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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해방일지⑥] 여행, 자연과 동행하다...식물 존중 실천 방안 ‘생태관광’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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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

현대 사회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도시에 거주하는 시민들이 늘어나자 자연은 구경하기 좋은 대상, 쉼을 주는 공간, 건강을 충전시켜 주는 장소로 여겨지곤 했다. 전세계 국가들의 경제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자연을 찾는 대중관광이 늘어났고, 수요가 늘어나면서 관광산업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그 가운데 관광상품으로 팔리게 된 자연과 생태계는 심각한 훼손을 피할 수 없었다.

관광으로 인한 생태계 훼손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생태관광이 주목받고 있다. 생태관광은 대규모 관광이 초래하는 자연환경 파괴와 지역사회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줄이기 위한 ‘책임 있는 여행’을 뜻한다. 이러한 생태관광은 자라나는 세대에게 환경 교육의 장이자 인성과 감성을 함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평가받고 있다.

환경부는 자연환경보전법 제41조 생태관광의 육성 조항에 따라 생태관광의 육성과 발전을 위해 환경적으로 보전 가치가 있고 생태계 보호의 필요성을 교육할 수 있는 40여개 지역을 생태관광지역으로 선정해 관리해 왔다. 철새도래지, 습지, DMZ(Demilitarized Zone·비무장지대), 계곡, 늪 등이 생태관광지역으로 선정되는 주요 지역이다.

이러한 생태관광은 2023년 농촌진흥청이 식물에 대한 도시민의 올바른 인식과 보호 의식을 확산하고 식물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과 생물 다양성 유지에 기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식물 존엄성 선언문’을 통해서도 그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해당 선언문 제1장은 식물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식물은 경제적 도구적 가치뿐만이 아니라 생태적, 윤리적, 미적인 가치를 지닌 존재”라고 설명한다. 본문에 따르면 식물은 인간, 동물과 함께 생태계를 공동으로 유지하는 동반자로서 살아가며 인간과 식물의 관계는 다양한 영역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인간이 식물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지에 대한 여러 관점의 검토가 필요하다.

관광은 분명 현대인에게 쉼과 즐거움을 제공하는 활동이지만, 대다수 대중관광은 환경오염과 생태계 훼손이라는 그림자를 동반한다. ‘식물해방일지’는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생태관광 현장에 직접 방문해 보고 식물과 인간의 공존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했다.
숲과 하나 되는 여행...옥천 안남면의 생태관광

생태관광은 숲과 하나되는 여행이라고들 한다. 인간이 그동안 자연을 착취하고 훼손하는 행위를 통해 쉼과 휴식을 얻어왔다면, 생태관광에서는 생태계를 보전하고 환경 보호에 대한 중요성을 배우면서 자연과 하나가 되는 의미 있는 경험을 선사한다.

안내면 장계리에서 동이면 석탄리를 거쳐 안남면 연주리까지의 21㎞를 물길로 이어진 옥천 대청호 생태관광지는 2021년 전국에서 28번째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됐으며, 올해는 한국생태관광협회가 ‘5월 이달의 생태관광지’로 선정한 생태관광 명소이다.

지난 20일 방문한 옥천 생태관광협의회(이하 협의회)에서는 ‘마을을 잇다, 마음을 잇다’ 프로그램의 구성을 살펴볼 수 있었다. 해당 프로그램은 안남면 명소와 덕실마을길을 걷고 화인산림욕장에 방문하는 일정으로 이뤄져 있으며 관광객들은 팥손난로를 만들거나 전래놀이도 경험할 수 있다.

