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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조작정보 근절? ‘제2의 윤석열’ 악용 가능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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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상의 무분별한 권리침해에 대응하기 위해 당사자 신고만으로 게시물이 차단될 수 있게 한 ‘임시조치’ 제도는 시민 피해구제 효과보다는 기업·정치인·종교인이 비판 게시물에 대응하는 점에서 폐단이 두드러졌다. 상시 모니터링이 가능하고 법적 대응이 용이한 이들에게 활용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 SK텔레콤 유심정보 해킹사태를 최태원 회장 이혼 소송과 연관 지어 꼬집은 게시물과 카카오톡 개편 책임자로 알려진 카카오 임원을 풍자하는 게시물이 이들 기업인의 법률대리인에 의해 차단됐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 전광훈 목사도 이 제도를 활용해 자신을 비난하는 게시물을 차단한 전례가 있다.

제2의 임시조치 제도가 마련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허위조작정보에 5배 배액배상이 가능하게 하고 관련 심의 가능성까지 열어준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한차례 보완을 거쳐 지난 10일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 더불어민주당에 조국혁신당까지 찬성하고 나선 만큼 국회 본회의 통과는 시간 문제로 보인다. 일부 독소조항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권력자가 악용해 언론·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타인 해할 의도’ 빠졌지만…

지난 10월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허위조작정보로 인한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액 배상을 골자로 한다. 배액 배상의 기준이 모호하고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해 문제가 됐다. 특히 공적 보도를 위축시키는 독소조항에, 권력자의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게 했고,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의 이중 제재까지 가능하게 해 논란이 됐다.
지난 1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서 의결된 수정안은 허위조작정보 기준과 배액배상 기준 등에 적용된 ‘타인을 해할 의도’ 표현이 빠졌고 이를 추정하는 요건도 삭제됐다. 수정안은 규제 대상인 허위조작정보의 정의와 관련해 ‘타인의 인격권이나 재산권 또는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는 정보’,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의도 또는 부당한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생산 또는 선별된 정보‘ 등으로 규정했다.

기존 안의 독소조항으로 꼽힌 ‘최초 발화자 책임’ 조항도 빠졌다. 이른바 ‘전략적 봉쇄소송’ 방지에 관한 특칙의 경우 법원의 판단 기간을 ‘신청 후 60일 이내’로 규정하고 강제성을 부여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서, 정보의 유통 당시 그 내용을 진실이라고 믿었고 그와 같이 믿은 것에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를 위법성 조각사유에 명시한 점도 차이다. 이 법에 따른 제도를 운용하지 않는 인터넷 기업에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내용도 빠졌다.

일부 과도한 조항이 빠지거나 보완됐지만 허위조작정보에 관해 ‘5배 배액 배상’을 한다는 골자는 유지했다. 규제 대상은 ‘정보통신망을 통해 사실이나 의견을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자’로 규정해 정보통신망법으로 언론 등을 규제할 수 있게 했다. 시민사회에서 요구해온 ‘권력자의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배제 조항’은 반영되지 않았다. 법원에 의해 불법정보 또는 허위조작정보로 인정된 정보를 2회 이상 유통한 경우 방미통위가 과징금 처분을 할 수 있는 조항도 유지됐다.

당초 과방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최민희 의원 안이 추진되는 가운데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반대 입장을 내면서 제동이 걸렸다. 이해민 의원은 ‘권력자의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배제 조항’을 요구했으나 전략적 봉쇄소송 특칙을 강화하는 방향의 절충안에 합의하면서 법안이 처리됐다.
여전히 권력자 악용 가능성 커

이번 개정안을 두고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독소조항을 뺐지만, 공인에 대한 부분을 제외하지 못했다”며 “악용 가능성이 해소되지 않은 부분은 아쉽다. 윤석열 정권과 같은 정권이 들어서면 악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도 “윤석열 정부 때 이 법안이 있다면 어땠을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증명되기 어려운 손해에 5000만 원까지 부과가 가능한 조항도 여전히 있고, 고위공직자도 5배 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며 “매우 과도한 일부 내용만 사라지고 (논란이 됐던) 2021년 법안이 대부분 유지됐다. 노종면 의원이 발의한 언론중재법 개정안도 정정보도 관련한 조치가 있어 세트로 묶어서 보면 문제적인 내용이 많다”고 했다.

민주당은 허위조작정보 심의가 가능하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인터넷 보도에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방미심위)가 통신심의에 나설 수도 있다. 현재도 불법정보가 아닌 사회질서 혼란 정보 등에 무리한 심의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정보통신망법상 허위조작정보를 규정하면 허위조작정보 심의 규정을 마련할 명분이 강해진다.

심영섭 교수는 “실질적으론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방미심위가 심의할 수 있다”며 “류희림 같은 위원장이 들어오면 정보통신망법에 근거해 가짜뉴스대응센터도 만들고 심의규정도 만드는 등 언론 통제에 나설 수 있다”고 했다. 심영섭 교수는 “심의를 적용하더라도 표현의 자유, 언론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조율이 필요했는데 현재 법안은 악용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언론계와 시민사회도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기자협회는 지난 11일 성명을 내고 “허위조작정보를 광범위하게 확대해 규제하는 등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여전히 크다”며 “특히 언론단체의 핵심 요구사항이었던 ‘권력자의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배제 조항’이 제외돼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이 위축될 우려 또한 크다”고 했다. 디지털정의네트워크 등 시민단체들도 지난 10일 입장을 통해 “근본적인 문제는 허위조작정보를 광범위하게 불법화해 유통을 금지하고, 행정기관 심의를 확대하며, 언론에 대한 충분한 보호 장치 없이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국가 중심의 규제와 강력한 처벌을 도입하려는 데 있다”며 “일부 조항을 삭제했다고 해서 위헌성이 제거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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