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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 中과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데일리안마크롱, 對EU 무역흑자 축소하지 않으면 ‘관세폭탄’ 경고
유럽산 부품 사용, 희토류 폐기물·배터리스크랩 수출제한
對中 의존도 줄이고 주요 산업 경쟁력 강화하는 것이 목표
EU 규제당국이 지난주 아일랜드 더블린 내 중국 거대 e커머스 업체인 핀둬둬(拼多多)의 자회사 테무(Temu) 유럽 본사를 압수수색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 10일 보도했다. EU는 내부 고발자나 자체 조사를 통해 증거를 확보했을 때 압수수색을 실시한다. 중국산 저가 수입품 공세로 유럽 기업 경쟁력이 약화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EU가 중국 업체 단속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EU는 테무가 중국 정부의 불공정한 보조금을 받았는지 철저히 조사할 예정이다. EU 집행위원회는 회사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역외보조금규정(FSR)에 따라 EU 내 e커머스 부문에서 활동하는 한 회사의 사업장을 사전통보 없이 점검했다”고 설명했다. FSR은 2023년 비(非)EU 정부에서 과도한 보조금을 받아 유럽 기업과의 경쟁을 왜곡하는 역외 기업을 규제하기 위해 도입했다. 해당 보조금에는 세제혜택뿐 아니라 무이자 대출, 저금리 금융 등도 포함된다. 규정 위반 시 EU는 기업 연간 총매출의 최대 10%에 해당하는 벌금을 매길 수 있다.
앞서 7일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EU에서 얻고 있는 대규모 무역흑자를 줄이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중국에 고율관세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EU의 막대한 대중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중국이 선제적 조치를 취하라고 압박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달 3~5일 중국을 국빈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지 불과 이틀 만에 나온 발언이다.
그는 “우리는 가운데 끼어 있다. 유럽 산업에 생사가 걸린 문제”라고 덧붙였다. 프랑스 경제지 레제코에 따르면 지난해 EU의 대중 무역적자는 3000억 유로(약 513조 5000억원)에 달한다. 미국이 ‘관세폭탄’을 통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는 바람에 중국이 미국에 수출하려던 물량이 대거 유럽으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EU 시장을 ‘독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중국 측에 그들의 무역흑자는 지속 불가능하다고 설명하려고 노력했다”며 “만약 그들(중국)이 반응하지 않으면 유럽인들은 앞으로 몇 달 안에 미국의 사례를 따라 중국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업촉진법’(IAA)으로 불리는 이 법안은 저렴한 중국산 부품 공세에 유탄을 맞은 EU가 재생에너지 및 중공업 등의 분야에서 유럽 산업 경쟁력의 약화를 최대한 막아보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EU는 지난해 태양광 패널과 바이오 연료 등 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최대 수출국이었다.
특히 30억 유로를 투자해 오는 2029년까지 단일 국가에 대한 원자재 의존도를 최대 50%로 낮추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서는 유럽 투자은행에서 20억 유로를 지원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비싼 유럽산 부품을 구매해야 하는 만큼 EU 기업의 부담이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희토류 자석 수출을 통제하는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EU는 내년부터 재활용이 가능한 희토류 폐기물과 배터리 스크랩(불량품) 수출을 제한하기로 했다. 희토류 폐기물을 재활용하면 EU 희토류 자석 수요의 20%를 확보할 수 있다고 EU는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EU는 이와 함께 중국계 패스트패션 브랜드이자 오픈마켓 플랫폼인 ‘쉬인’(Shein·希音)을 향해서는 소비자 보호 방침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놨다. 프랑스가 쉬인 영업 정지를 위한 법적 절차에 나선 이후 EU도 압박에 동참하는 모양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26일 “(쉬인이) 미성년자가 연령에 맞지 않는 콘텐츠에 노출되지 않도록 어떻게 보장하는지, 연령 확인 조치를 어떻게 시행하는지, 불법 제품 유통을 어떻게 차단하는지 구체적인 정보와 내부 문서들을 제출하도록 공식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요구는 온라인 플랫폼이 불법 제품·성범죄물 등을 유통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유럽연합 디지털서비스법’(DSA)에 따른 조치다. 이 법은 집행위가 플랫폼 기업에 소비자 보호방침과 광고알고리즘 등을 제출하도록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집행위는 “프랑스에서의 불법 제품 판매 및 여러 보고서 이후 집행위는 쉬인 플랫폼이 EU 전역의 소비자에게 체계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며 이번 조치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프랑스는 쉬인의 온라인 영업을 막기 위해 전방위 압박에 나선 상태다. 이 때문에 쉬인과 베아슈베 백화점 운영사인 소시에테 데 그랑 마가쟁(SGM)은 올 연말까지 그르노블·디종 등 전국 5개 백화점에 쉬인 매장을 추가 출점하려는 계획을 무기한 연기했다. 그르노블 시장 에리크 피올은 소시에테 데 그랑 마가쟁 쪽에 쉬인 제품의 합법성이 검증될 때까지 매장 오픈을 중단해달라고 요구한 상태다.
외국인 투자자가 유럽 현지 노동자를 더 많이 의무적으로 고용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FT에 따르면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다음달 이런 내용의 외국인직접투자(FDI) 규정 강화 방안을 제안할 예정이다. EU는 우선 외국 투자자에게 유럽 현지 노동자를 더 많이 고용할 것을 요구하고, 현지 생산 요건도 강화할 계획이다.
외국 투자가 외국 부품을 유럽에서 조립하거나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럽 산업 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더욱이 전기차 배터리 등 특정 산업에서는 기술 노하우 이전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스테판 세주르네 EU 번영·산업전략 담당 집행위원은 “유럽에 대한 투자는 시장 진입 통로로만 이용되는 것보다 유럽 성장에 실질적으로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해당 규제 대상이 될 중국 업체들이 유럽의 기술 요구 이전을 수용할지는 불투명하다. EU의 방안에 ‘중국’이라는 표현이 직접 담기지는 않겠지만 이번 조치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지난해 중국의 EU 직접투자는 94억 유로에 달한다.
EU는 기존에 150유로 미만의 저가 소포에 적용해온 관세 면제 혜택을 폐지하고, 소포 1건당 2유로의 취급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수수료 납부 책임은 개별 판매자가 아니라 e커머스 플랫폼이 부담한다. 이는 사실상 중국 플랫폼을 겨냥한 규제다. 중국 e커머스 플랫폼을 통한 값싼 상품 급증이 유럽 내 유통 질서를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EU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 소비자가 구매한 해외 직구 소포 약 46억 개 중 80~90%가 중국에서 발송됐다. FT는 “EU가 테무와 쉬인, 알리바바(阿里巴巴) 등 중국 e커머스 업체의 유럽시장 잠식을 견제하기 위해 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며 “이번 조치는 유럽이 ‘불공정 무역 행위’로 간주하는 중국식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새로운 제재 신호”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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