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읽음
990원일 때 쟁여둘걸…돈 있어도 선뜻 못 사 먹는 '국민 음식' 정체
위키트리
삼겹살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100g에 2400~2500원대를 유지했으나, 올해 들어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리더니 지난달부터는 2700~2800원대를 넘나들고 있다. 지역별로는 편차가 더 극심하다. 제주 지역의 평균 소비자가격은 3152원, 전북 역시 3008원으로 이미 3000원을 돌파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한 근(600g)’만 사도 2만 원이 훌쩍 넘는 셈이다.
가격 편차는 유통채널과 상품 등급에 따라 더 커졌다. 한국소비자원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삼겹살 100g 가격은 최저 2850원부터 최고 6300원까지 무려 두 배 이상 차이가 났다. 특히 백화점 채널의 고급 삼겹살 가격은 지난달 5800원에서 이번 달 6300원으로 뛰어올랐다. 최고급 등급 삼겹살 한 근을 살 경우 3만 7800원이 필요하다.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즐기는 외식 메뉴’였던 삼겹살이, 일부 가정에선 선뜻 사기 어려운 고급 음식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가격 급등의 배경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깔려 있다. 먼저 상반기 도축량이 줄어든 가운데 가공용 원료육 수요가 늘면서 공급이 달렸다. 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도 이미 올해 돼지 도매가격이 ㎏당 5300~5500원 선으로 전년 대비 3.5% 안팎 오를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여기에 기후 재난이 결정타를 날렸다. 폭염과 폭우가 이어진 올여름, 전국 농가의 가축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5월 20일부터 이달 16일까지 폭염으로 죽거나 폐사한 가축은 151만1854마리에 달했다. 이는 전년 동기(90만250마리) 대비 무려 67.9%나 늘어난 수치다. 돼지 피해 규모만 해도 8만6938마리에 달해 삼겹살 공급에 직접적인 충격을 주고 있다. 게다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위기 경보가 지난달부터 ‘심각’ 단계를 유지하면서, 농가들의 불안감은 더 커졌다.
문제는 삼겹살만이 아니다. ‘기후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가 회자될 만큼, 이상기후는 먹거리 전반의 물가를 밀어 올리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 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5% 상승해, 지난해 7월 이후 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농축수산물과 가공식품 151개 품목 가운데 76.8%에 해당하는 116개 품목의 가격이 1년 새 올랐다. 특히 수박(20.7%), 시금치(13.6%), 귤(15.0%), 열무(10.1%) 등은 두 자릿수 폭등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삼겹살을 비롯한 주요 식품 가격 불안이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생산 차질, 전염병 리스크, 국제 원자재 가격 등 변수들이 얽혀 있어 가격 안정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정부가 민생 회복 차원에서 발행한 소비쿠폰이 단기적으론 소비를 자극해 또 다른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로나19 시기 재난지원금 지급 이후 소고기와 일부 채소 가격이 크게 올랐던 전례도 있다.

‘990원 삼겹살’을 추억하며 “그때 쟁여둘 걸”이라고 아쉬워하는 소비자들의 탄식 속에, 이젠 “차마 못 사 먹는 국민 음식”이 된 삼겹살의 현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기후 위기와 물가 불안이 계속되는 한, 이 탄식은 당분간 멈추지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