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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의 역습’…英·美·佛 나랏빚에 세계 금융시장 ‘대혼란’
조선비즈2일(현지시각) 마켓워치는 미국, 영국, 프랑스가 겪는 개별적인 재정 문제가 합쳐져 전 세계적인 채권 시장 붕괴를 촉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장 최근 사례는 영국이다. 2일 런던 금융시장에서 영국 30년 만기 국채(길트) 금리는 1998년 5월 이후 27년 만에 최고치인 5.72%까지 치솟았다. 나라 빚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미국 달러 대비 한때 1.5% 넘게 급락했다. G10 통화 가운데 최악의 실적이다.
전문가들은 국채금리 급등이 영국 경제 체력에 대한 깊은 우려를 반영한다고 분석한다. 고질적인 저성장과 주요 7개국(G7) 가운데 가장 높은 물가상승률, 막대한 재정 적자라는 ‘삼중고’가 영국 국채 투자자들 불신을 키웠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당 정부는 올가을 예산안에서 200억~250억 파운드(약 37조~45조원)에 달하는 재정 공백을 메워야 한다. 닉 케네디 로이즈 은행 외환 전략가는 로이터에 “투자자들이 영국 자산에 더 높은 ‘위험 프리미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영국 정치 불안도 시장을 흔들었다. 최근 키어 스타머 총리는 총리실 핵심 참모 인사를 단행했다. 시장은 이를 재정 정책 주도권을 둘러싼 내부 갈등 신호로 해석했다. 영국 재무부는 전통적으로 막강한 권한으로 총리실과 균형을 이룬다. 총리실이 재무장관 힘을 빼면서 이 구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투자자들은 재정 건전성을 강조해 온 리브스 재무장관 힘이 약화되고, 정치적 파장을 더 고려하는 총리실 입김이 세지면 ‘재정 건전성’과 ‘정치적 인기’ 사이에서 정부가 후자를 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막대한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인기 없는 긴축 정책을 펼치는 대신, 당장 지지율에 도움이 되는 ‘선심성 정책’을 펼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데이비드 잔 프랭클린템플턴 유럽 채권 전문가는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총리실 움직임은 ‘누가 재정을 책임지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영국에만 그치지 않는다. 미국 30년물 국채금리 역시 2일 심리적 저항선인 5%에 육박했다. 최근 미국 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부과한 무역 관세를 불법으로 판결하며 수천억 달러 규모 세수 확보에 차질이 생겼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과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사이 독립성 논란이 불거지며 장기 인플레이션 우려를 자극하고 있다. 물가가 오르면 국채 투자자들은 미래 물가 상승으로 인한 손실을 보상받기 위해 더 높은 금리(수익률)를 요구한다. 조지 사라벨로스 도이체방크 글로벌 외환 리서치 책임자는 보고서에서 “시장이 연준 독립성 훼손 위험을 안일하게 보고 있다”고 경고했다.
프랑스에서는 정치 위기가 채권 시장을 덮쳤다. 오는 8일로 예정된 정부 불신임 투표를 앞두고 정치적 불확실성이 극에 달하면서 프랑스 10년물 국채금리는 14년 만에 최고 수준인 3.587%까지 치솟았다. 프랑스 뿐 아니라 독일(10년물 2.791%), 네덜란드(10년물 2.966%) 등 주요국 국채 금리 상승 여파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전체 국채 시장 불안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주요 경제 대국이 처한 특수 상황이 맞물려 광범위한 ‘부채 위기’ 우려를 키우는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느리게 오는 악순환’을 경고했다. 짐 리드 도이체방크 거시경제 리서치 책임자는 현재 상황을 “부채 우려가 금리를 높이고, 악화한 부채 상황이 다시 금리를 밀어 올리는 악순환”으로 분석했다. 단기적으로 국채 금리가 뛰면서 정부 자금 조달 비용도 같이 높아지고, 그 여파로 재정 건전성이 악화한다는 평가다. 장기적으로는 증세나 긴축 재정으로 이어져 경기 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실제 재정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섬뜩한 전망도 나온다. 전 영란은행(BOE) 통화정책위원이었던 윌렘 뷰이터와 앤드루 센턴스는 “2025년 말이나 2026년 영국에서 재정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예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