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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조각도시’ 도경수의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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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도경수가 디즈니+ ‘조각도시’로 새로운 도전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배우 도경수가 디즈니+ ‘조각도시’로 새로운 도전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첫 악역 도전은 배우 도경수에게 분명한 전환점이었다. 전형성을 벗어난 자신만의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해 도경수는 감정을 키우기보다 억누르고 설명하기보다 숨기는 방식으로 연기의 결을 넓혔다. 불안과 차분함, 잔혹함과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공존하는 인물을 구축하며 표현의 폭을 한층 확장해 보였다. 스스로도 “성공적인 도전이었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도경수가 호연한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조각도시’는 평범한 삶을 살던 태중(지창욱 분)이 어느 날 억울하게 흉악한 범죄에 휘말려 감옥에 가게 되고, 모든 것은 요한(도경수 분)에 의해 계획됐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를 향한 복수를 실행하는 액션 드라마다.

2017년 개봉한 영화 ‘조작된 도시’ 세계관을 기반으로 재탄생한 시리즈로, 지난달 5일 첫 공개 후 글로벌 OTT 플랫폼 내 콘텐츠 시청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FlixPatrol)에서 디즈니+ TOP 10 TV쇼 부문 월드와이드 1위를 달성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방영 첫 주부터 종영에 이르기까지 디즈니+ TV 쇼 부문 월드와이드 TOP 10(12월 4일 기준)을 유지하며 호평 속에 막을 내렸다.

극 중 도경수는 사건을 설계하는 조각가 요한 역을 맡아 신선하면서도 강렬한 변신으로 몰입을 이끌었다. 지금껏 보지 못한 차갑고 무자비한 얼굴과 전형성을 벗어난 연기로 캐릭터의 밀도를 쌓아 올리며 극의 긴장을 이끄는 핵심 인물로 활약했다. 최근 도경수를 만나 작품과 캐릭터를 만들어간 과정, 그리고 이번 도전을 통해 느낀 연기적 확장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첫 악역이었는데 호평 속에 종영했다. 소감은.

“이런 체감이 거의 처음인 것 같다. 주변에서도 너무 잘 봤다고 연락도 많이 오고 많은 분들이 관심을 많이 주시고 재밌게 봤다고 말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또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는 계기가 됐다. 사정이 있고 그런 역할을 많이 해왔는데 이런 악역을 한 걸 보고 그래도 잘 표현했다고 다들 말해줘서 너무 뿌듯하다. 전형적이지 않게 보이게 하는 게 난이도가 있는데 그런 걸 잘 표현해서 좋다고 이야기를 해 주셔서 뿌듯했다.”

-살인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였다. 핵심 감정을 어떻게 잡고 나갔나.

“‘고양이는 건드리지 마라’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그걸 보면서 일반적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다른 세상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할까 하는 지점에 가장 초점을 맞췄다. 다큐에 등장하는 살인자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힘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데, 그런 부분에 특히 주목했다. 요한은 다소 어린 모습도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본인이 집중할 때, 예를 들면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때 행복함을 느끼듯이, 살인을 저지르는 행위 자체가 요한에게는 진짜로 재미있는 일이라는 지점에 포커스를 두고 연기하려 했다.”

-전형적이지 않은 악역을 표현하기 위해 고민한 지점은.

“요한이 가진 차분함을 표현하는 데 특히 공을 들였다. 감정이 올라올 법한 순간에도 그것을 조금 더 억누르고 덜 드러내며 표현하는 방식을 많이 고민했다.”

-살인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임에도 불안 같은 감정이 느껴져서 계속 흔들리는 인물처럼 보였다. 이 불안이 어디서 비롯됐다고 생각했나.

“요한이 아무리 일반적이지 않은 사상을 가진 인물이라 해도, 무의식 안에는 반드시 불안이 있다고 봤다. 요한은 한 번도 틀어져 본 적이 없는 인물이라 태중이 등장했을 때 그런 상황조차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다고 느꼈을 거다. 하지만 너무 아무렇지 않게만 표현하면 인물이 입체적이지 않을 것 같았다. 요한에게는 본인이 한 번도 건드린 적 없고 늘 깔끔하게 사람을 죽여왔기 때문에 태중을 운 좋게 살아남은 개미처럼 생각했을 거다. 돌 틈 사이로 들어가 살아남은 존재처럼 느꼈던 거다. 그렇게 살아남아 나를 열받게 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존재로 태중을 바라보는 것에 이입하고자 했다. 다만 그런 불안함보다는 오히려 단순하게 다가갔다. 아이처럼 집중해서 좋아하고 자기 것을 할 때는 몰입해서 그것만 하는 아인데 그걸 누군가 짜증 나게 건드린다는 설정으로 접근했다.”
-호흡을 맞춘 지창욱이 ‘도경수의 눈이 돌아 있었다’고 표현을 했다. 눈이 도는 연기는 어떻게 하는건가.

