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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스증후군*
입스증후군*
전기가 나갔다 여름은 정전이다
냉장고가 멈췄다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혼자만의 부엌
남자의 냉장고는 썩기 시작했다 남자는 엉망진창이 된 길을 보았다
가자미의 상한 바다와 오렌지의 조각난 눈빛을 보며
날아온 야구공에 맞은 기분이었다 남자는 일곱 살 운동장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그를 향해 야구공을 던졌다
공은 손을 넘고 가슴을 넘어 머리통을 맞았다
고꾸라진 아이가 울었다 몸은 충돌의 순간을 기억했다
잊기 위해서 울음이 터질 때마다 남자는 춤을 췄다
이제는 남자의 춤도 그를 위로하지 못한다 냉장고처럼 몸도 전기도 나갔다
돈은 순서대로 돌려받는데 집주인은 순서를 지키지 않고 사라졌다
허공에 흩어진 전세금은 보랏빛 수국의 헛꽃들
상하기 직전의 음식들을 모아 잡탕찌개를 끓인다
남자는 잡음을 통과시키는 귀를 막았다
유리창 맞은편에는 하늘이 산다
화를 내지 않는 친절한 이웃 하늘은 전기가 나가지 않았다
하늘은 아프지 않고 딸린 식구들도 건강하다
달콤한 뭉게구름이 주먹만 한 별을 만든다 별빛이 문지방을 지운다
해와 달 모양의 구름은 여름에 맞춰 춤을 춘다
하늘은 남자를 망가뜨리지 않았다 하늘은 주인도 세입자도 없고
하늘에 착한 눈동자를 가진 새가 날아간다
하늘은 사기 치지 않고 전기가 나가지 않는다
남자는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갑작스럽게 경련이 일어나는 중상.
* 강은미. "2025년 최치원 문학상 수상작"
:
9월의 마지막날이라고
무에 별다를 거 있겠냐마는
입스증후군이든
소진증후군(번아웃)이든
지칠대로 지쳐 스러져도
10월로 간다
터지는 사건사고를 넘어
붉게 피어날 가을 속으로
그때까지
잘 지내자, 우리
( 250930 들풀처럼 )
#오늘의_시
- 사진 : 0928 동탄의 밤

https://youtu.be/e-ijD7kdTs4?si=QnUXk7YePl30qg1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