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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언론 한겨레, 우리에겐 ‘오겜’ 기둥게임으로 느껴져”
미디어오늘
- 노조 집행부로 활동한 한 달을 어떻게 보냈나.
강나연
“인생의 가치관이 바뀌는 것 같다. 내가 ‘근로자’라고만 생각했지 ‘노동자’로 정체성이 얼마나 있었나 싶다. 후배들 어르고 달래고 때로는 욕먹으며 으쌰으쌰 일했는데, 고작 졸속 매각을 맞으려고 그랬나 싶다. 사측에 ‘가스라이팅’을 당해왔다는 ‘현타’가 왔다. 반면 연대하고 도움을 준 사람들이 많아, 이 사태가 어떤 식으로 매듭지어지든 내가 도움받은 만큼 다른 이에게 갚으며 살아야겠다 생각하고 있다.”
- 한겨레 측은 공지를 통해 “허프 노조가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한다”고 수차례 주장했다. 모회사는 자회사 노조의 교섭 요구에 응할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겨레 측이 임명한 유강문 허프 대표이사는 사임했는데.
강나연
“유강문 대표가 매각 사태 공론화 뒤 사임했는데, 후임이 정해질 때까지 실질적 권한이 없다면서 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다. 허프 이사회는 유강문 대표와 정연욱 상무, 이상준 한겨레 경영관리실장이다. 한겨레 측 경영진이 허프의 등기임원이기도 한 셈이다. 특히 정 상무는 매각 실무를 총괄하면서도 교섭 책임은 피하고 있다. 교섭 회피 전략이라고 본다. 노동위원회에 노조법 위반으로 진정을 제기했다.”

- 매각을 염두에 두고 정규직 공개채용 입사자와 3개월 기간제 비정규직 계약을 맺는 일도 벌어졌다.
곽상아
“당사자인 기자 설명을 들어보면, 6월22일 허프 정규직 공채로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고, 연봉과 출근일을 고지받고 7일 바로 입사했다. 기존 정규직 직장을 그만두고서다. 출근 3일째인 7월3일 유강문 대표가 불러서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이라며 ‘그럴 리(계약이 끊길 리) 없겠지만 만에 하나 모르니 계약을 이렇게 하는 것’이라며 3개월 기간제 계약서를 내밀었다고 한다. 그 3개월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취업 사기다.”
- 최우성 한겨레 사장은 “SNS 사업 기반 모델의 한계”를 말하며 허프 매각 필요성을 주장한다.
곽상아
“정말 허프를 모르고 관심도 없다고 느꼈다. ‘SNS 사업 기반’이란 말은 수년 전 얘기다. 2020년 신임 편집장 취임 뒤 자본잠식 직전일 때 페이스북 인스턴트 아티클 전략으로 누적적자 14억 원을 갚았다. 이후 애드센스를 공략했다. 모두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자발적으로 돌아가며 아침 7시 출근했다. 경영진 역할 공백 속에서 구성원들이 비즈니스모델을 스스로 만들었다. 그러던 중 기자가 퇴사와 휴직 등으로 9명에서 4명으로 줄었지만, 얼마든지 광고 수익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최근 신규 입사자가 1명 들어오자 애드센스 수익이 두 배 가까이 뛰었다.”
“한겨레는 (겸임이 아닌) 전임 대표를 보내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전엔 회사가 영업은 않고 트래픽만 닦달하는 회의를 하다, 유강문 대표가 오면서 그마저 없어졌다. 그렇게 방치하다 갑자기 우리를 위한다며 비즈니스포스트 매각을 말한다. 온몸을 바쳐, 물아일체로 일한 회사를 날강도 당하는 심정이다. 회사는 ‘브랜드만 유지되면 가만히 있을 것’이라고 쉽게 생각했겠지만, 허프라는 정체성은 우리에게 심장이다.”

