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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비례대표 ‘저지조항’ 위헌… 3% 벽 이후의 정치
시사위크
비례대표 의석할당 ‘3% 저지선’이 헌법 위반으로 판단됐다. 헌법재판소는 29일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당 득표율 3% 미만이면 의석을 배분하지 않도록 한 공직선거법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해당 규정이 군소정당 난립을 막는다는 목적과 달리 사표를 구조적으로 늘리고 선거의 비례성을 훼손해 왔다고 봤다. 나아가 한국의 정치·선거 구조에서는 이 같은 봉쇄조항이 새로운 정치세력의 원내 진입을 차단하는 효과로 작용해 왔다는 것이다. 이번 결정으로 비례대표 ‘저지조항’은 효력을 상실하게 됐고, 선거제도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 관건은 극단주의 우려를 포함한 제도적 공백을 국회가 어떤 입법 논의로 보완할지다.
◇ 헌재 “표의 일률적 배제는 과도”… 대안은 입법으로 보완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은 비례대표 득표율 3% 기준 자체를 문제 삼은 데 그치지 않는다. 헌재는 비례대표 선거에서 일정 득표율에 못 미친 정당의 표를 구조적으로 배제해 온 공직선거법 조항을 위헌으로 판단하면서 해당 기준이 전제해 온 선거에 대한 인식이 더 이상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봤다. 헌재는 군소정당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정당에 투표한 유권자의 선택을 의석 배분에서 제외하는 방식이 평등선거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헌재는 선거제도의 구체적 설계에 대해 입법자의 형성권을 폭넓게 인정해 왔다. 비례대표 ‘저지조항’ 역시 군소정당의 난립을 방지하고 의회의 안정적 운영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유지돼 왔다. 그러나 이번 결정에서는 ‘저지조항’의 목적 자체보다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유권자의 표를 의석 배분에서 배제하는 방식이 현행 정치·선거 구조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판단했다. 헌재는 이 과정에서 ‘저지조항’이 사표를 늘리고, 정당에 따라 표의 효과가 달라지는 결과를 낳는 점을 주요 판단 요소로 삼았다.
또 헌재는 대통령제 국가인 한국의 경우 의원내각제 국가와 달리 의회 내 안정적 다수 형성이 국정 운영의 필수 조건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전체 국회의원 300석 가운데 비례대표는 46석에 불과하다. 지역구 선거도 소선거구·다수대표제로 운영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비례대표 영역에서 일부 소수정당이 원내에 진입하더라도 의회 기능이 마비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헌재는 이러한 제도적 조건 아래에서 ‘저지조항’이 의회 안정보다 거대정당에 유리한 구조를 강화해 왔다고 봤다.
보충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3%가 약 86만 표에 해당한다는 점을 들어 해당 기준이 단순한 기술적 수치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광역자치단체 하나 규모의 유권자 선택이 일정 기준에 미달했다는 이유로 국회 구성에서 전면 배제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헌법적 의미와 효과를 엄격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취지다. 또 비례대표 의석수가 46석에 불과해 ‘저지조항’이 없더라도 대략 1~2% 수준의 득표 없이는 비례대표 1석을 얻기 어렵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헌재는 다만 극단주의 정당의 원내 진입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함께 짚었다. 반대의견을 낸 정형식·조한창 재판관은 극소수의 지지를 받는 정치세력이 의회에 진출할 경우, 그 활동이 과도하게 부각되거나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점을 문제로 제기했다. 이 같은 우려는 이번 위헌 결정 이후 선거제도 개편 논의 과정에서 주요 쟁점으로 남게 됐다.
그러나 다수의견은 이러한 우려가 곧바로 비례대표 ‘저지조항’을 유지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극단주의 확산 가능성을 관리하는 방식은 유권자의 표를 일률적으로 배제하는 기준이 아니라, 다른 제도적 장치를 통해 모색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교섭단체 제도나 국회 운영 규칙, 정당 설립 요건 등 현행 제도와 함께 비례대표 의석 구조나 선거제도 전반에 대한 조정을 통해 대표성과 안정성 간의 균형을 도모할 수 있다는 취지다.
이번 결정은 다당제를 선언하거나 정치적 혼란을 감수하라고 요구한 판단은 아니다. 헌재는 비례대표 ‘저지조항’이 더 이상 헌법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는 판단을 제시했을 뿐이다. 이에 따라 향후 선거제도 개편 과정에서 극단주의 우려를 포함한 제도적 공백을 어떻게 보완할지는 국회의 입법 논의에 맡겨지게 됐다.
한편 이번 결정에 대해 소수·진보정당들은 정치개혁의 전환점이 될 판결이라며 일제히 환영 입장을 밝혔다. 사회민주당 한창민 대표는 “사표의 증대와 비례성 약화를 초래해 온 3% 봉쇄조항의 위헌성을 헌재가 분명히 했다”며 “군소정당 배제를 통해 거대정당의 세력만 강화해 온 구조에 제동을 건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한 대표는 국회의원 선거뿐 아니라 지방의회 비례대표에 적용되는 5% 득표 기준도 함께 개정해야 한다며 다가올 지방선거부터 비례성과 다양성을 강화한 제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 역시 “다당제 민주주의의 복잡성보다 새로운 정치세력의 원내 진출이 국민의 이익이라는 헌재 판단을 환영한다”며 이번 결정을 “대한민국 정치개혁의 전환점이 될 역사적 판결”로 평가했다. 용 대표는 제21대 국회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강화와 ‘저지조항’ 하향 등을 담은 선거개혁 법안을 발의했던 점을 언급하며, “공직선거의 비례성·다양성·대표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이번 헌재 결정에 그대로 반영됐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