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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철옹성 '쿠다'...K-팹리스가 깰 수 있을까[비하인드 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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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회사인 엔비디아의 가장 큰 무기는 소프트웨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엔비디아의 개발 플랫폼 '쿠다(CUDA)'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쿠다는 엔비디아가 자사의 GPU(그래픽처리장치)를 활용해 AI를 개발하도록 만든 플랫폼인데요. 파이썬 등 개발 프로그램 언어를 반도체 언어로 바꿔주는 역할을 합니다.

현재 전세계 80% 이상의 AI가 쿠다 환경에서 개발된다고 합니다. 딥러닝의 창시자인 제프리 힌튼 토론토대 교수는 "쿠다 없이 딥러닝 실행은 불가능에 가깝다"고까지 표현합니다.

문제는 쿠다가 다른 반도체 환경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에 쿠다는 엔비디아의 시장점유율을 지켜주는 핵심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다른 반도체 기업들이 만든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쿠다 환경에서 작동하지 않으면 굳이 선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비(非) 엔비디아 반도체 기업들은 어떻게 이런 쿠다 생태계를 돌파하려고 하고 있을까요?





쿠다는 비유하자면 운영체제(OS)에 가깝습니다. 이에 업계에선 "AI 개발자들이 자신들이 쿠다를 쓰고있다는 걸 체감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컴퓨터를 쓰면서 파워포인트나 크롬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걸 알지 MS윈도우를 쓴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에 비 엔비디아 기업들은 개발자들이 쿠다와 최대한 유사한 환경에서 개발 프로그램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합니다. 개발자들의 컴퓨터를 다시 세팅하고 각 회사들이 개발한 SDK(소프트웨어 개발자 도구)를 제공해 쿠다와 유사한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개발자들은 엔비디아 GPU를 쓸 때와 거의 비슷한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이 작업이 AI 개발자들의 반도체 선택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팹리스 기업들에는 하드웨어 엔지니어만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많습니다. 국내 스타트업인 리벨리온의 경우 엔지니어 중 40~50%가 소프트웨어 부문 엔지니어라고 합니다. 퓨리오사AI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남은 건 개발 프로그램들의 호환입니다. 윈도우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었다면, 진짜 파워포인트나 크롬 같은 프로그램도 똑같이 작동해야죠. 개발 프로그램은 AI모델을 설계하는 파이썬 기반의 '파이토치', 공개된 AI모델을 불러와 쓸 수 있는 '허깅페이스' 등이 대표적입니다.

다행히 최근 개발 프로그램들은 쿠다 외 플랫폼에서의 호환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래밍 도구들이 대부분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 수정·고도화하는 '오픈소스' 기반이어서 특정 플랫폼 종속을 거부하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비 엔비디아 진영의 다양한 반도체 기업들이 직접 파이토치, 허깅페이스 등의 개발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에 퓨리오사AI와 리벨리온은 지난 3월 서울에서 열린 '파이토치 KR 컨퍼런스'에 발표자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리벨리온은 지난해 11월 파이토치 재단의 일반 멤버에 가입하기도 했습니다.



세부 과정이 복잡하지면, 결국 목표는 단순합니다. 쿠다와의 이질성을 최대한 줄여서 AI 개발자들이 하드웨어 변경에 신경을 쓰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리벨리온 관계자는 "RBLN SDK를 사용해본 개발자들이 '기존 환경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는 반응을 보였다"며 자사 플랫폼의 성과라고 강조했습니다.

쿠다의 생태계가 워낙 견고해 단기적으로 변화가 발생하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업계는 장기적으로는 쿠다와 엔비디아의 독점체제가 지속되진 않을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만큼 반도체 스타트업들도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오픈소스 업계의 승리는 자주 목격되는 일입니다. 익스플로러가 독점하던 웹브라우저 시장에 2012년 '오픈소스' 기반의 크롬이 등장하면서 시장이 뒤집혔죠. LLM(거대언어모델) 개발에서도 오픈AI나 구글 같은 기업만 할 수 있다는 통념과 달리 오픈소스 진영에 딥시크, 메타 등이 부상했고 이제 국내에서도 LG AI연구원, 업스테이지 등 스타트업들이 LLM을 만들고 있습니다.

백준호 퓨리오사AI 대표는 지난달(5월) 서강대학교에서 열린 특강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바꾸는 건 반도체 칩 개발보다 더 어렵다"면서도 "그렇지만 5년 뒤에도 쿠다가 독점적으로 시장을 장악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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