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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 인터뷰] ‘클림트와 리치오디의 기적’展 전수미 관장 “100년 만의 외출… 클림트 한국 전시는 기적”
투데이신문
마이아트뮤지엄은 12월 19일부터 내년 3월 22일까지 《클림트와 리치오디의 기적: 이탈리아 리치오디 현대미술관 컬렉션》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클림트의 원화 공개뿐만 아니라 그간 국내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이탈리아 근·현대 미술의 흐름을 조망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전시를 공동 기획한 비채아트뮤지엄 전수미 관장은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 ACEP 2022 한국 발달장애 특별전, 드림어빌리티, WOORI A DREAM, 한국-오스트리아 발달장애 미술가 교류 특별전 등 굵직한 전시를 통해 예술의 사회적 가치와 대중적 공감을 이끌어온 인물이다. 전 관장은 이번 전시가 단순한 명화 감상을 넘어 19세기 유럽 미술사에서 잃어버린 연결고리로 남아있던 이탈리아 인상주의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투데이신문은 전수미 관장을 만나 기적처럼 성사된 이번 전시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관람 포인트, 그리고 그녀의 전시 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래는 전 관장과의 일문일답.
Q. 전시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기획 의도가 궁금하다.
이번 전시는 마이아트뮤지엄과 호흡을 맞춰 기획했다. 《르누아르의 여인들》(2016~2017) 전시 등을 통해 인연을 맺은 이태근 관장과 평소 ‘알려지지 않은 가치, 더 깊은 공감을 줄 수 있는 전시’에 대해 고민을 나눠왔다. 국내 전시 시장에 프랑스 인상주의는 익숙하지만 이탈리아 인상주의는 생소하다. 익숙한 것을 답습하기보다 관람객에게 새로운 자극과 창의력을 주고 싶었다. 클림트의 걸작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상주의의 태동이자 견인차 역할을 했던 이탈리아 리치오디 현대미술관의 컬렉션을 통해 미술사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고자 했다.

여러 겹의 기적이 겹쳐 있다. 우선 클림트의 〈여인의 초상〉이 도난당했다가 23년 만에 다시 돌아온 것 자체가 기적이다. 또한 이 작품이 이탈리아 국경을 넘은 것도, 1925년 설립된 리치오디 현대미술관의 소장품 70여 점이 대규모로 해외로 반출된 것도 모두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100년 만에 밀라노 말펜사 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온 이 작품들을 마주하는 것 자체가 관람객들에게는 기적 같은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Q. 프랑스가 아닌 ‘이탈리아 인상주의’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흔히 인상주의의 시작을 1874년 프랑스로 알고 있지만, 이탈리아의 ‘마키아이올리(Macchiaioli)’파는 그보다 20년 앞선 1850년대부터 활동했다. 이들은 전통적인 관습을 깨고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화폭에 담았다. 프랑스 인상주의가 ‘혁명’이었다면, 이들의 시도는 ‘개혁의 태동’이었다. 바로크 이후 사실주의, 낭만주의가 뒤섞인 과도기적 특징 때문에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인상주의 정신의 시발점이자 유럽 미술사의 잃어버린 연결고리라는 점에서 재조명의 가치가 충분하다.

