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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스릴러 문 연 강지영 작가…지극히 한국적인 캐릭터의 힘
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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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실금을 앓는 50대 아줌마는 냉혹한 프로 킬러, 대머리에 배 나온 잡화상 주인은 무기 밀매상이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여대생은 어느 날 살인자들의 전쟁에 휘말린다. 

작가 강지영의 소설 속 인물들은 낯익지만 뻔하지 않다. 스쳐 지나칠 법한 평범한 모습 뒤에는 반전이 있다. 장소도 마찬가지다. 흔한 동네 마트나 정육점도 대수로이 넘겨서는 안 된다. 

'K-스릴러'의 문을 연 강지영의 소설 '심여사는 킬러'는 올해 상반기 중 20여 개국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그는 최근 잠실 서울책보고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해외의 러브콜에 대해 “캐릭터가 한국적이기 때문”이라며 “세계에서 ‘한국적인 것이 힙하다’는 문화가 형성된 영향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극히 'K'스러운 인물과 배경이 매력 요소라는 것. 
실제 출간을 앞둔 ‘심여사는 킬러’ 미국판과 영국판 표지에 쇠젓가락 이미지가 담기거나 제목과 작가 이름을 영어와 한글로 병기하는 등 한국색을 적극 드러냈다.  

강 작가는 오는 3월 28일부터 북투어에 나선다. 프랑스 파리를 시작으로 리옹, 폴란드, 헝가리 등을 방문한다. 그는 이러한 성과에 대해 “매우 기쁘다”면서도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설레면서 걱정도 되네요. 운 좋게 작품 하나를 수출하게 됐는데, 제 작품으로 인해 다른 작가들이 나아갈 길에 방해가 되면 안 되니까요.”

그는 장르문학, 순문학, 웹툰, 웹소설 모두를 넘나든다. 특히 디즈니플러스는 2024년 그의 작품 ‘살인자의 쇼핑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킬러들의 쇼핑몰’을 선보였다. 배우 이동욱과 김혜준이 주연을 맡았다. 시즌1 흥행에 힘입어 연내 시즌2가 나온다.
강 작가 작품은 출간과 동시에 2차 판권 계약이 잇따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장면이 떠오르는 생생한 묘사가 강점으로 꼽힌다. 또한 소설 곳곳에 블랙유머가 배어 있어 독자들은 날 선 폭력에 서늘함을 느끼다가도 피식 웃게 된다.  

영상화를 먼저 염두에 두고 작품을 구상한 적은 없다. 슈퍼IP의 힘은 ‘생활’에 있다. 매일 오전 9시면 책상에 앉아 오후 5시 30분에 원고 작업을 마친다. 그는 “성실하게 쓰지 않았다면 살아남기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아이가 있어요. 애는 꿈으로만 클 수 없더군요. 열심히 살았죠. 30대 후반까지 직장을 병행하면서 소설을 썼어요. 글은 밥이 되고, 학원비가 되고, 또 급식비가 되죠. 이 과정 자체가 성장의 시기였어요. 성취감뿐 아니라 자부심도 상당해요. 고급 취미 생활이어서 글쓰기를 선택한 게 아니에요.”

익숙한 사람들의 반전

강지영의 작품 속 인물들은 친근하다. 캐릭터의 출발점은 그의 주변 인물들이다.  

“‘기린 위의 가마괴’ 여주인공은 제 여동생 모습 일부를 차용했어요. ‘살인자의 쇼핑몰’의 정진만은 제 아버지의 대리인이고, ‘심여사는 킬러’의 심은온은 저희 고모에게서 일부를 따왔죠. 고모가 남편을 잃은 뒤 남매를 키우면서 정육점을 운영하셨어요. 그 모습에서 캐릭터의 기본 설정을 갖고 왔어요. 독자들이 제 작품에서 ‘우리 엄마’ ‘내 동생’ 등 주변 사람의 일면을 찾을 수 있는 이유죠.”

그러나 반전이 있다. 아줌마는 칼을 휘두르는 냉혹한 킬러고, 배불뚝이 아저씨는 무기밀매 세계의 큰손이다. 특히 그는 2030 여성을 '출구를 찾아 계속해서 걸어 나가는' 강인한 존재로 그린다. 데뷔 초 단편을 쓸 때만 해도 주인공 대부분은 남성이었다. 여성은 폭력의 피해자 등 소모적 캐릭터에 그쳤다. “장편을 쓰면서 '여자인 내가 여성을 주체적인 인물로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장편 주인공이 막 세상에 나온 젊은 여성인 경우가 많은 이유죠.”
3부작 ‘살인자의 쇼핑몰’이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주인공 정지안이 세계와 부딪치며 단단해지는 성장소설처럼 읽히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정직원으로 취업하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맞서는, 더는 사회초년생이 아닌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을 그려보고자 했어요.”

이는 작가의 20대 시절이기도 하다. 파주에서 성장한 그는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하면서 자립해야 했다. “그땐 정말 억척스럽게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스물한 살 때부터 취직해서 돈 벌었죠. 세상이 '억까'하는 것 같더군요. 어느 순간 가족이 낯설게 느껴졌어요. 가족에게 헌신하기 시작한 건 아이를 낳으면서부터예요. 그때 비로소 조카 정지안이 아닌 삼촌 정진만으로 넘어갔죠.”

아슬아슬한 거짓말

강지영의 소설에서는 수많은 인물이 죽는다. 그런데 묘하게 개운하다. 강 작가는 “누구나 죽이고 싶은 사람 하나쯤은 있지 않냐"고 말했다.

“누구나 '시원하게 죽이고 싶다' '없애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하지 않나요? 저는 현실에서 하기 어려운 일을 이야기 안에서 실현해 줄 뿐이죠.”

얽매인 관계도 비슷하다. '기린 위의 가마괴’ 주인공은 가족을 끊어내요. ‘해롭다면 끊어내도 된다’는 말을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었어요. 스스로가 행복한 길을 찾아야 해요. 이를 차마 못 하는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이라도 주고 싶어요.”
그는 최근 중편 ‘독니’를 마감했다. 독니의 주인공은 고유정, 이은혜, 엄인숙, 김선자 등 우리나라 여성 연쇄살인범의 교집합이다. "독극물로 사랑했던 사람을 살해하는 방식이 많아 제목을 ‘독니’로 지었어요. 29년 1개월 만에 가석방돼 세상에 나온 70대 여성을 통해 ‘인간은 과연 교화할 수 있는가’를 회의적인 시선으로 봤어요.” 가톨릭 정통 구마 의식을 소재로 한 작품도 여름께 출간된다. 작품을 쓰는 내내 가위에 눌릴 정도로 힘들었다.

강 작가 앞에는 ‘젊은 작가’ 혹은 ‘이야기꾼’이란 수식어가 붙어 있다. 50세를 앞둔 그는 이제 수식어에 개의치 않는다. 

“저는 간혹 제 직업을 ‘들통나지 않게 거짓말을 교묘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해요.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서 진짜 같은 거짓말을 끊임없이 하는 것이죠. 뭐라고 불리든 상관없어요. 제가 만들어낸 세계에 독자들이 잘 속아 넘어가기만 하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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