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 읽음
겨울나기 - 도종환
하늘과 땅에서 얻은 것들
다 되돌려주려고
고갯마루 건넛산을 바라보는
스님의 뒷모습 처럼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있다

어제는 꽃 한 송이 남지 않고
수레바퀴 지나간 자국 아래
부스러진 잎사귀와
끌려간 줄기의 흔적만 희미한데
그래도 뿌리 하나로
겨울을 나는 꽃들이 있다

비바람 뿌리고 눈서리 너무 길어
떨어진 이 세상 거리에
황망히 흩어진 뒤
뿌리까지 얼고만 밤
씨앗 하나 살아서 겨울을 나는 것들도 있다

이 겨울을 우리는 몇몇만
먼 손을 마주 잡고 떨고 있는 듯 해도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견디고 있다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이기고 있다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