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8 읽음
종착역 향하는 이창용號, 저성장·금융불안 속 통화정책 방향은
조선비즈시장에서는 한은이 내수 부양을 위해 연내 최소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트럼프발(發) 관세 폭풍으로 경기 하방 압력이 더 커지더라도 추가 금리 인하를 단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다수다. 임기 내내 환율과 가계부채 상승 우려에 시달렸던 이 총재가 성장보다는 금융안정에 방점을 더 찍을 가능성이 있어서다.
◇ 소비자 물가 2%대로 하향… 가계부채 비율 5분기째 하락
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 총재는 지난 2022년 4월 취임한 이후 기준금리를 빠르게 인상하며 강도 높은 긴축기조를 이어갔다. 그 결과 6%를 넘겼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작년 8월 물가 안정 목표치인 2.0%를 달성했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지난 2021년 3분기(99.3%) 정점을 찍은 뒤 내리 하락해 작년 말 기준 90.1%로 내려왔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은행은 작년 10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낮추며 3년 2개월 만에 긴축기조를 종료했다. 미국의 대선과 맞물려 글로벌 무역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내린 결정이었다. 이후에도 비상계엄과 제주항공 사태로 소비심리가 위축되자 작년 11월과 올해 2월 추가 인하를 단행, 기준금리를 2.75%로 낮췄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다양한 평가가 나왔다. 우선 한국개발연구원(KDI)을 필두로 인하 시점이 늦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KDI는 이미 작년 상반기부터 근원물가 상승률이 2%에 근접했다는 점에서 긴축기조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후 비판의 강도를 높여 ‘금리 인하 실기론’까지 언급했다. 한은의 금리 인하가 더뎌 내수가 회복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골자였다.
반면 금리를 더 올렸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장 관계자는 “한은은 다른 나라에 비해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렸지만 2023년 1월 이후로 금리 인상을 중단하면서 최종 금리 수준이 미국보다 낮았다”면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불안으로 인한 결정이었지만, 아직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오히려 낮은 금리 수준으로 추가 인하 여력이 작아지는 문제가 생겼다”고 비판했다. 그는 “금리를 더 올리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물가는 작년 말부터 2%대에서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고 있고, 가계부채 증가세도 둔화 추세다. 환율 역시 비상계엄 여파로 한때 1480원을 돌파했지만 최근에는 하락세로 전환됐다. 이 같은 정책 성과를 바탕으로 이 총재는 지난해 글로벌 금융전문지 더뱅커가 수상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올해의 중앙은행장’으로 선정됐고, 올해는 미국의 대표적인 외교 싱크탱크인 외교정책협회(FRA)가 수여하는 최고 권위 상인 ‘FRA 메달’을 받기도 했다.
이 총재는 작년 11월 10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간의 통화정책을 돌아보며 “물가를 안정시키는 과정은 한 사이클이 끝났다고 생각한다”면서 “어느 나라보다 빨리 물가 상승률 2% 목표를 달성했고, PF 부실이나 외환시장도 큰 문제 없이 관리했다”고 평가했다. 실기론에 대해서는 “1년 정도 지나 경기 상황, 금융 안정을 보고 평가해줬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 수출·투자·내수 부진 ‘삼중고’… 연내 2.25%까지는 내릴 것
그러나 최근 전개되는 국내외 상황은 이창용호(號)에 더 큰 도전을 안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글로벌 관세 전쟁이 재점화될 조짐이 보이고 있고, 국내에서는 조기대선 등 정치 불안이 심화되면서 경기 하방 압력을 키우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던 수출은 올해 1월 플러스(+) 행진을 마감했으며, 기업의 설비투자도 위축되는 흐름이다. 일각에서는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이 한은의 전망치인 1.5%는 커녕 0%대까지 추락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문제는 한은이 과감한 금리 인하를 단행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토지거래허가제 해제 및 확대 재지정 과정에 집값이 다시 오르면서 가계부채 증가 위험이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4월 셋째주(21일 기준)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 대비 0.08% 오르면서 12주째 상승세를 지속했다. 한은은 토허제 효과가 반영되는 3월 중순부터 5월까지 가계부채 증가세가 가팔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환율도 여전히 부담 요인이다. 서울외국환중개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원·달러 환율 주간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전 거래일보다 16.3원 내린 1421.0원을 기록했다.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직후인 지난달 9일(1484.10원)보다는 환율이 큰 폭 하락했지만, 1400원을 하회했던 비상계엄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전문가들은 경기 하방 압력이 더 확대되더라도 한은이 3회 이상 금리를 인하하기 쉽지 않다고 예상한다. 한은이 0.25%p씩 금리를 내린다고 할 때 기준금리가 연 2.25%(현재 연 2.75%)보다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한 한은 관계자는 “이창용 총재는 환율과 가계부채에 굉장히 예민한 편”이라면서 “내수 부진은 금리 인하로 대응하더라도, 수출을 포함한 종합적인 경기부양은 추가경정예산(추경)과 같은 재정정책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또 다른 한은 관계자도 “현재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 사이클에 있기는 하지만, 언제 어떤 속도로 내릴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면서 “미국의 통상정책이나 관세 협상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고 환율이나 가계부채 등 금융불안 문제도 불거질 수 있어 한은은 경제 지표를 지켜보면서 유연하게 결정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대선 국면에서 각종 재정 확대 공약이 쏟아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한은은 금리 인하 속도를 더 신중하게 조절할 것으로 보인다. 한 시장 관계자는 “하반기에는 성장에 방점을 둬야하는 상황이긴 하지만, 한은은 대선 이후 재정정책 강도를 보면서 움직일 것 같다”면서 “재정이 확대될 때는 시중에 풀리는 유동성을 통화정책으로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다른 시장 관계자도 “연내 2.25%까지는 금리를 내린 이후에는 추가 인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