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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가 가격통제, 환율 1500원 돌파와 재정 부담
데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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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급등에 가격 통제·재정 확대

728조원 예산 중 110조원 국채 조달

원달러 환율 17년 만에 1500원선 돌파
중동 전쟁의 불길이 한국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자, 정부는 지난 13일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전격 시행했다. 빠른 결단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정부 경제정책의 고질적인 문제가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최고가격제 구조는 간단하다. 정유사의 공급가를 묶고, 그 손실은 국가 재정으로 보전하는 방식이다. 서민 물가를 지킨다는 명분이지만, 가격 규제가 장기화될수록 재정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공급 위축과 시장 왜곡이라는 부작용도 피하기 어렵다.

한국은행은 최고가격제 시행 하루 전인 지난 12일 국회에서 “도입 기간이 길어질수록 초과 수요 발생 등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단기 민심 달래기에 급급한 나머지, 비용을 미래로 떠넘기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이 대통령의 가격 통제 본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출범 직후인 지난해 6월 27일, 금융위원회는 수도권·규제지역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그런데 발표 당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대통령실 대책이 아니다. 입장도 없다”며 금융위 발표에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논란이 커지자 약 90분 후 대통령실은 언론 공지를 통해 “금융위 등 부처와 긴밀히 소통 중”이라며 말을 뒤집었다.

올해 국가 예산은 728조원, 전년 대비 8.1% 늘어난 슈퍼 확장 재정이다. 그 중 110조원은 국채를 발행해 조달한다.

정부는 AI와 R&D에 투자하는 이 채무가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이 대규모 지출을 뒷받침할 세수 확보 방안은 뚜렷하지 않다. 재정을 늘리겠다는 의지를 확고하지만, 그 돈이 어디서 오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여기에 고환율까지 덮쳤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4일 새벽 야간 거래에서 1506원까지 치솟으며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1500원선을 돌파했다.

고유가와 고환율이 맞물리면 수입 물가가 동시에 치솟고, 그 충격은 제조원가 상승과 소비자 물가 폭등으로 이어진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 특성상, 환율 불안은 단순한 금융시장 문제가 아니라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뇌관이다.

지난 2월 4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청년 일자리와 지방투자 확대를 위한 간담회’에서 이 대통령은 10대 그룹 총수들에게 청년 일자리와 지방 투자 확대를 당부했다.

이날 자리에서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은 “주요 10대 그룹은 5년간 약 270조원 규모의 지방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고, 이규연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은 “그 중 올해 66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화려한 숫자지만, 민간을 조이면서 성과는 정부가 포장하고 약속이 빗나가도 책임은 흐릿해지는 구조라는 우려가 나온다.

중동 사태가 장기화되면 물가는 더 오르고 성장률은 더 떨어진다. 현재 정부는 추가경정예산 카드까지 검토하고 있다.

재정은 풀리고, 시장은 통제된다. 당장 눈에 보이는 가격을 억누르는 것과, 경제가 스스로 숨 쉬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정부가 ‘관리자’를 자처하는 사이 한국 경제의 체력은 조용히 소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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