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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광고, ‘명패 언론’ 지원 대신 ‘지역 저널리즘 인증’ 수단 되려면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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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가 다가오는 가운데, 심층기사에 충실한 지역언론에 공신력을 부여하기 위해 정부광고 지표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자체 취재 없이 언론사를 지역 내 영향력을 위한 ‘명패’로 삼는 언론이 정부광고를 받아 운영되고, 건강한 저널리즘을 실천하는 소규모 지역 언론사들은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현 상황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제안은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2026년 지방선거와 지역언론의 역할’(전국언론노동조합·전국언론노조 전국신문통신노조협의회, 민형배 의원실 주최) 토론회에서 나왔다. 이날 발제에 나선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실장은 지역언론과 지자체의 적대적 공생관계 가운데에는 ‘정부광고’가 있다고 짚었다. 한 해 정부광고는 1조2000억원 규모다.

지역언론계는 지방선거 이후 지자체장과 지방의회 다수당이 달라지면 정부광고 감액이나 중단이 ‘언론 길들이기’ 수단이 된다고 주장한다. 지자체장에 대한 비판적 기사가 나가면 정부광고가 끊기는 경우가 잦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 7월 대전·충청권 지역언론 디트뉴스24는 지역 단체장들이 수해복구 시기 해외 출장을 갔다는 비판보도를 썼다가 정부광고가 끊겼다.
반면 지자체 공무원들은 지역언론 기자들의 횡포가 극에 달했다고 토로한다. 기자가 공무원 상대로 비판 기사를 쓰겠다며 광고비를 요구하거나, 폭언·폭행을 하는 식이다. 김동원 실장은 “지역언론 기자들의 횡포 배경에는 지역언론의 난립이 있다”고 지적하며 “가령 순천시의 공식 출입 등록 언론사는 443개, 기자는 498명이다. 보도자료만 쓰고 취재는 하지 않는 기자들이 너무 많다. 그럼에도 지자체가 ‘시정 홍보를 잘한 언론사’, ‘우호적 기사를 많이 쓰는 언론사’라는 기준 등으로 정부광고를 집행하기도 한다. 황당한 건 정부광고가 들어올 때만 지면을 발행하는 언론사도 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이 분석한 지난해 부울경(부산·울산·경남) 광역자치단체·기초자치단체·산하 공공기관의 정부광고 집행내역을 보면, 정부광고가 집행된 108개 매체 중 연간 5000만 원 이하의 정부광고를 받은 매체는 93개다. 이들이 정기간행물 정부광고 총액의 11%(약 6억8000만 원)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셈이다. 부울경 지역 108개 매체 중 10여 곳만이 매출액, 영업이익을 공시할 뿐 나머지 언론사는 재무상태와 손익계산서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
김 실장은 “발행인이 ‘나는 언론사 사장’이라고 하는 이름을 위해 만든 ‘명패 언론사’인 경우가 많다. 정부광고는 그런 지역언론 대표의 지역 내 영향력을 과시하는 하나의 인증 수단으로 쓰여지고 있다”며 “난립하는 언론사들이 지역언론 역할에 충실하려는 소규모 좋은 언론사들을 구별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역언론에 적합한 정부광고 지표 개발 필요

김 실장은 지역언론에 적합한 정부광고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방안 중 하나는 열독률을 지역 자체기사 비율로 대체하는 방안이다. 2021년 뉴스제휴평가위원회(제평위)는 지역언론 특별심사 당시 자체기사 기준을 ‘언론사가 직접 기획하고 취재해 생산한 기사’, ‘정부 및 기관·단체·기업 등의 보도자료, 타매체 기사, SNS나 인터넷 등에 공개된 미디어 콘텐츠에 대해 직접 분석 및 추가 취재·평가·비교·의견 등을 담아 재생산한 기사’로 규정했다. 해당 요건에도 불구하고 제외되는 자체기사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김 실장은 “당시 제평위가 CP사 기준으로 자체 기사 내에서 지역 자체기사 비율을 70%로 제시했다”며 “만약 정부광고를 집행한다면 소규모 언론사들에 적합해야 하므로 지역 자체기사의 비중을 50%로 낮추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했다.

