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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S RSC③] 작은 생명이 가져온 ‘가장 큰 가치’
시사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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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은 가장 작은 곳에서 가장 큰 질문을 던지는 학문이다. 우리가 볼 수 없던 세계를 드러내고, 자연의 질서와 생명의 구조를 읽어내며, 때로는 예술적 감각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발견은 결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밀한 장비와 이를 운용하는 기술진, 오랜 시간에 걸친 연구 환경, 그리고 실험동물을 둘러싼 윤리적 고민까지 기초과학의 성과 뒤에는 늘 보이지 않는 기반과 사람이 있다. 그 기반을 들여다보는 일은 과학의 미래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편집자주]
“수금의 생명이여, 품성은 각기 다르나 목숨은 같으니라, 아까운 생명이지만 의로운 죽음을 피하지 않음이니,

인류복지와 동류금수의 보건을 위해, 하늘을 원망하지 말고, 사람을 원망하지 말지어다.

가련한 그 희생을 위하여 묵념하고 명복을 축원하니 밝은 세상에 다시 나아가 영생하길 기원하노라.”

- 실험동물 위령문, 식품의약품안전처

시사위크|대전=박설민·김두완 기자

현대 생명공학과 의료과학연구에 있어 ‘동물실험’은 뿌리와 같은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 아리스토텔레스와 에라시스트라토스부터 로마시대에서도 동물실험은 이뤄졌다. 수 세기에 걸친 실험동물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인류의 병리학, 생물학은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과학 발전을 위한 동물실험은 지금도 이뤄지고 있다. 물론 과거와 비교해 실험 윤리와 연구자들의 도덕적 관념도 발전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리서치솔루션센터(RSC)’의 실험동물자원시설(LARF)은 이를 증명하는 곳 중 하나다. ‘시사위크’ 취재팀은 이곳을 방문, 생명과학연구의 숨은 주역인 실험동물들을 만나봤다.
◇ 1만7,000마리의 실험용 쥐가 사는 ‘아파트’

11월 27일 취재팀은 박수동 IBS RSC 팀장의 안내를 따라 실험동물자원시설로 향했다. 연구시설은 센터 내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실험동물의 방역과 안전, 외부 위험 요소들을 원천 차단하기 위함이다.

실험동물자원시설 내부로 들어가는 것은 매우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방문 목적, 인원을 전부 기록해야 했다. 또한 사진 촬영을 위한 카메라는 외부에서 반입된 물건이기에 시설 내부로는 들어갈 수 없었다. 때문에 스마트폰 카메라로만 촬영을 해야 했다. 그마저도 비닐 방역팩에 담아서만 가능했다.

방문 인원들 역시 철저한 소독과 방역 과정을 거쳐야 했다.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할 것 같은 흰색 방진복을 입고 마스크와 라텍스 장갑, 오염방지용 덧신을 착용했다. 그다음, 소독용 알코올로 장갑 낀 손도 소독을 진행했다. 최종적으로 에워샤워장에서 몸에 있는 모든 먼지를 털어낸 후에야 연구시설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긴 복도를 따라 이동하자 마침내 동물사육시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설 내부는 마치 ‘생쥐 아파트’처럼 보이는 케이스들이 여러 층 쌓여 있었다. 동물사육장답게 묘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약간 보리차 같은 냄새였다. 다만 불쾌하거나 악취가 심하다는 느낌이 들진 않았다. 아마도 IBS 연구원들이 매일 위생 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으로 생각됐다.

이곳에서는 IBS 생명과학분야 연구단과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단의 연구 분야에 필수적인 200여종의 다양한 유전자변형 실험쥐가 사육되고 있었다. 시설에는 개별환기 케이지 당 최대 6,000케이지까지 수용 가능했다. 이는 약 3만마리에 이르는 규모다. 현재는 4,600케이지 1만7,600여마리의 중요 실험쥐가 사육되고 있다고 한다. 이 중 실험용 쥐의 93%이고 페렛, 햄스터, 제브라피쉬도 포함돼 있다.
수의사인 김환 IBS RSC 책임기술원이 실험용 쥐의 상태 확인을 위해 한 케이지를 꺼내 들었다. 하얀색 쥐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모습이었다. 다만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것은 검은색 쥐라고 한다. 나무톱밥으로 된 펠렛을 물어뜯으며 놀고 있는 쥐를 보자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이들의 수명은 1~2년, 실험에 투입되는 것은 약 7주령부터다.

