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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도입 가속화, 인지 노동 탈숙련화와 하류 노동 실재 지적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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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오는 거대한 수레를 피할 수 없다”. 현대차그룹이 노사 교섭 없이 인간형 로봇 ‘아틀라스’를 생산 공정에 투입하겠다고 밝혀 노조가 반발하자 이재명 대통령이 꺼낸 말이다. 정부와 산업계는 AI가 인간 일자리를 줄일 거란 우려가 과장된 두려움이라며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글로벌 AI 빅테크인 앤트로픽, 한국의 국책연구기관(한국노동연구원·산업연구원) 등은 AI가 특히 청년층 신규 채용을 둔화시킨다는 공통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아마존 같은 글로벌 기업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미 국내에서 실질적인 일자리 대체가 이뤄진 사례들도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정작 AI가 인간의 일, 노동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이후연구소 소장(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은 너무 쉬운 낙관이나 비관, 근거없는 관망으로는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모든 것이 자동화되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 뒤에는 수많은 ‘AI 하류노동’이 실재한다. AI가 만들어낸 저질 결과물을 처리하느라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워크슬롭’(work+slop), 인간 고유의 사유를 AI에 위임하면서 가속화하는 ‘인지 노동의 탈숙련화’ 등 노동의 본질을 훼손시키는 현상을 끄집어내고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AI 3대 강국’을 향한 ‘속도 강박’을 멈추고 ‘정의로운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선 AI로 영향을 받는 시민과 기술 약자 등이 소외되지 않는 숙의의 장이 필요하다. 이는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SNS 등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대중의 의식을 독점하고 극단화를 부추겨 내란 사태까지 영향을 미쳤던 뼈아픈 교훈을 다시는 반복해선 안 된다는 강력한 경고이기도 하다. 언론 또한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구상과 말을 퍼 나르는 역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16일 서울 노원구 서울과기대에서 이 소장과 나눈 대화와 서면 인터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그간 AI가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 ‘테크노-리얼리즘’(techno-realism)의 관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어떤 의미인가.

“우리는 기술의 미래를 너무 낙관하거나 반대로 비관하는 경향이 크다. 당장 우리 발 밑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 물질적 조건에 대한 면밀한 탐사나 관찰 없이 말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테크노-리얼리즘은 그런 낙관·비관을 넘어서, 좀 더 현실주의적으로, 실제 조건에 바짝 붙어서 보자는 비판적 접근이라고 보면 된다.”

대규모의 사회적 변동을 일으키는 기술, 국가 역할 필요해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거란 우려도 있지만 ‘없어지는 일자리가 있으면 새롭게 생겨나는 일자리가 있을 거고, 이런 변화는 당연한 것’이라는 관점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AI 도입과 흐름은 한국 사회에서 마치 거대한 역사적 수레와 같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월 현대차의 아틀라스 도입이 협의 없이 추진된다는 노조 반발에 “과거에 기계파괴 운동이 있었지만, 결국 흘러오는 거대한 수레를 피할 수 없었다. 결국 그 사회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고 했다.) 부분적으로 일리는 있다. 그런데 이 논리는 두 가지를 빼놓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첫째는 사라지는 일자리가 새로 생기는 일자리보다 더 많을 때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속 시원히 대답을 못 한다는 점. 둘째는 사라지는 일자리가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늘어서 사회에 큰 충격을 줄 때 그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으려는 태도와 연결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피지컬 AI 같은 경우가 그렇다. 제조업에서 AI 로봇이 본격 도입될 때 생길 문제를 단순히 ‘역사적 흐름’으로만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오히려 ‘정의로운 전환’의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대규모의 사회적 변동을 일으키는 기술에는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다. 마치 애덤 스미스가 얘기하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시장이 움직일 것처럼, 알아서 일자리의 균형이 맞춰질 거라고 보는 것은 안이한 태도다.”

-AI가 실제로 인간의 노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중 하나로 ‘인간의 사유와 인지과정의 탈숙련화’를 이야기했는데, 우려할 만한 수준인가.

