정책 결정·입안자, 기업, 미디어 종사자가 ‘가장 믿고 참조할 만한 매체’가 되는 건 가능하다고 본다.”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