김 책임기술원은 “실험 쥐는 평균 수명이 2년 정도인데 4주 정도 되면 젖을 떼고 8주부터 실험에 가장 많이 투입된다”며 “처음 태어난 새끼들은 이때 유전자형을 검사를 해 실험에 사용할지 안할지를 판단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IBS 실험동물자원시설에서는 기억 및 학습과 관련된 뇌과학 연구를 위한 행동실험, 유전체 교정 연구, 바이러스 감염 기전 연구 등 생명과학 분야의 기초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매년 1월말에 전년도 동물실험 수행 현황을 검역본부에 보고한다”고 말했다.
◇ 철저한 방역과 시설 관리… ‘만약’을 위한 ‘정자은행’도 준비

연구시설 취재를 마친 뒤, 방역복을 제외한 모든 방역물품은 폐기됐다. 외부의 병원균 차단뿐만 아니라 혹시 모를 외부 오염물질 유출까지 방지한 것이다.

이 같은 철저한 방역이 이뤄지는 이유는 IBS의 실험자원동물시설이 ‘Specific Pathogen Free(SPF)’ 시설이기 때문이다. 이는 특정 병원체가 없는, 완전 방역 상태를 의미한다. 바이러스, 박테리아, 기생충 등이 존재해선 안되며 실험 동물 반입 및 반출 모두 통제받는다.

또한 이곳에서 사육되는 실험용 동물은 ‘유전자 변형’ 종이다. 즉, 외부로 유출될 시 생태계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때문에 IBS RSC에서는 실험용 동물이 외부로 도망치는 것도 철저히 감시하고 있다. 실험자원동물시설 내 연구실마다 입구에는 탈출방지턱이, 도주 경로가 될 수 있는 곳에는 트랩이 설치돼 있다.

김 책임기술원은 “SPF 동물시설은 병원체 감염관리가 매우 중요한데 저희는 정기적인 미생물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다”며 “또한 외부 동물 반입 시 지정 기준에 따라 검역, 수정란 이식을 통한 체외수정을 통해 실험동물의 품질을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철저한 관리에도 불구하고 외부 병원균 유입의 위험은 늘 상주해 있다. 실제로 지난해 초 실험용 동물을 수입했을 때 곰팡이에 감염된 개체를 발견, 수입을 취소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즉, 연구원들이 아무리 관리를 열심히 해도 외부에서 유입되는 변수를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만약 외부에서 들어온 병원균이 실험시설에 전파되면 어떻게 될까. 전찬미 IBS RSC 선임기술원은 이 경우 ‘전량 폐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한 번 오염된 연구실에서 완전히 병원체를 제거하는 것도 쉽지 않을 일이다.

전 선임기술원은 “IBS RSC는 아니지만 다른 시설에서 노로바이러스가 실험용 쥐들에서 검출된 적이 있었다”며 “이때 거의 2년 내내 노로바이러스가 시설에서 검출돼 실험용 동물들을 사용할 수 없게 된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자연재해도 실험동물자원시설을 위협하는 중요한 문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2005년 태풍 ‘카트리나’가 발생해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LSU)와 툴레인 대학교(Tulane University) 등 여러 연구 기관의 실험동물시설이 파괴되거나 심각한 피해를 입어 수천만마리의 실험동물이 죽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연구데이터가 공중에서 증발해버렸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IBS에서는 ‘정자은행’을 올해 새롭게 준비 중이다. 올해 12월부터 운영을 개시한 ‘마우스 정자은행 시스템’은 비상시를 대비해 주요 실험 쥐의 유전자 자원을 동결정자 상태로 보존, 필요시 복원한다. 액체질소를 이용, 영하 196도의 극저온상태에서 실험 쥐의 정자를 얼려 보관하는 방식이다.

김 책임기술원은 “액체질소를 활용하면 반영구적으로 실험용 쥐의 정자를 보관할 수 있다”며 “이제 200여종을 하나씩 보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 IBS와 국내 과학자들의 연구를 지원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인공지능(AI)기술이 발달하고 있는데 이를 활용해 동물의 외부 감염, 오염물질 유입 및 유출 시설 사고 등을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할 것 같다”며 “향후 실험동물자원시설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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