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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금융, 글로벌 경쟁력 취약…SK증권의 새로운 IB 전략
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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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금융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전혀 다른 형태의 투자은행(IB) 모델이 필요합니다.”

한정호 SK증권 글로벌사업본부 대표는 최근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며 한국 금융의 취약성을 지적했다. 그는 “GDP 기준으로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지만 금융 경쟁력은 50위권 밖”이라며 “조선·반도체·석유화학·자동차 등 제조업은 세계 최상위권인데 금융만 뒤처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한국 은행 자산은 600조~700조원 규모지만 PBR은 0.3배에 불과한 반면, 자산이 150조~200조 원인 동남아 은행은 PBR이 3~4배에 달한다”며 한국 금융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새로운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 대표가 제시한 IB 모델은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인문학적 사고와 금융의 접목 △문화적 맥락을  반영한 해외 IB 파트너십 △시장 수요보다 앞서는 선제적 기회 발굴이다.

한 대표는 25년 넘게 아시아, 중동, 유럽 등지에서 JPMorgan, RBS, CGS-CIMB 등 글로벌 금융사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지난해 새롭게 출범한 SK증권 글로벌사업본부를 이끌며 해외 파트너십을 확대하고 새로운 IB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첫 번째 축은 “인문학적 상상력을 금융에 접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HSBC 시절이던 2002년 한·일 월드컵 사례를 들며 설명했다.

“월드컵 시장이 가장 큰 곳은 유럽”이라며, 당시 대부분의 국내 애널리스트들이 호텔·항공·주류주에 주목했지만 그는 인문학적 사고를 통해 다른 가능성에 눈을 돌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 세계 시청자의 80%가 유럽에 몰려 있는 만큼 경기는 유럽 시청자들이 보기 좋은 시간대에 맞춰 편성될 수밖에 없었다”며 “이 때문에 한국·일본 시간으로는 밤 9시에 경기가 열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 시간대라면 직장인들이 집보다는 식당에 모여 경기를 시청하게 되고, 그 결과 LCD TV 수요가 폭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며 실제로 수만 개 식당에 3~4대씩 TV가 새로 설치되면서 LG전자 매출이 급증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밤늦게 식당에서 경기를 보면 차량 운행이 줄고 교통사고율이 낮아져 자동차 보험사 실적도 개선됐다”며 “겉보기에 무관해 보이는 업종도 인문학적 사고로 연결하면 수혜 업종을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으로 그는 문화적 맥락을 반영한 해외 IB 파트너십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국내 증권사들이 글로벌 사업을 말할 때 리서치 보고서 작성이나 단순 중개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라며 “진정한 성장 가능성을 확보하려면 현지 증권사와 IB 파트너십을 맺고 공동으로 사업을 설계·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를 위해서는 “각국의 문화 코드, 규제 체계, 업무 관행, 의사결정 구조까지 이해해야 한다”며 “23년간 해외 증권사 대표로 일하면서 이 문화적 맥락을 잘 알고 있는 것이 제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역별 차이에 대해 “사우디·UAE·카타르·쿠웨이트는 모두 중동이지만 경제 구조와 투자 성향이 다르고, 유럽도 북유럽·중부·남부가 각기 다르다. 동남아 역시 말레이시아·필리핀·인도네시아·태국·베트남·싱가포르가 제각기 다른 흐름을 보인다”며 “사우디는 중동 증시 유동성의 65% 이상을 차지하지만 재정 부담이 커졌고, 카타르는 LNG 의존도가 높고, 쿠웨이트는 상대적으로 아직까지는 아시아 투자에 소극적”이라고 구체적인 설명도 덧붙였다.

세 번째 축은 시장 수요보다 앞서는 선제적 기회 발굴이다. 그는 “대기업의 요청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필요를 느끼기 전에 기회를 찾아 제시하는 것이 진정한 글로벌 IB”라며 최근 SK증권이 후원한 인도네시아 관광부의 ‘원더풀 인도네시아 비즈니스 매칭’ 행사를 사례로 들었다.

“이번 행사는 단순한 리조트·호텔 투자가 아니라 실버타운과 의료 관광 같은 신성장 산업에 초점을 맞춘 이벤트였다”며 “최근 따뜻한 동남아 지역에서 장기 체류를 원하는 한국 고령층의 수요가 늘고 있어 인도네시아 휴양지에 장기 체류형 실버타운을 조성하면 고령층 수요를 겨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최근 동남아에서의 의료 관광에 대한 높은 관심과 한국의 피부 관리 및 성형 분야 의료 전문성을 접목해 “인도네시아 병원들에 한국의 선진 의료 기술과 병원 운영 노하우를 적용한다면 여성 클리닉, 특수 질환 치료, 줄기세포, 성형·미용 분야 등에서 서비스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고, 동시에 한국 병원들도 인도네시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구 2억8천만 명의 인도네시아는 앞으로 의료 서비스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블루오션이며, SK증권이 선제적으로 투자처를 발굴해 중개·자문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올해 특히 월가를 중심으로 강세장이 이어졌지만, 내년에도 같은 수준의 상승세가 지속되긴 어려울 것”이라며, “다만 AI, 반도체, 방산·조선·원자력 등 일부 코스피 업종은 장기적인 모멘텀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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