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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몰락했다"…'자산 600억설'에 입 연 도련님 이미지 '대세' 男배우
연예계에서 ‘배경’은 언제나 뜨거운 화제입니다.

화려한 집안 출신 스타들에게는 종종 ‘후광 효과’라는 말이 따라붙곤 하는데요,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단지 이름뿐인 유산을 등에 지고 스스로의 힘으로 걸어온 사람도 있습니다.

배우 이서진이 바로 그중 하나입니다.
이서진의 가계도를 살펴보면 ‘금수저’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화려한 집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친할머니이신 진말홍(풍기 진씨) 여사는 조선 말기에서 일제강점기 시기에 지역 유지이자 금융계 대지주로 알려진 진희규 씨의 딸입니다.
진희규 씨는 경상북도 참사, 즉 지금으로 치면 도지사 자리를 역임했고, 대구은행, 경일은행 등 당대 주요 금융기관에서 감사와 이사를 맡아 일제강점기 지역 재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입니다.

조부 이보형 씨는 서울은행장과 제일은행장을 지내신 금융계 거물이였고, 아버지 이재응 씨 역시 안흥상호신용금고 이사장을 역임한 금융인입니다.
방송을 통해 잠시 비춰진 이서진의 과거는 꽤나 여유로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가사도우미가 6명이나 있었던 집안에서 ‘도련님’이라 불리던 시절이 분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오렌지족’, ‘자산 600억’, ‘집사 있는 집안’ 같은 소문은 오랫동안 이서진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는 방송 출연을 통해 이를 직접 해명했습니다.

“600억 자산이 있었다면 이 자리에 없었을 거다. 어릴 적 할아버지께서 높은 자리에 계셨던 시절에 잠시 집안이 잘 나갔던 적은 있지만, 그 이후로는 몰락했다”

이서진은 어린 시절 가세가 기울었던 사실을 솔직히 밝혔습니다.
아버지는 절약이 몸에 배신 분이었고, 그 모습이 자연스럽게 자신에게도 이어졌다고 합니다.

지금의 단단하고 실속 있는 이미지 역시, 어쩌면 스스로 일어서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서진은 지난 1999년 드라마 ‘파도’로 데뷔한 후 꾸준히 연기력을 쌓아왔습니다.

그는 ‘다모’, ‘불새’, ‘이산’, ‘연인’, ‘참 좋은 시절’, ‘트랩’ 등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보여주었고, 예능에서는 투덜거리면서도 따뜻한 이중 매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나영석 PD와 함께한 ‘꽃보다 시리즈’와 ‘삼시세끼’에서는 ‘도련님’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그 별명은 배경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귀찮은 것은 귀찮다고 솔직하게 표현하면서도 자기 몫은 묵묵히 해내는 스타일이 바로 이서진만의 매력이자 ‘도련님’ 이미지의 본질입니다.

화려한 배경이 있었지만 그것이 지금의 그를 만들어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무게를 떨쳐내고 ‘이서진’이라는 이름 하나로 우직하게 살아온 길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쉽게 물려받고, 누군가는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는 인생에서 이서진은 물려받은 찰나의 영광에 기대지 않고 자신만의 커리어를 차근차근 쌓아왔습니다.

결국 그는 후광의 필요 없이 스스로 빛나고 있습니다.

그가 가진 배경보다 더 대단한 것은 그걸 뛰어넘은 이서진의 선택과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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