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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여행]진주성 논개 의암, 의암 사적비(晋州 義巖 事蹟碑) 및 의기사(晉州 義妓祠)

논개가 순국한 뒤 의암(義巖)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인조 7년(1629년)에 정대륭이 바위의 벽면에 의암
이라고 새겼다.
- 규모 : 3.65m × 3.3m








진주 의암 사적비(晋州 義巖 事蹟碑)
진주의 사민(士民)들은 명암 정식(明庵 鄭拭:1683∼1746)이 지은 비문으로 경종 2년(1722)에 세웠다. 영조 16년(1740) 병사 남덕하(南德夏:1688∼1742)는 의기정포(義妓旌褒)를 계청하여 의기사를 창건하였고, 「의암사적비」에는 비각을 건립하여 의기논개지문(義妓論介之門)이라는 현판을 게시하였다.
이 비는 아래의 의암(義巖, 경상남도 기념물 제235호)과 마주하고 있어 의기 논개의 순국정신을 한층 더 흠모하게 하고 있다. 이 비의 비문에는 “그 바위 홀로 섰고, 그 여인 우뚝 섰네. 여인은 이 바위가 아닌들 어찌 죽을 곳을 찾았고, 바위는 이 여인이 아닌들 어찌 의로운 소리 들으랴. 남강의 높은 바위, 꽃다운 그 이름 만고에 전해지리”라는 시가 새겨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