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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으로도 설렌다,평생에 한 번쯤 '홍도'
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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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우리나라 국민은
평생 한 번 가 보고 싶은 섬으로
제주도, 울릉도, 흑산도 그리고 홍도를 꼽았다.
시간이 흐르고 교통이 급격히 편해지면서
다른 곳이야 비교적 쉽게
오갈 수 있게 되었지만,
홍도는 여전히 아득하다.
그래서 더욱 설레는 섬이다.
유람선 선상 위에서 맞는 아침은 신비하고 또 경이롭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여행지

코로나19가 여행의 발목을 잡기 이전, 목포항여객선터미널은 주말마다 시끌벅적했다. 관광버스에서 쏟아져 내린 단체 여행객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떡, 음료, 주류를 담은 박스들을 거침없이 내려놓고는 커다란 웃음과 말소리로 대합실을 점령해 가기 시작했다. 우리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가 그곳에 있었다. 평생 일과 생활에 쫓겨 사느라 여행의 경험을 가져 보지 못했던 그들은 일반 여행객의 눈총 속에서도 꿋꿋하게 설렘을 유지했다.
휴대폰 앱으로 기차와 여객선 티켓을 간편하게 예약 및 결제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들은 그곳을 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시간과 돈이었으니까. 홍도 패키지 관광 상품은 그렇게 구성되었다. 우리가 가성비를 따지고 스폿의 가치를 이야기할 때, 그렇게밖에 떠날 수 없는 단 한 번의 여행도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칠지만 알고 보면 국내 유일이라는 규암자갈 빠돌해수욕장
홍도선착장에 여객선이 도착하면 여행객은 예약 여부에 따라 큰 무리와 작은 무리로 나뉜다. 숙소가 미정임을 어찌 알았는지 “깨끗한 방, 4만원!” 하고 외치며 명함 한 장을 쑥 내밀고 사라지는 민박집 사장의 통찰력에 감탄하는 순간, 13호 해녀포장마차촌 아주머니의 꼬드김이 훅 들어온다. “이따가 꼭 놀러 와, 잘해 줄텡께.”
게으른 여행객도 탐방전망대에서의 인증숏만큼은 놓칠 수 없다
시쳇말로 그렇게 좋다는 홍도는 흑산도에서 서쪽으로 22km 거리에 있는 섬이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으며 섬 전체가 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170호)으로 지정되어 있다.
홍도의 마을은 1구와 2구로 나뉜다. 1구는 여객선이 입출항하는 섬의 관문이다. 숙박시설과 식당들이 골목마다 들어서 있으며 그 사이로 면 출장소, 성당, 우체국, 탐방지원센터 등도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 관광객은 1구에 숙소를 잡고 여정을 시작한다.
탐방전망대는 1구 홍도분교 위편에 있다. 숙소에 여장을 푼 여행객들이 가장 먼저 찾아가서 인증숏을 찍는 곳이다. 마을과 선착장, 몽돌해변 그 뒤편으로 양산봉을 포함한 홍도의 절반이 오롯하게 조망된다. 내로라하는 절경이 한참 남아 있음에도 여행객들은 홍도의 첫인상을 가슴에 담고 진심으로 감탄한다. 섬이라는 특수성에 더해 멀리 떠나왔다는 뿌듯함이 감동 지수를 상승시키기 때문이다.
낮에는 고요하지만 밤이 되면 진면목을 발휘하는 선착장 해녀포장마차촌
서비스로 나온 자연산 홍합의 크기도 어마어마하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해녀포장마차 13호를 찾았다. 허기진 상태에서 안주를 마구 털어 넣었다간 안줏값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나름 머리를 썼다. 선착장에서 ‘잘해 주겠’단 꼬드김에 넘어간 결과이기도 했다. 자연산 전복 한 접시와 의리를 지켜 얻은 홍합탕으로 훌륭한 상차림을 마주했다.

*천연보호구역은 희귀동식물 서식지 또는 번식지를 대상으로 지질 및 지형, 경관 등의 천연자원을 보호할 목적으로 선정된 구역이다. 우리나라에는 독도, 한라산, 우포늪 등 총 11개의 천연보호구역이 있다. 그중 홍도는 각각 200여 종이 넘는 동식물이 서식하는 상록수 분포지로 인정받아 1965년에 최초로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준비를 마치고 여행객을 기다리는 홍도 유람선