굳이 꼽자면 우선 레토 안토니노의 〈카프리의 파라글리오니〉를 추천하고 싶다. 카프리섬의 유명한 기암괴석인 파라글리오니를 그린 작품인데, 남부 이탈리아 특유의 강렬한 햇살이 화폭을 뚫고 나오는 듯하다. 우리가 흔히 접해 온 프랑스 인상주의의 부드러운 색채와는 확연히 다른, 이탈리아 화가들이 빛과 풍경을 자신들의 방식대로 어떻게 소화했는지 보여주는 수작이다.
마키아이올리파의 거장 텔레마코 시뇨리니의 〈비아레조 해변의 풍경〉도 놓칠 수 없다. 해변 한가운데 선 남성의 모습을 통해 도시를 벗어난 자연과 시골의 정취를 순간적인 빛과 색채로 포착했다. 론콜로 지역의 소박한 집이나 산을 묘사한 작품들 역시 이탈리아의 꾸밈없는 풍경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이 외에도 프랑스 화가들과 활발히 교류했던 작가의 〈푸른 옷을 입은 여인의 초상〉이나, 중세나 르네상스 시대와는 다른 관점에서 아름다운 여체를 표현한 2m 크기의 대형 누드화도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안토니오 폰타네시의 작품을 주목하면 좋을 거 같다. 그는 일본 미술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동양의 서양화단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간접적으로는 한국 근대 미술과도 연결된다. 훗날 한국 화가들이 이탈리아 유학을 떠나는 물꼬를 튼 역사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Q. 그간 굵직한 전시들을 이끌어왔다. 본인만의 전시 철학은.
2016년 《르누아르의 여인들》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전시 기획의 길에 들어섰다. 나의 전시 철학은 확고하다. 바로 ‘가치 있는 전시’를 선보이는 것이다. 요즘 2~3만 원이라는 비용으로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문화생활이 많지 않다. 그렇기에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이 시골에서 온 꼬마든, 평범한 아주머니든 누구에게나 그 비용 이상의 울림을 주고 싶다.
과거 기획했던 전시들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이미지 오브 우먼》에서는 여성의 관점에서 아름다움을 재조명했고, 피카소 특별전의 경우 거장의 화려한 명성이나 부(富)가 아니라 말년까지 식지 않았던 창작욕,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재해석하는 등 역사와 전통을 되돌아봤던 인간적인 면모, 그리고 평화주의자로서의 피카소를 보여주려 했다. 또한, 세 차례 자비로 진행한 발달장애 아티스트 전시 ‘드림 어빌리티(Dream Ability)’ 역시 장애를 ‘분리’의 대상이 아닌 ‘공유’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그들을 ‘꿈꿀 수 있는 능력자’로 소개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명작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을 넘어 지금 우리의 이야기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전시 역시 마찬가지다. 이탈리아 인상주의가 어떻게 현대 미술의 태동이 되었고, 인류 예술사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어떻게 우리에게까지 이어져 왔는지 그 ‘맥락’을 보여주는 데 중점을 뒀다.

관람객들이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작품을 느끼도록 돕는 것이다. 많은 분이 큐레이터가 옆에 있으면 미술사적 지식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불안감을 느낀다. 하지만 전시를 보는 데 미술사를 완벽히 알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런 지식이 순수한 감상을 방해하기도 한다.
나는 그저 낯선 그림 앞에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가볍게 질문을 던져주는 역할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림은 사람과 풍경에 관한 이야기고, 이번 전시엔 행복한 에너지를 주는 작품이 많다. ‘마키아이올리’라는 용어를 모르더라도, 그저 눈앞의 풍경과 삶을 편안한 마음으로 즐겨주시길 바란다.
Q. 준비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이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대형 전시는 늘 어렵지만, 이번엔 리치오대미술관 컬렉션의 사상 첫 해외 반출이라 절차가 훨씬 까다로웠다. 특히 클림트의 〈여인의 초상〉은 보존을 위해 방탄유리 케이스 안에 또 다른 유리 상자를 넣어 이중으로 보호하도록 조치했다.
비용 문제도 만만치 않았다. 주요 작품에 대한 계약은 일찌감치 마쳤지만, 막상 실행 단계에서 유로화 환율이 급등해 재정적 부담이 컸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 관람객들이 이 귀한 작품들을 보러 올 모습을 상상하면 신기하게도 다시 에너지가 솟았다.
Q. 전시를 통해 관람객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시다면.
작품을 어렵게 분석하려 하기보다 편안하게 감상하셨으면 좋겠다. 이탈리아 인상주의가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이탈리아에도 이런 화가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아는 프랑스 인상주의가 탄생할 수 있었구나”, 혹은 “마우리치오 카텔란 같은 현대 작가도 이런 예술적 토양에서 나왔구나”라며 맥락을 이해하는 재미를 느끼시길 바란다. 클림트라는 이름에만 매몰되지 말고, 19세기 미술사의 미싱 링크를 발견하는 데 초점을 맞춰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