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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유령 GDP 논란, 지능 자산화와 GIP 경제 체제 전환
IT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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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실리콘밸리와 월스트리트를 강타한 시트리니 리서치(Citrini Research)의 리포트, ‘지능의 풍요가 불러온 청구서(The Consequences of Abundant Intelligence)’는 인공지능(AI) 파괴론 논란을 불어왔다. 2028년의 시점에서 지난 2년을 회고하는 리포트는, AI 혁명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어떻게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리는지 치밀한 논리로 그려낸다.

리포트에서 경고하는 파국의 핵심은 유령 GDP(Ghost GDP)다. AI가 화이트칼라를 대체하며 기업의 생산성은 폭발하지만, 정작 기계는 사치품을 사거나 여행을 가지 않는다. 일자리를 잃은 인간의 지출이 급감하면서 생산과 소비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고, 지표상으로는 경제가 성장하지만 실물 경제에는 피(돈)가 돌지 않는 치명적인 동맥경화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AI 에이전트가 B2B 소프트웨어(SaaS)를 대체하고, AI 비서가 완벽한 가격 비교로 플랫폼 기업들의 마진을 앗아가면서 기존의 '중개 비즈니스' 생태계마저 붕괴한다고 예언한다.

이 디스토피아적 시나리오는 현재의 낡은 경제학 패러다임을 AI 시대에 그대로 대입했을 때 도달하게 되는 매우 정확한, 그리고 논리적인 결론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러한 파국은 오지 않는다고 본다. 시트리니의 분석은 인간의 본질을 간과했고, 경제 구조의 재편 과정을 단순히 '파괴'로만 해석하는 오류를 범했다.

기계의 생산성 vs. 인간의 신체성과 욕망: 유령 GDP의 논리적 오류

시트리니의 '유령 GDP' 시나리오가 성립하려면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인간이 하던 '가치 창출'을 AI가 100%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AI의 최적화 능력과 인간의 창의성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존재한다. 그 강의 이름은 바로 욕망과 신체성(Embodiment)이다.

AI는 오차를 줄이려 안간힘을 쓰는 기계다. 반면 인간은 피곤해서 실수를 저지르고, 꽉 짜인 시스템에 지루함을 느껴 반항하며, 엉뚱한 짓을 하는 존재다. 하지만 접착력이 약해 실패한 풀을 '포스트잇'으로 재탄생시키듯, 실패를 성공으로 재정의하고 새로운 목적지를 설정하는 것은 오직 신체를 가진 인간의 '욕망'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따라서 AI 시대의 경제는 소멸하지 않는다. AI가 기존의 정형화된 인지 노동을 대체한다면, 인간은 그 AI 인프라를 지렛대 삼아 새로운 차원의 욕망(문화, 철학, 초개인화된 경험, 미지의 과학 탐구 등)을 설계하고 소비하는 주체로 이동할 것이다. 문제는 '생산'이 아니라, 그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소비할 '자본'을 대중이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한다.

노동 소득의 종말과 '지능의 자산화(GIP)'라는 새로운 사회 계약

일자리가 사라지면 소비가 무너진다는 우려는 인간이 시간과 노동을 팔아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20세기적 발상이다. AI가 노동을 대체한다면, 우리는 노동 대신 지능을 자산화해 소득을 창출하는 구조로 넘어가야 한다.

이것이 국가의 부를 재정의하는 국민총지능생산(GIP: Gross Intelligence Product)의 핵심이다. 대중은 더 이상 임금 노동자가 아니다. 각자의 도메인 지식, 경험, 직관(Ground Truth)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AI 에이전트를 학습시키고, 이를 경제 생태계에 제공해 라이선스와 배당 수익을 얻는 '마이크로 자본가'로 진화해야 한다. 즉, 거대 빅테크의 GPU 클러스터가 부를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수천만 국민의 퍼스널 소버린 AI(Personal Sovereign AI) 또는 소버린 AI 에이전트가 경제의 기저에서 각자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모델이다. 소비 경제는 오히려 이 새로운 '지능 자산 소득'을 통해 더욱 강력하게 유지될 것이다.

