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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영웅 고(故) 최백인 일병, 76년 만에 귀환
BEMIL 군사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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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부 제공

- 2007년 4월 경북 영천 발굴 유해, 국군 제6사단 최백인 일병으로 확인

- 19세에 1950년 9월 ‘영천 전투’ 전사…76년 만에 여동생의 품으로

□ 2월 10일(화),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지키다 19세의 나이로 산화한 호국영웅 고(故) 최백인 일병이 가족의 품으로 귀환했다.

◦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2007년 4월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신방리 운주산 일대에서 육군 제50보병사단과 함께 발굴한 유해의 신원을 국군 제6사단 7연대 소속의 고 최백인 일병으로 확인했다.

◦ 고인은 올해 국유단이 첫 번째로 신원을 확인한 호국영웅이다. 이로써 2000년 4월 유해발굴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국군 전사자는 총 269명으로 늘었다.

□ 19년 전 국유단과 50사단 장병들은 6·25전쟁 당시 개인호(個人壕)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지점에서 고인의 유해와 유품을 수습했다.

◦ 당시 50사단 장병들이 발굴현장에서 기초발굴을 하던 중 고인의 넙다리뼈 일부를 발견했다. 이어 국유단 전문 발굴병력이 주변을 확장하면서 정밀발굴을 진행한 결과, 산발적으로 흩어진 고인의 유해 일부를 수습할 수 있었다.

◦ 또한, 유해의 지근거리에서 국군의 전투복, 전투화 등 19점의 유품을 식별했다. 이를 통해 해당 유해가 아군의 유해임을 일차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유품만으로는 신원을 특정하기는 어려웠다.

□ 이번 고인의 신원확인은 오빠를 찾기 위해 시료채취에 참여했던 여동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2008년, 국유단은 고인의 유해로부터 유전자 시료 채취를 시도하였으나, 당시 유전자 기술로는 유의미한 유전자 분석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한, 고인의 유전자와 비교할 가족이나 친인척의 유전자 시료가 당시에는 확보되지 않아 신원확인을 할 수 없었다.

◦ 2021년 10월, 고인의 유일한 생존 혈육인 여동생 최길자 씨(1942년생, 당시 79세)가 전주시보건소에서 유전자 시료 채취에 참여하며 신원 확인의 결정적 계기가 마련되었다. 유전자 추출 및 분석 기술의 발달로 과거에는 확인이 어려웠던 유해에서도 유전 정보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를 유가족의 시료와 대조한 끝에 마침내 가족관계를 확정했다.

□ 고인은 1930년 10월에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태어났다.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8월에 입대했으며, 국군 제6사단 7연대 소속으로 참전한 영천 전투에서 동년 9월에 전사했다.

◦ 고인은 1930년 10월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6남매(5남 1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유가족은 고인이 청소년기에 가구를 제작하는 공장에서 일했으며, 결혼은 하지 않은 채로 입대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 1950년 8월, 고인은 마을 청년들과 함께 입대해 육군 제1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친 뒤 국군 제6사단 7연대에 배치됐다. 이후 같은 해 9월 6일∼13일 전개된 영천 전투에서 북한군과 교전 중 전사했다.

◦ 영천 전투는 국군 제8사단이 제1·6사단의 각 1개 연대와 함께 영천을 장악한 북한군 제15사단을 몰아낸 전투를 말한다. 국군은 영천을 탈환 함으로써 낙동강 전선 동반부를 방어해낼 수 있었다. 반대로 북한은 대구방면 공격이 좌절되면서 9월 공세에 실패했다. 이때부터 전세가 역전돼 국군과 유엔군이 작전의 형태를 반격으로 전환하게 된다.

□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유가족 요청에 따라 2월 10일(화) 전라북도 전주시에 거주하는 고인의 여동생 최길자 씨 자택에서 열렸다.

◦ 최길자 씨는 “국유단으로부터 (신원확인을 했다는) 연락을 받기 며칠 전에 오빠가 꿈에 보여서 밥 한 그릇이라도 올려야 되겠다고 생각해 그릇 가게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샀는데, 그날 국유단에서 오빠를 찾았다는 연락이 와서 더욱 꿈만 같았다”며, “오빠의 유해를 국립묘지 따뜻한 곳에 모시고 싶고, 내 죽기 전에 오빠를 찾아서 묻어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쁘다”고 소회를 전했다.

◦ 행사를 주관한 김성환 국유단장 직무대리(육군 중령)는 유가족에게 호국영웅 귀환 패와 신원확인 통지서, 발굴 유품이 담긴 호국의 얼 함(函)을 전달했다. 이어 고인의 참전 경로와 유해발굴 경과, 신원확인 까지의 과정을 설명했다.

◦ 김성환 중령은 “6·25 전사자 신원확인의 핵심은 유가족의 시료채취 참여에 있다”며, “올해 고 최백인 일병을 시작으로 더 많은 호국영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라고 밝혔다.

□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으나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6·25전사자의 신원확인을 위해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입니다.

◦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는 6·25전사자의 유가족으로서 전사자 기준으로 친·외가 8촌까지 신청 가능합니다. 제공하신 유전자 정보를 통해 전사자의 신원이 확인될 경우 1,000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정부 24”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6·25전쟁이 발발한 지 오랜 시간이 흐른 현재 참전용사와 유가족의 고령화 등으로 유가족 찾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만큼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절실합니다.

◦ 국유단은 전국 각지에 계신 유가족분들을 찾기 위해 오늘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유전자 시료를 제공하고 싶어도 거동이 불편해 참여가 어려운 분들께서는 대표번호 1577-5625(오! 6·25)로 언제든 연락주시면 직접 찾아뵙고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드리고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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