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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계림, 김알지 탄생 설화와 수백 년 고목 어우러진 숲
위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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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를 걷다 보면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느낌이 든다. 수천 년의 세월을 품은 돌담과 고분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오래된 시간의 흔적을 떠올리게 한다. 국가 사적 제19호인 계림은 첨성대와 월성 사이에 있는 고요한 숲으로, 경주의 대표적인 역사 공간 가운데 하나다. 우거진 고목이 하늘을 가리고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 이곳은 신라의 시작과 맞닿아 있는 신성한 숲으로 꼽힌다.
이 숲의 본래 이름은 시림 또는 구림이었다. 하지만 서기 60년, 신라 탈해왕 시절의 일화와 함께 계림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어느 날 밤 숲에서 밝은 빛이 새어 나오고 흰 닭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왕이 신하를 보내 살피게 했다. 나무 위에는 금빛 궤짝이 걸려 있었고 그 아래에서는 흰 닭이 울고 있었다. 왕이 직접 가서 궤짝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영특하게 생긴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다. 왕은 이 아이를 하늘이 보낸 인재라 여겨 태자로 삼았다.
금궤에서 나왔다고 하여 성을 김(金)이라 하고, 아이를 뜻하는 알지라는 이름을 붙인 이 소년은 훗날 경주 김씨의 시조가 됐다. 숲의 이름도 닭이 울었다는 뜻을 담아 계림으로 바뀌었고, 한때는 신라를 부르는 국호로 쓰이기도 했다. 김알지는 이후 박씨 왕족인 파사왕에게 왕위를 양보했으나, 그의 7대 후손인 미추왕을 거쳐 내물왕 대부터는 김씨 가문이 신라 왕위를 잇게 됐다. 숲 안쪽에는 조선 순조 3년인 1803년에 세운 비석이 남아 있어 이런 내력을 기록으로 전한다.

숲에는 수령이 수백 년에 이르는 느티나무와 왕버들이 울창하게 자라고, 그 사이로 작은 개울이 굽이쳐 흐른다. 고목의 뒤틀린 가지와 무성한 잎은 숲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더한다. 대릉원에서 시작해 첨성대를 지나 계림을 거쳐 반월성으로 이어지는 길은 경주 여행에서 많은 이들이 찾는 코스다. 특히 봄이면 숲 주변에 노란 유채꽃이 피어 푸른 숲과 어우러진 장관을 만든다.
현재 계림은 연중무휴 상시 개방된다. 별도의 입장료가 없어 언제든 찾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낮에는 우거진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느끼며 걷기 좋고, 해가 진 뒤 조명이 켜진 숲은 낮과는 또 다른 신비로운 정취를 보여준다. 신라의 오랜 역사와 자연의 고요함이 함께 남아 있는 계림은 지금도 경주의 시간을 천천히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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