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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떠나 찾은 나다움” 예산 청년마을에서 내일을 보다


행정안전부는 2018년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을 시범 운영으로 시작해 본격 추진해왔다. 청년이 주도적으로 지방에 머무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들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사업의 핵심이다. 시범 운영 기간동안 목포 ‘괜찮아마을’, 서천 ‘삶기술학교’, 문경 ‘달빛탐사대’ 등이 차례로 청년마을에 선정돼 사업 실효성을 입증했다.
본 사업 도입 이후 성과도 눈에 띈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총 39개의 청년마을이 선정됐고, 5100여 명의 청년이 이 마을들을 찾았다. 이 중 638명이 해당 지역에 정착했다. 단순히 수치상의 성과를 넘어, 지역 재생과 청년의 ‘삶의 실험’이라는 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 중 ‘내 일과 내일을 찾는다’는 의미를 담은 예산 청년마을 ‘내:일’은 청년 주도의 삶 실험터이자 지역 재생의 거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방 중에서도 특히 초고령화와 중심지 공동화가 심각한 예산군에 청년들이 모였다는 점에서 더욱 이례적이다.
사업이 시작된 지 2년이 지난 지금, 예산 청년마을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이곳에서 과연 청년들은 새로운 일과 미래를 찾았을까.

충청남도 예산군은 대표적인 초고령화 지역이다. 2024년 기준 노인 인구 비율이 34.4%에 달해 전국 평균(19.5%)과 큰 격차를 보인다. 특히 예산군청이 위치한 예산읍의 구도심은 상가 공실과 노후 시설이 늘어나며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주도한 ‘예산시장 프로젝트’가 일부 활기를 불어넣었지만, 구도심 전체를 되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예산의 중심에 2023년 ‘청년마을 만들기’ 지원사업에 선정된 ‘내:일마을’이 들어섰다. ‘내 일과 내일을 찾는다’는 뜻을 담은 이 마을은 박정수 대표가 서울에서 운영하던 ‘잇는연구소’를 기반으로 시작됐다. 현재는 ‘내일마을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 중이다.
박 대표는 “꼭 예산이어야 했던 이유는 없었지만, 우연히 알게 된 예산이라는 지역이 궁금해졌고 어느 순간 이곳에서 살아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예산 도시재생 지원센터의 행사명과 슬로건이 자신의 단체와 같은 ‘잇다’였던 점이 ‘운명적’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우연한 계기로 찾아온 예산이지만, 줄곧 서울에서 활동하면서 느끼지 못했던 여유와 나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며 “도시에서의 기계 부품같은 삶을 벗어나 스스로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지금의 목표”라고 했다.

현재 ‘내:일마을’에서는 청년들이 주도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다. ‘내:일마을’의 핵심 프로그램인 ‘예산탐구생활’은 청년들이 예산에 머물며 지역의 문화 콘텐츠를 체험하고 주요 관광지를 탐방하는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특정한 형태에 얽매이지 않고 체험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안녕 텃밭’ 프로그램에서는 직접 텃밭을 가꾸고, ‘쿡케이션’에서는 요리를 통해 지역과 연결된다. 단기 체험 중심이 아닌 ‘쉼’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지역에 녹아들 수 있도록 안배하고 있다.
박 대표는 “우리는 창업 중심의 마을보다는 청년이 자신의 일을 찾고, 자율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며 “프리워커(Free-Worker)라는 개념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청년마을의 거점 공간 ‘내일숲’은 지난 4월 문을 열고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독립서점 ‘내일은 밝음’, 교육 공간, 체험 공방, 공유오피스 등이 들어선 이 3층 건물은 청년들의 자부담과 사업비를 통해 직접 리모델링됐다.
내일마을의 운영진 박재희 이사는 환경과 돌봄 영역을 다루는 ‘동그리컴퍼니’를 창업해 협동조합과 함께 하고 있다. 동그리컴퍼니는 천연 제품을 수공예로 제작해 판매하고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문화 예술과 융합된 마음 치유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박 이사는 “창업은 처음이라 어려움이 많았다”며 “지역 관계자들이 다양한 도움을 주고 조언을 해줘 혼자만의 싸움은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청년마을 사업 지원 기간인 3년이 지난 마을은 ‘졸업마을’이 된다. 지난해 지원 기간이 종료된 후 3년 이상 자립해 운영된 청년마을 14곳은 ‘졸업마을’임을 인정받고 행안부로부터 인증현판을 수여받았다. 2023년부터 지원받은 ‘내일마을’도 내년이면 ‘졸업마을’이 된다.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의 지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고, 실제 홀로서기에 돌입해야 한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지속적인 지원보다는, 청년들이 자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청년마을이 사라져도 기능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자립”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스템의 경직성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지정된 예산과 항목만을 고집하는 지금의 방식은 유연성이 떨어져 정책 사각지대가 생길 수 밖에 없다”며 “해외처럼 사업 목적과 계획에 따라 유연하게 지원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내일숲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혜란씨는 “외부에서 유입되는 청년들과의 활동도 중요하지만, 지역의 토착민들과도 잘 어우러져야 장기적으로 한 마을이 될 수 있다"”며 “지역 학부모, 노인, 상인 등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할 수 있는 콘텐츠를 구상하고 과감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남수 국립공주대학교 교수(충남마을닥터연구소 소장)는 “예산군이 도시로서의 균형을 잃은 것은 확장 가능성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며 “청년들이 지역에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활동을 창출하는 것은 지역의 확장성을 보충하고 공간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청년마을로 청년들이 유입면서 지방에서 사라졌던 ‘도시다움’이 확충되고 있다”며 “이는 마을 소멸과 지역 소멸을 막는 효과를 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대표는 청년마을이 단지 지역 정착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삶의 기준’을 다시 묻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는 “해외의 한 기자가 한국 청년 자살률이 높은 이유로, 성공의 기준이 지나치게 획일적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을 인상 깊게 들었다”며 “정해진 행복에 갇히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청년마을의 성과는 수치로도 충분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는 청년들이 스스로에게 ‘어디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묻고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데 있다. 예산에 정착한 ‘내:일마을’은 지금도 그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을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