이 밖에 김 실장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우선지원 대상사 여부, 언론중재위원회 직권조정·시정권고 건수, 광고성 기사 심의 결과, 정상발행 여부, 신문법·방송법 등 관련 법령 위반 건수 등의 정부광고 지표안을 제시했다. 김 실장은 “정부광고 지표가 권고사항이고 강제력이 없다고 말하는데, 이런 가이드라인은 내년 앞두고 있는 지방선거 시기에 난립할 유사 언론사를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라고 말했다.
토론에 나선 박정연 경남도민일보 기자 역시 “지역 소멸 위기를 말하지만 지역에서 권력 집단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언론사들은 지금도 넘쳐나고 더 늘어날 것”이라며 “정부광고를 통한 ‘지역 저널리즘’ 인증은 시급하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기자는 “지표가 개발되어야 이를 기준으로 지방정부와 소규모 시·군 단위에서도 견주어 여러가지 지표가 만들어질 것”이라며 “일하는 정부가 들어선만큼 기준을 새로 만드는 작업에 서둘러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희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는 최근 충북 음성군 화학업체에서 발생한 두 번의 유해물질 유출 사고 관련 보도를 예로 들었다. 이수희 대표는 “첫 번째 사고가 발생했을 때 한 건의 보도도 나오지 않았고, 두 번째 사고가 났을 때 그제서야 보도가 시작됐다”며 “서울 강남에서 벌어졌다면 모든 언론이 현장에 갔을테지만, 음성군이라는 작은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선 진상을 제대로 보도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또 “음성 지역에도 4~5개의 작은 매체들이 있는데, 일부 매체는 음성군에 취재를 위해 정보 요청을 했는데 묵살 당했다”며 “음성군수 입장에선 작은 언론을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더 활발해져야 할 좋은 선거보도 사례도 소개했다. 가령 충북 옥천군의 풀뿌리 지역주간지 옥천신문은 선거 때마다 ‘좋은 정책이 좋은 옥천’이라는 기획보도를 통해 주민들이 정책을 제안하고 그 정책을 후보들에게 질의한다. MBC충북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지역 청년들이 자치단체장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의 콘텐츠를 선보였다. 당시 충북민언련은 민주노총 충북본부, 충북노동자교육공간 활동가들과 지방선거 특별페이지 ‘다른 시선’을 운영하고 지면도 발행했다. 해당 지면에선 지역민의 목소리로 지역 의제를 말하고, 사회적 약자를 내세우는 기획성 보도를 이어갔다.

이 대표는 “지속적 모니터링을 해보니 지역언론에 큰 변화를 기대하는 게 어렵다”며 “지방 정부의 홍보 예산이 지역 풀뿌리 언론을 더 지원하거나 마을주민들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매체를 지원하는 방식 등 지역 주민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곳에 지원되면 지역 환경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우열 전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후원 모델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지역 기반의 독립 비영리 언론에 주목했다. 대구·경북 지역의 ‘뉴스민’과 인천·경기 지역의 ‘뉴스하다’ 등이다. 신 교수는 “뉴스민의 경우 2023년 후원회원 캠페인을 진행했는데 동참했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뉴스민이 어렵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고 말했다. 뉴스민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면 우리 사회가 실패하고 있다는 뜻”이라며 “사회에선 여전히 저널리즘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아이러니하게도 ‘명패 언론사’들은 취재, 자체 기사 역량이 미약함에도 정부광고를 통해 명패를 유지하고 있다. 반대로 사회가 필요성을 인정한 언론사들은 소수 언론인들의 헌신, 사람들의 선의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며 “이 아이러니야말로 지역언론 개혁을 어느 지점에서 출발해야하는 지 보여주는 지표”라고 말했다. 그는 “저널리즘 고유의 역할을 수행하는 언론사가 지속 가능하려면 언론의 자율적 실천과 시민사회의 노력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라며 “언론사는 많지만 사회가 듣고싶은 저널리즘의 목소리는 나지 않는 아이러니를 줄일 기반을 마련해주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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