“그런 표현을 써주는 것 자체가.(감사하다) 그래도 눈이 작은 편은 아니어서 조금만 크게 떠도 더 과하게 보이고 이렇게 보여서 그렇게 말해준 것 같다. 나는 그냥 그 상황에 가장 충실하려고 했다. 내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모니터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거든. 나도 공개가 되고 봤을 때 ‘내가 이런 표정을 짓는구나, 극적인 감정을 표현할 때는 이런 표정이 있구나’ 하면서 발견한 부분이 있다. 안해 본 감정을 표현하면서 스트레스가 풀린 것도 있다. 살인이 아니라 소리를 지르고 웃고 그랬던 것을 말한 거다.(웃음)”

-헤어스타일에도 공을 많이 들였다고.

“그래도 악역이기 때문에 조금은 날카롭게 보이기 위해 신경을 썼다. 머리 스타일을 완성하는 데만 약 4시간이 걸렸는데 보는 분들은 그렇게까지 공이 들어간 줄 모르는 경우가 많아 아쉬운 마음도 있다. 겉으로는 그냥 곱슬머리 정도로 보였을 거다. 실제로는 탈색을 한 뒤 전동드릴 앞에 파마 도구를 끼워 머리에 대고 돌리면서 삐죽삐죽한 질감을 만들었다. 탈색 머리일 때는 그 질감이 잘 보이는데 검은 머리로 염색을 하면서 그 디테일이 잘 드러나지 않더라. 그렇게 준비를 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곱슬머리로 보였다는 반응이 더 많았다. 다행히 잘 어울렸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위안이 됐지만 생각했던 만큼 화면에 다 나오지 않은 점에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요한의 옷도 많이 고민했다. 실제 살인자들을 떠올려 보면 겉으로는 잘 모르지 않나. 옆에 있어도 굉장히 평범하고. 요한도 책가방을 메고 다닐 것 같은 모습으로 가고 싶었다. 그런데 요한이라는 인물 자체가 재력이 있고 그가 놓인 공간을 생각했을 때 그렇게 입으면 너무 요한이답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 더 차갑게 보일 수 있는 옷들을 중심으로 선택을 했다. 무술 역시 같은 방향에서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조금 더 잔인하게 보일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사람을 더 잔인하게 죽일 수 있을지에 포커스를 맞췄다. 처음에는 단검을 사용할까 생각했다. 일반 단검이 아니라 구멍이 뚫려 있어서 찌르기만 해도 피가 콸콸 쏟아지는 그런 칼을 떠올렸는데 그건 또 너무 잔인할 것 같아서 동작이 크고 한 번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방식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런 부분들을 제작진과 많이 상의하면서 하나씩 정해 나갔다.”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도경수.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도경수.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굉장히 강렬한 악인이었는데 이에 대한 후유증은 없었나.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런 걸 힘들어하지 않는다. 진짜 실제처럼 당연히 몰입을 하긴 하지만 당연히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고 현실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컷’ 하면 그냥 바로 아무렇지 않다. 전작들도 다 그랬다. 끝나고 나면 개운하고 후련하지, 캐릭터 때문에 힘들어지거나 그런 어려움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 이번 도전이 내게는 성공적인 악역으로 남을 것 같다. 이 계기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도 먹게 됐다.”

-어느덧 연기 활동을 한 지 11년이 흘렀다. 배우로서 달라진 게 있다면.

“처음 연기 시작할 때와 지금 다른 점은 현장에 대한 노련함 정도다. 그것 빼고는 다 비슷한 것 같다. 바뀐 것이 하나도 없다. 연기를 하면서 그 작품에 대한 생각이나 태도, 캐릭터에 대한 생각 같은 것들은 달라진 게 없다. 그 캐릭터 자체를 표현해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쭉 하고 있어서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다.”

-연기적으로 성장했다고 느낀 점은 없나.

“그래도 감정 표현이 더 풍부해졌다. 초반에는 사실 겁도 많이 먹었고 이 신을 찍는 데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래서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지금은 그래도 현장에서 앵글이 어떻고 현재 상황이 어떤지 이런 것에 대한 이해력이 좋아졌고 판단도 빨라져서 감정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는 여유와 폭이 넓어진 것 같다. 그 부분을 표현할 수 있게 된 점이 가장 크게 달라진 지점인 것 같다.”

-이번 작품을 통해 느낀 성장, 혹은 확장은 무엇인가.

“작품을 하면서 그런 생각은 항상 하는 것 같다. 못 보던 모습도 보이기도 하고,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니까. 이번 작품에서는 웃는 게 진짜 어려웠다. 평소에 그렇게 하하하 웃을 일이 없다 보니, 내가 그렇게 웃을 수 있는지도 몰랐다. 마지막 장면에서였다. 유치원생이 친구 놀리듯 해본 건데 그런 소리도 나오더라. 그런 걸 할 수 있구나 싶었다. 밝은 역할을 할 때도 그런 걸 할 수 있고 그런 점들이 플러스가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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