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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홍콩영화 몰락' 우려…홀드백 법제화 재검토·스크린 제한 제안"
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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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한국 영화 산업의 위기와 대책’ 정책제안 기자회견 사진=최송희 기자

영화계 주요 13개 단체가 참여한 영화단체연대회의가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이 대표 발의한 '영화 및 비디오물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의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현재 한국 영화산업의 위기를 단순히 팬데믹과 글로벌 OTT 확산의 여파로만 보기 어렵다고 주장하며, 극장 시장의 과점 구조와 수직계열화, 스크린 쏠림이 누적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2026년 한국 영화 산업의 위기와 대책' 정책제안 기자회견에는 김병인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이사장, 김승범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 대표, 박경신 변호사, 박관수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부대표, 양우석 감독, 이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 황경선 애니메이션 제작자가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한국 영화산업이 단순한 침체를 넘어 구조적 위기에 놓여 있다고 진단하며 제도 개선과 투자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병인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이사장은 "2025년 한국은 순제작비 30억원이 넘는 상업 영화의 개봉 편수가 30편을 넘지 못했다"며 "2000년대 초, 중반 100편 이상을 만들며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뤘던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마치 1990년대 후반 홍콩 영화 산업의 몰락을 보고 있는 듯하다"고 덧붙였다.

양우석 감독은 현재 한국 영화산업의 위기가 2020년부터 약 2년간 이어진 팬데믹과 그 사이 안방을 차지한 넷플릭스의 공세 때문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한국만 유독 다른 나라에 비해 코로나19 이전 수준의 회복력을 보이지 못하는 배경에는 취약한 산업 구조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9년에 약 2억3000만명이었던 관객 수가 2025년 말 기준 1억600만명으로 그 절반도 넘지 못한 46%를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최근 영화계에서 논란이 된 홀드백 법제화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밝혔다. 임오경 의원이 발의한 영비법 개정안은 극장 상영 종료 후 6개월이 지나야 영화가 IPTV와 OTT 등 후속 플랫폼으로 공개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참석자들은 극장과 IPTV 사이 6개월 공백은 홀드백이 아니라 사실상 블랙아웃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박경신 변호사는 "이 기자회견은 임오경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이 아니"라며 "이 개정안은 전면 철회돼야 한다. 정상적 홀드백 법안이 아닌 블랙아웃 법안"이라고 말했다. 이어 "영화가 극장에서 오래 기간 머물도록 상영 기간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스크린 집중 제한 제도가 도입되면 가능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영화단체연대회의는 스크린 집중 제한 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는 극장 체인들이 한두 편의 영화에 좌석을 과도하게 몰아주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들은 한 영화의 스크린 집중 비율을 20% 이하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제도가 정착되면 많은 영화가 극장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고, 그에 따라 플랫폼 간 홀드백도 자연스럽게 정상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영화의 수익성이 높아지고 장기적으로는 극장 수익도 개선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경신 변호사는 "극장 수익이 악화된 것은 홀드백 때문이 아니라 소비자와 거래처를 홀대하게 만든 과점과 수직계열화에 원인이 있다"며 "극장은 관람비를 낮추고 다양한 영화를 상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양한 영화를 오랫동안 상영해 자신들의 홀드백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며 "제작사나 배급사도 극장에서 잘 상영되고 있는 영화를 서둘러 다른 플랫폼에 팔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사진=연합뉴스

영화단체연대회의는 "홀드백은 극장이 오래 상영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만 적용하고 보호해 주는 룰이 돼야 한다"며 "영화업계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채 대기업 극장체인의 의견만을 그대로 반영한 임오경 의원실의 영비법 개정안은 폐기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은 "임오경 의원실의 영비법 발의 취지 자체는 좋았던 것 같다. 그러나 산업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작성하지 않은 측면이 많은 것 같아서 폐기하자고 거듭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스크린 집중 제한 비율을 20%로 제안한 데 대해 "과거에는 한 영화가 30% 틀지 않으면 바람직하다고 봤는데 현재는 20%를 주장한다"며 "물론 이는 극장, 배급사들의 입장까지 들어가면서 조율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은 회장은 해외 사례로 일본 영화를 언급하며 장기 상영 구조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국보'의 경우 일본에서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데 6개월 이상 걸렸다"며 "그러나 '왕과 사는 남자'의 경우 4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말했다. 이어 "극장들은 다른 영화의 점유율을 떨어뜨리고 극장 수익을 올리는 데 혈안이 돼 있다"며 "이는 장기적으로 극장에도 안 좋다. 적당하게 스크린 집중을 제한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제도 개선과 함께 투자 기반 확충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상업영화 평균 제작비가 100억원을 넘는 현실을 고려하면 1000억원대 대형 펀드와 중급 규모 펀드 조성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또 모태펀드를 통한 영화 펀드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가 앵커 투자자로 나서고 민간 자금 유입을 위한 세제 혜택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영화단체연대회의는 이번 기자회견에서 한국 영화산업의 침체 원인으로 관객 감소뿐 아니라 산업 구조 전반의 문제를 함께 거론하며, 홀드백 법제화보다 스크린 집중 제한과 투자 재원 확대가 우선적으로 논의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정부와 국회가 이 같은 요구를 향후 입법과 정책 논의 과정에서 검토해 달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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