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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처럼 우리도 천지의 기운을 읽자
미디어오늘
복채 없이 우주의 기운을 알아내는 방법이 있긴 한데, 타당성과 신뢰성을 높이려면 여러 기자의 도움이 필요하니 동참을 호소한다. 이 방법으로 나는 딱 한 번 미래를 봤다. 2012년 12월 19일, 대통령 선거일이었다. 결과 예측에 여러 기자가 1만 원씩 걸었다. 자정 넘어 당첨자가 결정됐다. 박근혜 후보의 당선은 물론 2위 후보와 격차를 10만 표 단위로 맞췄다. 기대와 달리 “이참에 돗자리 펴라”며 농을 걸어오는 기자가 없었다. 뉴스룸 분위기를 눈치채고, 마감 이후 새벽의 적막한 술자리에서 조용히 당첨금을 썼다.
그랬어도 나는 정치부 막내 기자 시절의 한을 풀었다. 정치인의 입, 브로커의 입, 심지어 무속인의 입을 쳐다보는 취재가 지긋지긋했다. 다른 정치 기사를 쓰고 싶었다. 정당·국회를 출입하지 않아도, 좋은 정치 기사를 얼마든지 쓸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마침 사회부 사건팀장이 됐다.
후보가 아니라 유권자를 중심에 두고, 아래로부터 위를 향해 선거 의제를 발굴하는 ‘공공(public) 저널리즘’을 해보자고 젊은 기자들을 설득했다. 팀장을 잘못 만난 그들의 고생이 많았다. 여름부터 겨울까지 넉 달에 걸쳐 전국 유권자를 취재하여 ‘대선 만인보’라는 제목으로 9차례 연재했다. 대표적 서민 집단이 모여 사는 곳에 일주일 이상 머물면서 수십 명을 인터뷰하여, 그들의 고충을 ‘차기 정부가 반드시 풀어야 할 의제’로 제시했다(한겨레 연재 :
).
예를 들어, 북한과 인접하여 남북 긴장을 걱정하는 경기 연평도 주민들을 만났고, 고립되어 늙어가는 경북 군위·의성의 노인들을 만났으며, 상가가 밀집한 경남 창원에서 적자를 떠안은 자영업자들을 만났다. 제조업 노동자를 만나려고 서울 구로구 디지털 단지를 취재했고, 빈곤 가정을 살피려고 충남 논산의 지역아동센터를 찾았으며, 농축업의 현실을 보려고 강원도 횡성의 축사에 갔다.

대단한 발상은 아니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전설적 정치 기자 데이비드 브로더의 방법을 빌렸을 뿐이다. 그는 ‘의회가 아니라 현장, 정치인이 아니라 유권자를 중시하는 기사’를 추구했다. 1972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그는 10개 주를 다니며 20대 주부, 70대 전직 택시 기사, 40대 우체국 직원, 60대 전직 농부, 30대 수학 교사 같은 시민 200명을 인터뷰하여 대선 지형을 분석했다.
정보를 추적하는 ‘심문 인터뷰’에 기초한 수사 보도는 부정·부패 고발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부정·부패를 밀어낸 다음의 세상이 어때야 하는지 알지 못하면, 미래는 과거로 돌아갈 뿐이다. 뭇 기자들이 특종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은 오히려 ‘상담 인터뷰’의 적기이기도 하다. 특히 뉴스에 등장하지 못하는 평범한 이들을 만나는 인터뷰가 절실하다. 정치인과 브로커와 법사를 심문하는 만큼의 에너지를 시민과 서민의 심연을 파악하는 일에 쏟아야, 비로소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힘든 세상을 버티느라 그들의 마음은 뾰족한 가시로 덮여 있다. 그들의 시공간에 머물며 찬찬히 가시를 헤집어야, 그들의 속을 살필 수 있다. 그런 인터뷰에 능숙해지면 비로소 알게 된다. 그들 대부분은 미래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수십 년 동안 살아낸 그들은 내일이 오늘과 같을 것임을 알고 있다. 타로 카페를 찾거나 사주를 보는 것조차 그들에겐 사치다. 하물며 법사들에게 미래를 물어볼 여유와 능력이 그들에겐 없다. 그게 민심이다. 민심이 천심인가. 그렇다면, 그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천지신명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게 미래를 보는 기자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