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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내리자 우리집이 미술관이 되었다, 가장 우아한 커피도구 '케멕스'
마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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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 커피(coffee)라고 했던가. 코로나로 느닷없이 홈카페에 입문해 어느덧 3년 차에 접어든 에디터. 다이소는 싫지만 말코닉으로 시작하기엔 부담스러운 홈카페 초심자들을 위해 이번 시리즈를 준비했다.

인간은 어느 곳에 있든지 언제나
아름다움을 자신의 생활 속에 지니기를 바란다

러시아 문학작가 막심 고리키가 남긴 말이야. 문제는 일상을 살다보면 아름답기 참 힘들다는거야. 기껏해야 휴대폰 케이스를 바꾸고, 셔츠의 줄무늬 컬러를 바꿔 입는 정도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 마실 때만큼은 아름다움을 가져보자고! 좋은 디자인을 가진 사물을 통해서 말이야. 오늘 소개할 도구는 바로 ‘케멕스(Chemex)'야. 은은하게 둥근 곡선, 투명하게 빛나는 유리로 된 녀석은 곁에 두고 바라만보아도 근사해지는 기분이 들거든. 오늘은 20세기 최고의 디자인으로 꼽히는 커피메이커, 케멕스에 대해 알아보자.
디자이너 없이 만든 디자인?그런데 과학자가 그 어려운 걸 해냈다
(완벽한 커피 한 잔을 위한 노오력이 보이시나요? © Time Inc.)
1941년, 화학자이자 발명가였던 피터 슐럼봄은 자신의 실험실에서 완벽한 커피 한 잔을 위한 도구를 고민하고 있었어. 그가 원하는 건 단 하나였거든. “삶을 단순화할 수 있는가?” 평소에 커피를 마실 때마다 드리퍼, 서버 등 지나치게 많은 도구를 사용하는 게 마음에 안들었거든. 그러다 우연히 실험실에 놓인 유리 깔대기랑 삼각 플라스크를 보게 돼.

그리고 생각했지. ‘저 두 개를 합쳐보면 어떨까?’
(케멕스의 시작은 다분히 이과적이었다)
처음에는 플라스크 위에 유리 깔때기를 놓고, 실험실 용지를 필터 대신 사용해서 커피를 내려봤어. 이게 되네? 그 다음부터는 커피를 내릴 때마다 맛과 시간, 모든 것을 측정하고 테스트했지. 입구의 크기부터 높이, 용량까지 다양한 값을 철저하게 계산했어. 그는 아주 치밀하고 집요한 연구자였거든. 그 결과, 지금처럼 모래시계 모양을 한 케멕스가 탄생한거야.
(뉴욕 미술관에 영구 전시될만큼 클래식한 디자인)
케멕스는 등장과 동시에 디자인적인 면에서 인정을 받아. 형태로 보나, 기능으로 보나 완벽한 제품이라 더 이상 개선할 수 없다는 최고의 찬사를 받았지. 그래서일까? 일리노이 대학에서 선정한 현대 100대 디자인 중 하나로 선정되고, 뉴욕 3대 미술관인 MoMA(모마)에서 영구 전시되는 영예를 안게 돼. 그런데 있잖아, 정말로 아름다운 건 따로 있어.
커피의 기적을 만들어준단 한 줄의 홈
생각해볼까? 원두가루에 물을 부으면, 적당한 속도로 물이 내려오면서 맛있는 커피가 만들어지지. 이때 ‘물의 속도’가 굉장히 중요하거든. 너무 빨리 빠지면 맹물이 되고, 반대로 천천히 나오면 쓴맛이 나니까.
(세로 방향 줄무늬가 기술의 핵심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드리퍼에는 ‘리브(rib)'라는 돌기가 있는거야. (참고로 폭립 스테이크 할 때 그 ‘립’이 맞아. 갈비뼈처럼 생겼다는 뜻이야.) 종이필터랑 드리퍼 사이에 적당히 울퉁불퉁하게 빈틈을 만들어줘서, 사이로 공기가 빠져나가면서 물의 속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하거든. 드리퍼 브랜드의 기술력을 상징하는 핵심요소이기도 해.
(케멕스의 꽃, 두꺼운 에어채널)
반면 케멕스는 외관이 아주 매끈매끈해. 바로 주둥이에 파여있는 길다란 통로, ‘에어채널(air channel)’덕분이야.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게 마법을 만들어주거든. 에어채널의 간격만큼, 필터가 유리에 완전히 달라붙지 않으면서 공기가 잘 통하게 돼. 일종의 숨구멍이랄까? 그래서 물이 고여있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똑똑 떨어지면서 커피가 안정적으로 빠져나오게 되지.