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은 개인 데이터의 온전한 주권 회복이다. 지금까지 빅테크 기업들이 무상으로 채굴해온 파편화된 일상의 데이터들을 개인이 자산화하고, 이를 특정 도메인에 특화된 ‘마이 에이전트’로 정제해낼 수 있는 기술적 체계가 필요하다. 개인이 생성한 지식 콘텐츠나 노하우가 AI 학습의 거름으로만 쓰이고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그 지능이 발현될 때마다 스마트 계약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로열티가 정산되는 '지능 스트리밍' 경제가 구축되어야 한다. 그래야, 노동 소득을 대체할 지능 자산 소득의 실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

지대 추구의 종말: 마찰 제로(Friction-Zero) 경제의 도래

시트리니가 우려한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기업과 중개 플랫폼의 연쇄 도산은 어떠한가? 단기적으로는 일단 SaaS 기업이 가진 고객 맞춤형 서비스와 노하우, 데이터가 쉽게 대체되기는 힘들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경제의 붕괴라기 보다는, 지난 수십 년간 미국 경제를 지탱해 온 지대 추구(Rent-extraction) 생태계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으로 봐야한다. 인간의 귀찮음, 정보 비대칭성, 전환 비용의 장벽에 기생하여 마진을 챙기던 비효율이 AI 에이전트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는 것이다.

그런데, 소비자와 기업이 불필요한 라이선스 갱신이나 중개 수수료에 낭비하던 거대한 자본은 공중으로 증발하는 것이 아니다. 이 자본은 실질적인 물리적 혁신, 딥테크, 그리고 인간 본연의 가치를 높이는 새로운 산업으로 재배치될 것이다. 경제 시스템에 끼어 있던 거대한 마찰(Friction)이 0으로 수렴하면서, 인류는 오히려 유례없는 자원 배분의 초효율 시대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알고리즘이 모든 가격과 성능을 최적화하는 '마찰 제로' 사회에서, 역설적으로 가장 희소해지는 자원은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신뢰’와 ‘공감’이다. 단순 중개 업무는 AI가 가져가겠지만,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타인의 고통에 공명하며 새로운 가치관을 제안하는 ‘휴먼 터치’의 영역은 더욱 고도화된 프리미엄 시장으로 재편될 것이다. 유령 GDP가 실물 경제의 온기를 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AI라는 도구가 인간을 단순 반복적 인지 노동에서 해방시켜 우리를 더욱 인간다운 가치 소비로 이끄는 셈이다.

국가의 새로운 역할: 보편적 지능권의 보장

물론 시트리니의 경고처럼 통제 불능의 디플레이션 나선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있다. 바로 국가의 선제적 개입과 시스템 재설계다.

시장에만 모든 것을 맡겨두면, 지능의 양극화가 부의 양극화로 직결되어 결국 시스템이 붕괴한다. 따라서 국가는 AI 시대를 지탱할 새로운 헌법적 가치로 보편적 지능권(Universal Intelligence Right)을 선언해야 한다. 20세기에 도로와 전기가 국가 인프라였듯, 21세기에는 국민 누구나 자신의 지능을 자산화할 수 있도록 강력한 공공 AI 인프라와 데이터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파생되는 막대한 부의 일부를 '지능형 기본소득'으로 순환시키는 룰을 만들어야 한다.

시트리니 리서치가 본 것은 기존 패러다임이 붕괴하는 '파괴의 파도'였다. 하지만 그 파도 이면에는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 인간 본연의 창의성에 집중하고, 마찰 비용 없는 초효율 경제로 나아가는 인류의 도약도 기다리고 있다. AI 경제는 결코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승현 포티투마루 부사장은 스타트업 창업가 출신의 AI 전문가다.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인공지능플랫폼혁신국장으로서 재직하면서 대한민국 공공 AI의 초석을 닦았으며, 현재는 법무법인 린의 공공AX 고문을 겸하며 기술과 정책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론에 머물지 않는 현장형 전략가로서 국가 전반의 AI 네이티브 전환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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