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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 아닌 '실력'…중국산에 밀려난 삼성·LG [사면초가 가전①]

가성비를 넘어 기술 우위를 앞세운 중국산 TV·가전이 한국 기업을 위협한다. 대륙의 ‘실수’가 아닌 ‘실력’이라는 점에서 더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2024년 글로벌 TV 시장에서 중국산 점유율(출하량 기준)은 사상 처음 한국을 넘어섰다. 중국 TV 브랜드인 TCL·하이센스·샤오미의 합산 점유율은 31.3%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점유율 28.4%를 앞섰다.
일본 파나소닉은 70년 넘게 이어온 TV 사업에서 철수를 검토 중이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 기업에 밀린 데 이어 안방인 자국 시장에선 중국 기업에 자리를 내줬기 때문이다.
업계는 이런 상황이 남일이 아니라고 우려한다. 중국 기업은 최근 가성비 초대형 TV를 내세워 세계 시장을 위협하고 있고 이제 한국 안방 시장까지 침투해 한국 기업의 TV 점유율을 갉아먹고 있다.
글로벌 TV 출하량 2위인 TCL은 한국 시장 진출에 적극이다. 2023년 한국법인 TCL코리아를 설립해 한국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TCL은 온라인 판매를 넘어 롯데하이마트, 전자랜드, 코스트코 등 오프라인 판매로 영역을 확대 중이다.
중국산 TV의 가성비 요인은 ‘하드웨어’에서 나온다. 근래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가 대형 LCD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중화권 기업이 LCD 패널 공급망 대부분을 손에 쥔 것이 결정적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LCD 공급 협상에서 중국 기업 대비 열위한 지위를 가질 수밖에 없다. TV가 커질수록 완제품 생산 원가에서 TCL과 하이센스가 유리한 이유다.
백선필 LG전자 TV상품기획담당은 3월 11일 서울 강서구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신제품 브리핑에서 “중국 기업들이 패널 분야에서 헤게모니를 쥐면서 하드웨어 기술력이 상당히 따라온 상태다”라고 평가했다.

로봇청소기 분야에선 오히려 중국산이 고성능, 고가 제품으로 인식될 만큼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중국 기업 로보락 제품의 경우 ‘로봇청소기의 에르메스’로 불릴 정도다.
로보락에 따르면 로보락의 한국 로봇청소기 시장 점유율은 2024년 하반기 기준 40% 중반대다. 2023년 대비 10%포인트 이상 올랐다. 2024년 한국 매출도 9% 이상 늘었다.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들이 과반을, 나머지를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나눠 가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산 로봇청소기는 먼지 흡입과 물걸레 청소를 동시에 하는 ‘올인원’ 기능으로 국내 시장을 장악했다. 손대지 않고도 유지·보수를 할 수 있어 ‘중국 이모님’이란 별칭을 얻었다. 반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지난해 하반기에야 올인원 제품을 선보인 것이 패착이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로봇청소기 시장 ‘후발주자’임을 인지하고 있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9월 ‘IFA 2024’가 열린 독일 베를린 기자간담회에서 “시간을 놓쳐 후발주자가 됐지만 신제품을 기점으로 지속해서 새로운 라인업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조주완 LG전자 사장도 “우리가 늦었지만 중국 업체와 비교했을 때 동등 이상의 스펙은 가져왔다”며 “경쟁사에 (스펙이) 밀리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