곽상아
“미국 허프 ‘보이시스’(VOICES) 코너의 영향을 받아 사회적 소수자, 약자 이슈인 페미니즘, LGBT, 장애인의 섹스까지 안 다루는 소재가 없었다. 독자 유입을 위해 엔터테인먼트 기사를 써도 페미니즘 이슈를 야마(기사의 핵심)로 뽑는다. 가랑비 옷 젖듯 수익을 추구하면서도 페미 등 의제를 설득하는 전략이었다.”
강나연
“예를 들어, 이혼숙려캠프 등 프로그램의 부부 갈등을 다른 매체는 ‘여자가 게으르다’고 쓴다면, 우리는 산후우울증에 걸릴 수밖에 없는 여성 입장을 쓴다. 그렇게 허프만의 선을 찾아 정체성을 지키고 자생력을 키워왔고, 그건 우리의 심장이다.”
- 허프 구성원들은 허프 정체성이 비즈니스포스트와 맞지 않는다고 밝혀왔다.
곽상아
“지금 비즈니스포스트의 대문에 걸린 기사만 봐도 알 수 있다. 친기업적인 홍보성 기사를 쓰지 않으려고 인형 눈알을 꿰듯 한땀 한땀 기사를 써가며, 수익성과 우리의 정체성의 선을 찾아왔다. 이렇게까지 구성원이 반발해 공론화되고 법적 리스크까지 생겼는데 허프를 인수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 비즈니스포스트는 기업 광고주 담당자들 사이에서도 여론이 안 좋다고 알고 있다. 허프 브랜드 인수로, 매체 택갈이(겉포장 바꾸기)를 하려는 것 아닐지 의심스럽다. 또한 비즈니스포스트 대표가 한겨레 출신인 만큼 그들의 짬짜미를 깨기 쉽지 않은 것 아닐까 추정한다.”

곽상아
“나 역시 한겨레 주주다. 한겨레 가치가 널리 퍼지길 바란다. 한겨레의 사장이 이처럼 반노동적이고 비민주적인 일을 벌이는 데에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이다. 한겨레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보 언론으로 한겨레의 미래가 진심으로 걱정된다. 비용 절감으로 고용 약자인 자회사의 노동자부터 벼랑 끝으로 내몰려 한다. 이 일을 이뤄내면, 우리 다음의 약자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밀어내면 한겨레는 무엇이 될까. 그러나 한겨레 구성원 가운데 한겨레 정신을 최전선에서 지켜주며 버티는 노동자들을 만나며, 경영진과는 다르다고 느낀다.”
강나연
“오징어게임 3편 마지막 장면이 있다. 기둥 뒤의 생존자들이 하나씩 기둥을 넘어갈 때마다 밀어내는 게임이 마지막 게임이다. 멀쩡한 사람을 기둥 밖으로 내어 죽도록 내버려 두는 일이다. 우리는 현재 잉여 자본금을 갖고 있고 유동성 위기도 없다. 한겨레는 자기가 살겠다고 우리를 밀어내는 것이다. 요즘 한겨레 모습이 오징어게임의 기둥 게임으로 느껴진다.”
한겨레 측은 비즈니스포스트와 잠정 합의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으나, 허프 노조와 한겨레 구성원의 격렬한 반발로 최종 타결은 이뤄지지 않았다. 허프 노조는 단체협약 위반에 따른 단체교섭권 침해와 노조위원장 노조 탈퇴 종용 등을 이유로 한겨레 측을 노동위원회에 진정했다. 노동청엔 △사용자성 기피·분산을 통한 교섭 창구 폐쇄 △조합원들 개인정보 무단 제공 △고용승계 차별 및 희망퇴직 강요 등 고용조건 불이익 조치로 진정했다. 직원 개인정보 무단 제공(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을 이유로 한겨레와 비즈니스포스트를 경찰에도 고소한 상태다.
허프 인수의향자인 비즈니스포스트 강석운 대표는 13일 통화에서 인수에 대한 허프 구성원들의 반발에 대해 “한겨레와 허프 관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겨레와 허프 대표 측이 허프 구성원들에게 육아휴직자와 신규채용자를 고용승계 대상자에서 제외할 가능성을 거듭 언급한 데 대해서는 “한겨레와 고용승계 보장 원칙을 정했다”며 “다만 5월쯤 인수 과정에서 허프가 신규 채용하는 것은 인수자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입장은 전달했다”고 했다. 비즈니스포스트가 친기업매체로 기사와 광고 맞바꾸기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광고국 직원이 4~5명이며 편집국은 광고 영업을 하지 않는다. (기사와 광고·협찬 맞바꾸기)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