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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한글 현판 찬반 토론, 정체성 회복 대 원형 복원 팽팽
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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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관점에서, 또 국가 정체성을 제대로 보여줘야한다는 측면에서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명분이 무엇이든 이런 식이라면 광화문과 광화문 광장은 권력자의 ‘놀이터’로 전락될 것이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31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6층 회의실에서 열린 '광화문 현판 토론회'에서는 한글 현판을 둘러싸고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찬성 측은 '시대정신의 창조적 계승'을 내세운 반면, 반대 측은 '원형 복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이건범 대표는 "우리의 현대적 정체성은 국가 상징 공간이자 한글의 탄생지인 광화문에서 드러나야 한다"며 "(한글 현판을 거는 것은) 과거의 정체성뿐 아니라, 현대와 미래의 정체성까지 담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헌법상 한글이 국가정체성의 기본에 해당한다며, 한글 현판이 정체성 회복에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4년 국가의 정체성과 관련해 '우리말을 국어로 하고 우리글을 한글로 하는 것, 영토를 획정하고 국가주권의 소재를 밝히는 것 등이 국가의 정체성에 관한 기본적 헌법사항'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 
이 대표는 "한글이라는 나랏글자의 역사와 자주적 문화를 세계에 보여줘야 한다"며 "민주공화국이 좌표로 삼는 이상은 세종대왕의 위민정신에 있다. 대한민국 중심에 한글 현판을 걸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반면 한글 현판 반대하는 측은 '원형 복원'의 중요성을 내세웠다. 발제자로 나선 최종덕 전 소장은 "옛것은 우리의 기억을 되살리며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준다"며 "없었던 것을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여러 흔적 가운데 현재와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것을 드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조선 궁궐을 짓밟았던 36년 일본 제국주의의 장막을 걷어내고, 500년 넘게 이어졌던 조선의 상징인 궁궐을 드러내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한국인의 정당한 권리"라며 원형 복원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최 소장은 박정희 정부 때 광화문 현판을 변경한 사례을 비롯해 오세훈 서울시장이 한국전쟁 참전국을 상징하는 22개 조형물을 광화문에 설치하려는 점 등을 짚으며 "광화문 일대가 점점 권력자의 ‘선전장’이 되어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과거에 개입하지 말고, 과거가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스스로 증언하도록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석주 서일대학교 건축과 교수는 경복궁 복원이 완전히 마무리된 뒤 한글 현판을 고려하는 게 맞다고 봤다. 홍 교수는 "(복원이) 어느정도 완결된 후 고치는 게 맞다"며 "원형에 가까운 안이 발견되면 빠르게 바꾸는 게 옳으나, 원형에서 멀어지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관광 랜드마크인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형우 한반도문화관광연구원장은 "(현재 광화문이) 한글의 탄생지라는 강력한 서사를 못 담아내고 있다"며 "(한글 현판은)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이 한글 탄생지임을 상징적으로 선포하는 것"이라고 했다.

현판이 아닌 새로운 첨단 매체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강민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는 "한글은 가장 과학적이며 디지털 환경에 가장 적합한 글자"라며 "먹 문화와 대비되는 방식으로 광화문 광장에 한글이 구현돼,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향적 문구를 보여줄 수 있다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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