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0 읽음
미·이란 2주 휴전, 호르무즈 해협 개방 등 난제 산적해 있어
아시아투데이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협상의 절대적 전제 조건으로 고수한 호르무즈 해협 개방 문제, 이란이 제시한 10개항의 파격적 요구, 그리고 양측의 뿌리 깊은 불신이 중첩되면서 10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시작될 본협상은 험난한 여정이 예고된다.
◇ 트럼프, 호르무즈 '완전·즉각·안전 개방' 고수…이란 '군 통제 유지'로 맞불
이번 휴전 협상의 특징은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 개방 문제를 핵심 조건으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첫번째 최후통첩을 내놓은 이후 네 차례에 걸쳐 시한을 연장하면서도 이 요구는 양보하지 않았다.
이날 트루스소셜 게시물에서도 "이란 이슬람공화국이 호르무즈 해협의 '완전하고(COMPLETE) 즉각적이며(IMMEDIATE) 안전한(SAFE) 개방'에 동의하는 조건으로"라고 명시, 세 단어 모두를 대문자로 강조하며 비타협적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는 단순한 항행 재개 수준을 넘어 이란이 봉쇄 조치를 철회하고 국제 선박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라는 요구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핵시설 타격이나 정권 교체보다 호르무즈 개방을 앞세운 것은 글로벌 원유·가스 수송로 정상화가 이번 군사 압박의 핵심 목표였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를 전면에 내세운 데는 이유가 있다. 전 세계 원유 및 액화천연가스(LNG)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이 해협의 봉쇄가 개전 이후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을 마비시키고 국제 유가를 전쟁 전 대비 40% 이상 끌어올리는 직접적 원인이 됐기 때문이다. 아시아 일부 국가는 원유 수입의 80%를 이 해협에 의존하며,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헬륨과 아프리카·아시아 농가에 공급되는 비료도 이 수로를 통해 운반된다.
씨티그룹(Citi)이 2024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순(純) 석유·LNG 무역 비중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순수입 규모는 GDP 대비 -6%로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아 이번 에너지 충격에 가장 크게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일본(-3.2%)·인도(-2.9%)·이탈리아·프랑스(-2.2%)·중국(-2.1%)·독일(-1.5%) 등이 뒤를 이었다.
역설적으로 이는 호르무즈 해협이 실질적으로 개방될 경우 한국이 주요국 가운데 최대 수혜국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을수록 유가 하락과 공급망 정상화의 직접적 수혜 폭이 크기 때문이다.
다만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세계 석유와 LNG의 5분의 1이 통과하는 호르무즈가 실제로 열리는지가 이번 휴전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란이 트럼프 대통령의 '완전 개방'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이날 엑스(X)를 통해 "2주 동안 이란 군과의 조정 및 기술적 제한을 고려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안전한 통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 표현이 이란이 해협 통행 속도와 조건에 대한 근본적 통제권을 유지하겠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블룸버그통신도 이란이 '기술적 제한'이라는 표현을 통해 통행 조건에 대한 재량권(wiggle room)을 스스로에게 남겨뒀다고 평가했다. 즉 이란은 해협을 열되 자국 군이 주도권을 쥐겠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호르무즈 통제권 문제는 향후 협상에서 가장 큰 충돌 지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 파키스탄·중국 막판 중재…'최후의 외교 드라마'로 봉합
이번 휴전은 파키스탄의 긴급 중재로 성사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을 통해 "셰바즈 샤리프 총리와 아심 무니르 야전군 원수의 요청에 따라 오늘 밤 예정된 파괴적 공격을 보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협상 타결 과정을 '막판(11th-hour) 외교 드라마'라고 평가했다.
샤리프 총리는 협상 시한 마감 약 5시간 전 엑스에 "외교가 진행될 수 있도록 기한을 2주간 연장해 달라"고 촉구하며 이란에도 선의의 표시로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요청했다. 이어 최종 시한 불과 90분 전에 트럼프 대통령이 트루스소셜에 휴전 수용을 게시하면서 극적 타결이 이뤄졌다.