협의회에서는 생태관광시 방문객에게 짐을 꾸릴 때 개인용 물통과 컵을 필참하도록 권장하고 있으며 이동 수단 또한 차량 대신 도보 중심의 코스로 구성해 탄소배출을 최소화하는 데 힘쓰고 있었다. 협의회는 이 같은 탄소중립 실천을 통해 관광객이 단순히 자연을 소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배려하는 태도로 여행에 임하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생태관광 프로그램 운영을 맡고 있는 실무운영팀 구성원이자 협의회 소속인 박연화 사무국장은 옥천 안남면의 생태관광 프로그램은 현지 주민 공동체가 빠짐없이 참여해 관광객을 맞음으로써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이를 나타내듯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지역에서만 둥지를 튼다는 제비를 촬영하는 기자에게 매점 주인이 선뜻 설명을 건넸다. 안남면 마을에는 매해 봄마다 네 종류의 제비가 찾아오는데, 마을 사람들이 이들을 내쫓지 않으니 가게 안에도 둥지를 틀고 새끼를 기르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실무운영팀이 안내한 미산마을의 향수 500리길은 금강 대청호가 내다보이고 굽어진 길이 고즈넉한 풍경을 자아내는 공간이었다. 데이지꽃과 종을 모를 붉은 꽃이 밝게 피어오른 길과 대청호를 감상하며 걷다 보면 1998년 6월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시대 서당인 경율당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경율 전후회가 세운 서당으로, 전후회는 평소 율곡 이이의 학문과 덕행을 존경해 ‘율’ 자를 즐겨 썼다는 기록이 있다.

걸어서 15분 정도 이동하면 마주칠 수 있는 길목에서는 한때 물에 잠겼던 수몰지대에 조성된 보리밭과 그 가운데 신비롭게 서 있는 감나무의 자태를 감상할 수 있다. 이 역시 방문객이 가까이 근접하거나 풀을 밟는 등 훼손이 일어나지 않도록 울타리를 쳐 놓고 자연 경관을 보존하고 있는 상태였다.

실무운영팀 소속 박연화 사무국장은 “옥천 안남면의 생태관광은 주로 봄과 가을, 겨울에 운영된다. 걷는 일정이 대부분이다 보니 이상 기후로 인해 너무 뜨거운 여름에는 프로그램이 운영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자연의 변화에 따라 프로그램 구성이 바뀌는 것 또한 생태관광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방문한 국내 최대 메타세쿼이아 숲인 화인산림욕장은 4.2km 길이의 산림욕 코스로 이뤄져 있었다. 메타세쿼이아, 편백나무, 삼나무, 조선솔 등으로 이뤄져 있는 산림욕장은 한 평생 목재·목공 관련 무역에 종사해 온 홍일상사의 정홍용 대표가 1970년대초 고향에 임야를 사들여 홀로 나무를 심고 정성껏 가꿔온 숲이다.

산림욕장 입구에는 방문객이 지팡이로 쓸 수 있도록 부러진 나무들을 모아 뒀다. 바구니를 발견한 방문객들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나뭇가지 재활용에 동참하는 모습이었다. 지팡이로 쓸 수 없는 나뭇가지들은 부러진 그대로 둬 다른 나무들의 비료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산림욕장의 방침이다.

지팡이와 함께 들어선 산림욕장 입구에서부터 곧게 뻗은 나무들이 울창했고 상쾌한 숲의 향이 가득했다. 산림욕장을 함께 방문한 실무운영팀은 숲의 아름다운 경관이 안남면에서 방문한 다른 생태관광지와 같이 인위적 개입을 최소화하고 농약을 치지 않은 결과물이라고 소개했다.

산림욕장 코스를 따라 걷다 보면 작은 물웅덩이를 여러 차례 발견할 수 있다. 마치 빗물이 고인 것처럼 보이는 ‘둠벙’이라는 이름의 물웅덩이는 개구리와 같은 수서무척추동물와 각종 곤충들의 서식처로 기능한다. 홍 대표는 생태계 순환과 생물다양성 보존을 위해 산림욕장에 둠벙을 여러 개 만들어 뒀다고 설명했다. 산림욕장 내부에서 볼 수 있는 몇 없는 인공물이었다.

