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 읽음
미·이란 종전 협상 결렬, 핵·해협 개방 이견 여전
아시아투데이
0
미국과 이란의 첫 종전 협상이 21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담 끝에 결렬됐다. 핵 포기 명문화와 호르무즈 해협 개방이라는 핵심 쟁점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2주 휴전 내 타결 여부는 불투명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란 '추모'·美 '대규모 대표단'…협상장 도착부터 온도차

미·이란 양측 대표단은 종전 협상에 임하는 방식과 분위기에서 뚜렷한 차이를 드러냈다.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란 측이었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은 협상 하루 전인 10일(현지시간) 밤 아바스 아라그치 외무장관과 알리 아크바르 아흐마디안 국가안보최고위원회 사무총장, 압돌나세르 헴마티 중앙은행 총재 등 핵심 인사들과 함께 이란 민항기를 이용해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했다. 이들은 파키스탄 군부 실세로 꼽히는 아심 무니르 국방군 총사령관의 영접을 받았다.

이란 대표단은 전원 검은 정장을 착용한 채 입국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진 자국민을 추모하는 동시에 협상에 임하는 강경한 태도를 부각했다. 갈리바프 의장은 출발에 앞서 전용기 내부에 희생된 어린이들의 사진과 그을린 책가방, 꽃 등이 놓인 모습을 공개하며 "이번 비행의 동반자들"이라고 적었다. 이는 전쟁 첫날 숨진 민간인 희생자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협상에서의 명분을 강조하려는 행보로 해석된다.

미국 측은 하루 뒤인 11일 도착했다. JD 밴스 부통령이 이끄는 대표단은 전용기를 통해 이슬라마바드에 입국했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스티브 윗코프 중동 특사 등 주요 인사들도 별도로 현지에 도착해 합류했다.

대표단 규모에서도 차이가 나타났다. 외신에 따르면 이란 측 대표단은 약 70명 수준인 반면, 미국은 경호와 의전 인력을 포함해 300명에 달하는 대규모 협상단을 꾸린 것으로 전해졌다. 협상 장소는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지만, 주요 외신들은 이슬라마바드 시내 5성급 호텔인 세레나 호텔이 유력한 장소로 지목된다고 보도했다. 호텔 주변에는 강력한 보안 조치가 시행돼 접근이 통제됐으며, 뉴욕타임스(NYT)는 밴스 부통령이 해당 호텔에 머물고 있다고 전했다.

양측은 협상 개시 전 사전 접촉 성격의 외교 일정도 소화했다. 이란과 미국 대표단은 각각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와 면담을 진행하며 협상 의제를 조율했다.

◇47년 만의 고위급 대면…우호 속 긴장 교차한 협상장

이번 미·이란 협상은 파키스탄 측이 중재자로 동석한 가운데 3자 대면 방식으로 진행됐다. 특히 JD 밴스 부통령과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이 직접 마주 앉으면서, 1979년 외교관계 단절 이후 처음으로 성사된 최고위급 접촉이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협상은 1박 2일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이어졌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가 동석한 자리에서 양측 대표가 악수를 나누는 장면도 연출됐다. 다만 회담 분위기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NYT는 협상이 전반적으로 우호적이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고 전한 반면, 로이터통신은 파키스탄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회담 내내 긴장감이 크게 출렁였다"고 보도했다.

◇협상 결렬 주요 배경은 '핵무기·호르무즈 개방'

이번 협상 결렬의 핵심 쟁점은 이란의 핵 보유 금지와 호르무즈 해협 처리 문제였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란 국영 프레스TV는 이란 최고국가안보위원회 성명을 인용, 이란이 동결 자산 해제와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 중단을 협상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고 전했다.

이란의 10개항 제안에는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 유지·우라늄 농축 권리 보장·모든 1·2차 제재 철폐·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 결의 무효화·전쟁 배상금 지급·미군 역내 전투 병력 철수 등이 포함됐다고 프레스TV가 보도했다.

반면 미국은 이란 핵농축 프로그램 제한과 글로벌 선박의 자유 항행 보장을 담은 것으로 알려진 15개항 제안으로 맞섰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미국은 이란이 보유한 고농축 우라늄 처리를 포함해 향후 핵 보유를 저지할 수 있는 구체적 약속을 요구했으나 이란은 이를 거부했다. 호르무즈 해협과 관련해선 미국이 즉각적인 개방을 원한 반면, 이란은 최종 합의안이 나올 때까지 현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 타스님통신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과 관련한 미국의 '과도한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밴스 부통령은 협상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10여 차례 통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최종 결렬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린 것으로 보인다.

◇미 구축함 호르무즈 기뢰 제거 착수…협상 영향 미쳤나

특히 대면 협상 개시에 맞춰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을 통과시키며 기뢰 제거 작전에 착수한 것이 이란의 반발을 초래하며 협상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

미군 중부사령부(CENTCOM)는 이날 성명을 내고 유도미사일 구축함 USS 프랭크 E. 피터슨 주니어함과 USS 마이클 머피함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아라비아만에서 작전을 수행했다며 이는 이란이 설치한 기뢰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광범위한 임무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2월 28일 대(對)이란 군사작전 개시 이후 미국 군함의 첫 호르무즈 해협 통과다.

이번 작전은 이란과의 조율 없이 이뤄졌으며, 중부사령부는 수중 드론을 포함한 추가 병력이 며칠 내 기뢰 제거 작전에 합류할 것이라고 전했다. 브래드 쿠퍼 중부사령관은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과정을 시작했고, 조만간 해운업계와 이 안전한 항로를 공유해 자유로운 상업적 흐름을 촉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해군은 이를 즉각 부인하고 "어떠한 통과 시도에도 단호하고 강력한 대응으로 맞설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AP통신·WSJ가 전했다.

◇쟁점은 좁혔지만 간극 여전…후속 협상 변수 '호르무즈'

첫 협상은 결렬됐지만, 양측이 핵 문제와 호르무즈 해협 개방 등 핵심 의제를 일정 부분 좁힌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따라 후속 협상을 통해 합의점을 모색할 여지는 남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주요 쟁점을 둘러싼 입장 차이가 커 2주간의 휴전 기간 내 타결 여부는 불투명하다. 핵 프로그램과 해협 통행 문제 모두 양측이 쉽게 양보하기 어려운 사안으로 꼽힌다. 특히 협상 구도에서 호르무즈 해협이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군사 옵션을 유지하며 압박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이란은 협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며 제재 완화와 안전보장 요구를 관철하려는 전략을 택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처럼 양측의 계산이 엇갈리는 가운데 향후 협상은 핵심 쟁점을 둘러싼 힘겨루기 양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