NYT는 파키스탄의 중재와 함께 이란의 핵심 동맹국 중국의 막판 개입이 이란의 수용을 이끌어냈다고 이란 관리 3명을 인용해 전했다.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모즈타바 하메네이도 이를 최종 승인했다.
NYT는 이번 결정을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이 만든 위기에서 빠져나올 출구(Off-ramp)를 찾기 위해 파키스탄 제안을 활용한, 혼돈스럽고 고압적인 협상 방식의 전형적 사례"라고 평가했다.
◇ 이란 '10개항 제안', 미국의 중동 전략과 이스라엘 방위의 시험대
이번 협상의 또 다른 핵심은 이란이 파키스탄을 통해 제출한 10개항 제안서다.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가 공개한 10개항에는 미국으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들이 망라됐다.
우선 이란의 우라늄 농축권 수용 요구다. 이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번 전쟁 명분으로 내세운 핵심 중 하나였던 이란 핵 프로그램 제한 요구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NYT는 이스파한 지역에 비축된 고농축 우라늄 약 970파운드(약 440㎏)의 처리 방안도 여전히 미결 상태라고 지적했다.
모든 1·2차 제재 전면 해제와 전쟁 피해 배상금 지급 요구도 포함됐으며, 해외 동결 자산 반환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종료, 이번 합의에 안보리 결의를 통한 국제법적 구속력 부여도 요구했다. 이란은 합의가 유엔 안보리 결의로 확정될 경우 이를 외교적 승리로 활용하겠다는 계산도 담았다.
중동 내 미군 전투 병력 전면 철수 요구는 미국의 중동 전략과 이스라엘 방위 공약의 근간을 흔드는 내용으로, 미국이 수용하기 가장 어려운 항목으로 꼽힌다. 이란 국영방송 프레스TV는 "미국이 이 모든 조건을 수용했다"며 "역사적 승리"라고 주장했지만, 백악관은 "협상의 실행 가능한 토대"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표현에 한정해 논평하며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 10일 이슬라마바드 담판 개막…불신 속 '깨지기 쉬운 창문'
이번 휴전이 실질적 종전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10일 이슬라마바드에서 시작될 본협상이 결정적 역할을 해야 한다. 이번 협상은 지금까지 중재자를 끼고 진행해왔던 방식과 달리 직접 협상 형태로 진행될 가능성이 커, 양측의 실질적 의지가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최대 15일의 협상 기간이 설정된 가운데 이란은 10개항이 수용돼야만 종전이 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양측의 불신과 근본적 입장 차를 감안할 때 협상 전망은 밝지 않다. 이란 국영방송(IRIB)은 "완전한 불신 속에서 미국과 협상에 임할 것"이라고 공언했고, NYT는 "미국과 이란 간 수년간 직접 대화가 단절됐다"며 파키스탄 같은 중재국의 역할이 여전히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에너지·산업재 전문 헤지펀드 갈로 파트너스의 마이클 알파로 최고투자책임자(CIO)는 FT에 "양측 제안에는 서로 수용하기 어려운 조항이 많아 확전 위협이 재부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FT는 이번 휴전을 '깨지기 쉬운 창문'에 비유했으며, 블룸버그는 "전쟁 종료 계획은 아직 없다"며 미국이 결국 추가 압박에 나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및 하메네이 정권과 휴전에 합의함으로써, 5주 전 이란 국민들에게 정권 타도를 촉구했던 자신의 입장을 사실상 철회하는 모순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결국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누가 쥐느냐,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미국이 얼마나 많은 제재를 풀어주느냐는 세 가지 핵심 쟁점이 해소되지 않는 한 2주간의 휴전이 항구적 종전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특히 에너지 충격 노출도 세계 1위인 한국을 비롯한 에너지 순수입 의존국들에게는 2주 뒤 이슬라마바드 담판의 결과가 곧 국내 경제의 향방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협상의 향방이 크게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