“생성형 AI의 문제는 우리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비가시적인 영역에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회적 문제로 ‘크게 터지지’ 않으면 내면적 효과를 읽어내기 어렵다. 다만 인지활동, 인지노동의 ‘탈숙련화’가 진행되는 징후는 분명히 있다. 예를 들면 콜센터 노동자들의 현실, 디자인·게임·문화예술 창작노동 영역에서 그 현상이 꽤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그동안 인지노동을 수행하던 노동자나 창작자들이 노동 과정과 결과물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많은 부분을 AI에 위임하게 되는 현실이 관찰되고 있다.”
인간이 AI 심부름꾼으로?…생성형 AI로 인한 워크슬롭·무력감 겪는 노동자들

-AI를 떠안고 있는 노동들도 있다. 저서 ‘AI 미디어 생태학’에서 ‘인공지능에 소요되는 반도체 부품 노동, 성적·폭력 영상 필터링 등 콘텐츠 조정 노동, AI 대상 식별과 강화학습을 돕는 유령노동·미세노동 등 가상자본을 떠받치는 AI 하류 노동의 구체적인 실상을 파헤쳐야 한다’고 했는데.

“AI가 스스로 작동한다고 하지만 비가시적인 수많은 노동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기존의 정규직이나 안정된 노동의 형태가 아니라 AI를 보조하는 수많은 노동 형태가 사라지고 만들어지며 마치 인간이 심부름꾼으로서 대거 포진할 확률이 높다.

포스코가 사람 대신 휴머노이드 AI 로봇을 도입하면서 활용 수준을 ‘인턴’, 정규직의 70% 수준 능력치로 보고 있다. 나머지 30%는 미숙함으로 남아 있다. 콜센터 상담원도 일의 수위가 기존에는 ‘약중강강약’이었다면 간단하고 패턴화된 일을 AI가 가져가서 ‘강강강강강’만 남는다.

콘텐츠 모더레이터(유해 콘텐츠를 검토하는 직무)는 우울증 약으로 연명하며 노동을 수행하는 경우가 있다. 새로운 형태의 정신병리 직업병 같은 부분이 더 커질 거라 본다.”

-지난해 문화예술 노동자들 상대로 생성형 AI 국면의 창작노동 실태를 조사했다. 그 조사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관찰됐나.

“그렇다. AI가 생성물을 만들어내는 현상 중 ‘슬롭’(slop)이란 말이 있다. 구정물, 쓰레기 같은 의미인데 데이터 학습이 부족한 이유 등으로 최종 합성물이 질적으로 나빠지는 경향을 말한다. 직장에서는 ‘워크 슬롭’이 문제다. 이게 창작자들에게도 똑같이 작용하고 있다. 생성형 AI의 결괏값이 후작업을 더 요구하게 만들어 오히려 일이 잘 안 되게 만든다. 상급자들은 AI를 도입하면 효율성이 높아질 거라고 보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현실이다.

창작자들은 무력감도 많이 이야기한다. 자신들이 만든 창작물이 ‘AI 학습용 땔감’으로 쓰이는 현실, 그 과정이 자신의 통제 밖으로 벗어난다는 소외감이 크다. 더 나아가 동료들의 작업을 ‘훔쳐서’ 보여주는 식의 상호참조 비즈니스 현실에 큰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형 문화산업 제작 방식을 인공지능 자동화 기법에 기대서 밀어붙이려는 현 정부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었다.”
“정치적 알고리즘, 플랫폼 독점 교훈 삼지 않아…부메랑 될 수 있어

-AI는 기존의 창작물을 학습하고 재조합하면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창작 활동 자체가 권리를 인정 받지 못하고 위축된다면 산업을 활성화할 만한 창의적 콘텐츠로 이어질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국면에서 ‘K-컬처 활성화’는 AI를 창작이나 미디어 영역에서 활성화시켜서, 개인 창작의 영역에 있던 것을 자동화되고 공장화된 문화 생산으로 바꿔보자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한국적 콘셉트를 가진 것을 AI로 훨씬 더 빠르게 생산할 수 있는 일종의 AI 콘텐츠 공장을 만들어보자는 것인데, 그것이 지금 개별 창작자들이 느끼는 질적 저하와 비슷한 것 같다. AI가 학습한 평균의 언저리에서 만들어지는 결괏값들이 많기 때문에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미학을 반영한 무엇이 만들어지기 쉽지 않다.”