홍도 10경과 깃대봉

홍도의 지형은 바다에서 봐야 진면목이 드러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유람선 투어를 홍도 여행의 백미로 꼽는다. ‘남해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홍도의 해안은 기암절벽들의 전시장과 같다. 유람선은 33경의 해안 명소를 지난다.
그중에서도 홍도 10경의 전설은 해설사의 경쾌한 설명을 통해 소개된다. 석문 사이로 고깃배가 지나가면 만선이 된다는 남문바위, 유배를 왔던 선비가 굴속에서 평생 거문고를 타며 세월을 보냈다는 실금리굴 그리고 석화굴, 탑섬, 만물상, 슬픈여, 부부탑, 독립문, 거북바위, 공작새바위 등등. 한시도 귀와 눈을 뗄 수가 없다. 배려심 넘치는 유람선은 스폿을 지날 때마다 멈춰 서서 사진 찍을 시간을 마련해 준다.
깃대봉 탐방로에는 홍도 사람들의 오랜 애환이 서려 있다
홍도는 하나의 거대한 갤러리 같다. 관람하는 데는 두 시간이면 족하다
막걸리를 마시며 다른 이들의 여행에 귀를 기울였다. 신혼여행 후 첫 나들이에 나선 무려 40년 차 부부, 벼르고 별러 온 여고 동창생들의 노년 여행 이야기…. 낮술의 취기에 빌어 이런 여행들이 세상에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배를 타고 온 여행객들과 2년 전 목포항여객선터미널에서 만났던 우리 부모님들의 여행을 응원하며.

Travel Info

여객선 | 목포항여객선터미널 ↔ 홍도선착장 총 2회 운항 (07:50/ 13:00, 2시간 30분 소요, 4만2,000원)

Place

홍도등대
등대문화유산 3호인 홍도등대는 1931년 ‘조선총독부 체신국 홍도등대’란 이름으로 처음 불을 밝혔다. 일제가 물러간 뒤에는 한동안 등대 건설에 동원됐던 마을 주민들에 의해 관리되기도 했다. 내부에서 등탑으로 올라가는 주물 사다리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으며 국립등대박물관에서 주관하는 스탬프투어 15등대 중 하나로 그 위상을 뽐내고 있다.
연인의 길
동백나무, 후박나무, 구실밤나무, 황칠나무 등으로 이뤄진 상록 활엽수 숲길은 깃대봉 탐방로 중 가장 아늑하고 편안한 코스다. 특히 각기 다른 뿌리에서 나와 한몸의 나무가 된 구실잣밤나무 연리지를 지나면 사랑이 이뤄지고 부부 금슬이 더 좋아진단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어쨌든 ‘연인의 길’이라 이름 붙여진 연유는 그렇다.
숯가마터
숯가마터 주변은 참나무 자생지로 숯을 굽기에 알맞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숯가마는 전면에는 아궁이가 뚫려 있고 뒷면에는 굴뚝 기능의 구멍이 나 있다. 홍도에는 총 18기의 숯가마터가 있다. 1940년대까지는 숯을 만들었지만, 그 후론 사용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만든 숯은 식량과 소금을 사는 데 이용됐으며 빗물을 받아 둔 항아리에 넣어 정수의 용도로 쓰기도 했다.
트레킹 (왕복 8.4km, 4시간 30분)
홍도 1구→탐방전망대→깃대봉→2구 →홍도등대
유람선 관광 (20.19km, 2시간 22분 소요, 2만5,000원)
홍도항→도승바위,남문바위→실금리굴→원숭이바위→도담바위→거북바위→만물상→부부탑→석화굴→독립문바위→슬픈여→공작새바위→홍어굴→노적산→홍도항
FOOD
홍도 1구에는 식당이 많다, 그런데도 백반은 평이하고 생선회는 다소 비싼 편이다. 반면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있는 곳은 선착장에 있는 해녀포장마차다. 해녀들이 직접 물질을 해서 잡아 온 자연산 전복, 홍합, 소라, 해삼 등의 해산물을 단품(접시당 3만원 수준)으로 먹을 수 있다. 2구의 민박 밥상은 상대적으로 푸짐하다. 1만원이면 1인 식사가 가능하고, 생선회가 올라오기도 한다.
STAY
신안군청에서 제공하는 숙소 정보에 의하면 홍도에는 1구에 56곳, 2구에 11곳의 숙박시설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운영하는 곳은 그에 다소 못 미친다. 모텔, 여관, 민박이 대부분이고 취사를 할 수 있는 펜션 계열의 숙소는 찾기 어렵다. 2구의 숙소를 예약하면 여객선 도착 시각에 맞춰 선착장으로 배가 마중 나온다.

*김민수 작가의 섬여행기는 대한민국 100개섬을 여행하는 여정입니다. 그의 여행기는 육지와 섬 사이에 그 어떤 다리보다 튼튼하고 자유로운 길을 놓아 줍니다. 인스타그램 avoltath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에디터 곽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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