2013년 산림욕장을 개방한 이후 모기 등 해충에 대한 민원이나 미끄러운 흙길에 대한 방문객의 불만이 있었지만 홍 대표는 “자연은 있는 그대로 살아있어야 한다”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다만 날씨를 가리지 않고 산림욕장을 찾는 방문객의 안전을 위해 기존의 요구였던 갑판 길 대신 일부 보행에 문제가 있을 법한 지형에 야자 매트를 깔았다.

홍 대표는 “사람은 나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나무 표면은 항상 18도에서 22도로 유지되는데, 사람이 살기 가장 좋은 온도이다. 사람은 결국 숲으로 가야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된다”면서 “산림욕장에 오르는 방문객들에게는 직접 쓴 안내책을 대여해 준다. 이 책을 통해 숲에 있는 나무들의 이름과 의미, 특징 등 다양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옥천 안남면이 운영하는 생태관광은 지역 주민과 자연, 관광객이 함께하는 느린 여행이다. 관광객은 걷는 여행을 통해 제비가 둥지를 트는 마을길, 조선시대 서당인 경율당, 수몰지의 보리밭과 감나무, 국내 최대 규모의 메타세쿼이아 숲을 만난다. 협의회는 프로그램 진행 과정에서 플라스틱 사용 지양, 도보 중심 코스 지향 등 탄소중립 실천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이 과정 속에 관광객은 자연에 대한 소비자가 아닌, 생태를 배려하며 책임을 나누는 주체로서 여행에 임하게 된다.
생태관광, ‘식물 존중’의 방향성을 제시하다

협의회는 앞으로 지역 농장과 연계하는 체험 등을 새로 들여 지역사회와 협력하는 규모를 키울 계획도 세우고 있다. 호흡하는 농장이라는 뜻의 ‘숨숨농장’ 청년 농장주 권성민씨는 식물의 생애주기와 성장환경에 최대한 개입하지 않는 방식으로 포도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의 지향점은 생태 농법 중에서도 ‘자연 농법’이다.

자연 농법이란 인위적으로 땅을 갈지 않고, 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며 자연의 힘을 빌려 농사를 짓는 농법이다. 고무 슬리퍼를 신고 비닐하우스 안으로 걸어들어간 그는 “이 시기 포도 농장에서 가장 바쁜 일이 알솎기(좋은 품질의 포도를 얻기 위해 알 일부를 솎아내는 작업)인데, 우리 숨숨농장에서는 포도 나무가 세력을 조절해서 자연 수정되도록 알솎기를 진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숨숨농장은 포도밭 지면에서 자라나는 들풀을 제거하지 않고, 추가적으로 허브를 길러 해충을 방지하는 농법을 고수한다는 특징이 있었다. 포도 농사를 짓지만 포도만 있는 농장은 아닌 셈이다. 권씨는 “농사를 짓는 땅과 작물 이외 다른 식물 또는 곤충들의 범위까지 순환적인 구조 안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을까 고민하면서 작물을 얻을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권씨는 장차 옥천 생태관광 프로그램과 연계할 방향에 대해서도 “포도 따기 같은 단발성 체험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무 묘목을 분양해 전체 생육 과정을 경험하고 식물을 어떻게 관리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을지 교육해 주는 프로그램으로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협의회는 자연을 소비하는 대신 걷고 관찰하며 자연과 관계 맺는 생태관광, 즉 ‘선순환이 가능한 여행’을 지향하고 있었다.

협의회 실무운영팀 소속 박연화 사무국장은 “옥천에 관광객분들은 생태관광을 통해 화려한 장소에서 사진을 찍거나 대단한 콘텐츠를 경험하거나 하지 않아도 자연 속에서 그저 걷고 작은 들풀과 시냇물을 관찰하는 것으로도 새로운 가치를 느낄 수 있게 된다”면서 “관광하러 오시는 분들이 보존된 자연환경을 경험하는 데 대가를 지불하면서 이 마을 주민들은 아름다운 생태계를 보존하고 지키는 선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생태관광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나무를 꺾거나 꽃을 따는 등의 체험 활동이 있었는데 자연을 위해 다른 프로그램으로 대체했다. 최근에는 풀과 꽃 같은 재료로 만들지만 쓰임새가 없는 물건을 만들지 않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짜기 위해 고민 중”이라면서 “이런 노력 덕분인지 방문객 분들은 ‘따뜻한 하루를 보냈다’는 평가를 많이들 하신다”고 덧붙였다.

