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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러 왔다가 살 이유를 찾았다" 2025년 세밑, 대학로를 달굴 벼랑 끝 아이러니 연극 '벼랑 끝에서'
스타트업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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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2월 말이면 대학로 골목은 두 종류의 공기가 섞인다.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의 찬 공기와 새해를 맞는 들뜬 열기다. 수많은 상업극이 '로맨틱'과 '해피엔딩'을 외칠 때, 오히려 인간의 가장 어두운 밑바닥인 '절망'을 파고들어 역설적인 희망을 노래하는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오는 12월 30일부터 2026년 1월 4일까지 서울 대학로 소극장 혜화당에서 공연되는 연극 「벼랑 끝에서」(작/연출 이훈국)는 제목 그대로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풀어낸다.

◇ 절벽 위, 남의 집, 그리고 자살 모임... 3가지 색깔의 절망

작품은 총 3막으로 구성된다. 1막 '벼랑 끝에서'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이영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수아가 절벽 위에서 마주치며 "누가 먼저 죽어야 하는가"를 논하는 아이러니를 그린다. 2막 '역지사지'는 사업 실패로 벼랑 끝에 몰린 열쇠공 유기한이 자살 대신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는 소동극이며, 3막 '죽은 시인의 사회'는 '사망보험금', '킬미업', '자살천사' 등 기괴한 닉네임을 가진 자살 희망자들의 모임을 다룬다.

이훈국 작가는 "벼랑 끝은 특별한 순간에만 오는 것이 아니다"라며 "죽음을 향해 걸어 들어가지만, 타인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을 비추고 다시 살아볼 이유 하나를 찾아내는 과정을 담았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 한 명도 빠짐없이 무대를 꽉 채우는 '1인 다역'의 묘미

이번 공연의 백미는 소극장 연극 특유의 밀도 높은 앙상블이다. 제작진과 출연진의 면면을 살펴보면 신구 조화가 눈에 띈다.

우선 작품의 전체적인 결을 다듬은 김재권 예술감독(영산대 교수)과 대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이훈국 작가가 중심을 잡는다. 여기에 무대의 정서적 깊이를 더해줄 곽두환 조명감독과 연출을 보좌하며 직접 무대에도 오르는 양혜원 조연출이 힘을 보탰다.

배우들은 1인 다역을 소화하며 비극과 희극을 오가는 연기력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영'과 '자영&진행자', '여자(킬미업)' 역은 양혜원과 박현선 배우가 번갈아 맡아 무대에 오른다. 절벽 위에서 갈등하는 '수아'와 '숙경&진행자', '여인(자살천사)' 역에는 김하림과 조수현 배우가 더블 캐스팅돼 서로 다른 매력의 절망과 희망을 연기한다.

남자 배우들의 변신도 흥미롭다. 김조운과 강인기 배우는 '선배&제자', 벼랑 끝에 몰린 열쇠공 '유기한', 그리고 자살 모임의 '사내(사망보험금)' 역을 오가며 극의 중심축을 담당한다. 특히 작가이자 연출인 이훈국은 배우 노진원과 함께 '주인&교수', '박판수', 자살 모임을 주도하는 '유시한(죽은 시인)' 역을 직접 소화하며 작품의 메시지를 가장 날 것 그대로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 왜 하필 연말에 '죽음'인가

통상적으로 연말연시 공연계는 화려한 쇼나 가벼운 코미디가 주를 이룬다. 그런 면에서 「벼랑 끝에서」의 행보는 다소 도발적이다. 김재권 예술감독은 "인간 삶의 엇갈림을 따스한 시선으로 되치기하는 작품"이라며 웃음 속에 숨겨진 페이소스를 강조했다.

죽으러 왔다가 엉겁결에 웃음을 터뜨리고, 그 웃음 끝에 "조금만 더 살아볼까"라고 중얼거리게 만드는 힘. 제작진은 그 '작은 숨구멍' 하나를 관객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전했다.

2025년의 마지막과 2026년의 시작을 관통하는 이 공연이 과연 벼랑 끝에 선 현대인들에게 어떤 위로의 밧줄을 던져줄지 지켜볼 일이다. 티켓은 평일 오후 7시 30분, 토요일 오후 4시/7시, 일요일 오후 3시/6시에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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