-산업계나 정부 관점에선 시기를 놓치면 앞으로 기술력이 훨씬 뒤처지게 될 것이란 우려가 있다.

“최근 ‘감속주의’라는 개념으로, 지배적인 과속과 속도 강박, 국가주의적 양상을 비판해왔다. 법과 제도는 국회에서 바꿀 수 있지만 기술은 한번 사회에 착근(着根)되면 되돌리기 어렵고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기도 어렵다. 그래서 고도화된 인공지능 같은 기술은 도입되기 전에 사전에 충분한 공론화 과정과 사회적 숙의를 거치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약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잘 대비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현재 정부 엘리트들은 그런 사회적 문제를 ‘부작용’ 정도로 치부하거나, 심지어 성장의 재료쯤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재작년 우리가 엄동설한에 광화문 등 광장에서 시위하며 내란 국면을 막아내지 않았나. 그 근저에 정치적으로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극단의 혐오를 만들어 낸 촉매 역할로 AI 알고리즘이 작동했다. 정치적 알고리즘의 문제나 플랫폼 독점 등을 교훈으로 삼지 않고 AI는 뭔가 다른 거라고 생각하는 접근법이 있다.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 더욱이 노동 문제와 관련해 해고나 급격한 일자리 이동 등에 대해 전방위적 대책이나 합의, 시민사회 의견을 듣는 다채로운 창구가 존재하지 않으면 더 큰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정부가 말하는) ‘AI 기본사회’는 모든 사람이 AI를 쓰는 사회가 핵심이라고 본다. 전반적 과정을 돌아봐야 할 중대한 시점에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어버리면 AI가 가져올 수 있는 문제지점을 논의하는 숙의적 과정이 생략되고, 그럴 때 초래될 문제가 우려스럽다.”
국내 언론, 실리콘밸리의 생각 퍼 나르기 바빠…이면의 문제 찾아내고 드러내야

-충분한 공론화 과정과 사회적 숙의는 어떤 형태로 진행해야 한다고 보나.

“제가 참고 사례로 자주 드는 게 독일의 에너지 전환, 또 자동차 전환과 관련한 공론화 방식인데, 우리가 배울 게 많다. 단순히 중앙에서만 논의하는 게 아니라, 지역자치단체·시민사회·노조·지역공동체 등 다양한 주체들이 여러 경로로 참여해서 미래 기술에 대해 토론하고 숙의할 수 있는 장이 열려 있다. 국가 단위(국가AI전략위원회)에서 ‘민주주의 분과’를 만든다는 건 불행 중 다행일 수는 있지만, 구조적으로 지금 진행되는 AI 중심주의 경향을 보조하는 빈말이 될 가능성도 크다. 좀 더 내실 있고, 특히 기술 약자의 관점을 수용하는 사회적 논의 테이블이 필요하다.”

-AI에 관한 언론 전반의 보도 경향은 어떻게 평가하나.

“대체로 국내 언론은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이 구상하는 말과 생각을 받아쓰고 퍼 나르기 바쁜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들의 움직임이 기술의 향배를 좌우하는 중요한 근거일 수는 있다. 하지만 언론의 역할은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권력 남용, 불평등 구조, 소외된 사람들, 국가와 인종 문제 같은 것들을 찾아내고 드러내는 작업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보도 태도는 지배적인 정서에 편승하는 경우가 많고, 기술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어떤 비판적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단서도 잘 주지 못하는 것 같다. 흥미롭게도 기술 이슈에 관해서는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대부분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언론이 노동대체론만을 너무 많이 이야기하는 것도 인간 노동자에게 불안요소로 작동한다. 사회적으로 어떤 담론이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느냐가 노동자의 지위와 협상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향후 연구 방향은?

“내가 소장으로 있는 학내 연구소를 기반으로, AI가 미치는 인간 인지와 노동, 환경 독성 문제를 보다 본격적으로 연구하고자 한다. 관련 학술 활동을 잘 지켜봐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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