게다가 커피가 다 완성이 되면 에어채널은 액체를 따라내는 입구의 역할도 하게 돼. 하나의 통로가 2가지 역할을 하는 셈이야. 정말 똑소리나게 경제적인 설계지? 덕분에 우리는 드리퍼, 서버를 각각 준비할 필요 없이 ‘케멕스'라는 하나의 도구로도 간단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는거야.
그래서 케멕스, 에디터가 직접 써보니까요…
케멕스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당황하게 돼. 꽃병 같기도 하고, 와인 디켄더처럼 보이기도 하잖아? 도무지 이 녀석의 용도를 예측할 수 없거든. 심지어 커피 만드는 도구란 걸 알고 나서 보아도 문제야. 여기에.. 커피를 부으면 다 쏟아지는 거 아닌가? 싶거든. 처음엔 나도 그랬어.
그런데 필터가 해결해주더라고! 케멕스는 전용 필터가 있어. 이게 가격이 좀 비싼게 단점이긴 한데, 무조건 전용 필터를 써주는 게 좋아. 엄청 단단하거든. 일반 필터에 비해 곡물 성분이 들어가서 훨씬 질기고 단단해. 아무리 물을 많이 부어도 절대 찢어지지 않지. 큼지막한 필터가 그 무게를 다 견뎌주기 때문이야.
종이 필터의 두꺼운 면을 에어채널쪽으로 가게 두고, 린싱을 해줄거야. 안 해줘도 되지만, 해주면 훨씬 좋은 단계지. 혹시 모를 종이의 먼지나 잡내를 빼주기 위해 뜨거운 물로 살짝 씻어주는거야. 린싱을 마치고 아래에 고인 물은 어떡하냐고? 그건 에어채널을 통해서 흘려버리면 돼.
이제 원두를 넣고, 살짝 물을 부어서 뜸을 들여줄게. 건조한 커피를 촉촉하게 해주면서 준비운동을 하는 단계야. 마치 우리가 수영장 들어가기 전에 미리 물을 살짝 묻혀주는 거랑 비슷하달까?
천천히 물을 부어주도록 할게. 케멕스를 사용할 때 물을 붓는 방법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해. 정해진 양을 2~3회씩 끊어서 부어야 한다는 사람, 한 번에 정량을 다 부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지. 솔직히 나는 그 둘의 차이를 잘 모르겠더라고. 적당히 끊어서 부어주었어.
커피가 완성되었어! 맛은 텁텁한 구석 없이 아주 깔끔하더라. 클린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더라고. 원두가 가진 장점을 부담스럽지 않게 정돈해서 보여준달까? 무엇보다도 감성이 달달했어. 괜히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풍요로워진 기분이야. 넉넉하게 내려둔 덕분에, 여러 번 리필해서 마실 수 있어서 좋더라.
미니멀리스트를 위한 단 하나의 케멕스
케멕스는 누구보다 미니멀리스트에게 추천하는 도구야. 어디서 들었는데,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좋은 방법은 처음부터 가장 고급이고 비싼 것을 사면 된다고 하더라? 최상위급을 가지면, 다른 물건들은 성에 차지 않을거래. 완전 공감했어. 케멕스가 그렇거든. 이보다 더 아름답고, 간결한 커피도구가 내 인생에 또 나타날까? 난 쉽지 않을거라고 생각해.

결론은 케멕스를 들이면 누구나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얘기야. 그러니까 딱 케멕스 하나만 더 사면 되겠다,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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