이어 “생태관광을 통해 식물과 자연을 해치지 않는 법을 배우고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성을 다시 알고 가신 분들의 삶이 하나씩 모여 지속가능한 미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생태관광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 식물과 자연 생태계를 존중하는 새로운 시도이자 교육의 장으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생태관광에 포함된 숲 교육 활동은 식물 생명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며 간접적인 보호 효과를 준다는 측면에서 식물 생명 존중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

식물 존엄성 선언문 속 “우리는 식물의 의미와 가치를 식물윤리교육을 통해 후속세대에게 가르치며, 식물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교육과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식물 존중의 적용 원칙과도 일맥상통한다.
여행 이상의 기쁨...생명윤리 전환의 장 ‘생태관광’

전문가들은 생태관광은 식물 보호와 환경 교육, 지역사회 활성화를 아우르는 지속가능한 활동이라는 점에서 기후위기 시대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고 주장했다. 또 현재 정부에서 지정한 국내 생태관광지역이 40개에 이르는 만큼 제도적 기반은 마련됐지만, 국민 인식 확산과 홍보 강화가 강화될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생태관광협회 손영복 팀장은 “우리는 생태관광을 통해 식물에 쉽게 접근하고 자연 속으로 들어가보는 귀한 경험을 하게 된다”면서 “생태관광은 자연환경해설사와 함께하는 여행이다 보니 식물의 이름이나 종류를 알려주는 데 그치기보다 식물의 중요성과 보호의 필요성을 교육하는 데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손 팀장은 “인간이 얻는 자원의 약 80%가 식물에서 비롯되지만 식물은 온도 변화에 민감한 어려운 생명체이기도 하다”면서 “그래서 이런 생태관광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가 식물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전문 기관과 협력해 식물을 배우고, 더 많이 심고, 관리하는 방법까지 익힐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생태관광에 집중하기 시작한 환경부는 국내 생태관광의 전망을 밝게 점치면서도 환경을 보호하면서 지역사회의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이상적인 생태관광을 위해 확산에 힘쓰겠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자연공원과 이영란 사무관은 “생태관광은 개발되지 않은 상태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즐기는 자연관광이나 지역사회가 관광으로부터 정당한 이익을 얻도록 하는 공정여행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개념”이라면서 “이는 사람과 자연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나는 접점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생태관광에 대한 국민 인식이 낮은 상태이기 때문에 생태관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부터 홍보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생태관광이 공식적으로 법제화된 나라가 많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첫 발을 잘 내려서 전국적인 운영이 이뤄지고 있고 주민들과 환경이 공존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기반은 마련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인간중심주의 시대 속에서 벌어진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착취로 환경 파괴가 이뤄지고 기후위기 시대가 도래했다. 이 가운데 생태관광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쓰는 인식 개선 활동이자 식물 존중의 가치를 사회에 확산시키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인간의 눈높이가 아닌 식물과 자연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한 생태관광은 식물 생명의 존엄을 인정하고 환경을 보호하는 데 의의가 있다.

생태관광은 나무 한 그루를 온전히 바라보고 살아 있는 생태계의 동반자로서 그를 인정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소비의 시선이 아닌 존중의 마음으로 숲을 마주할 때 관광은 자연을 지키는 힘이 된다. 앞으로 생태관광은 관광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는 동시에 식물의 생명권을 인정하고 보호하는 생명윤리적 전환의 장으로서 더욱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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