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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홍안의 용감한 라이프 #12 세컨드 하우스 셀프 인테리어 도전기
리빙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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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차린 식사도 여행지처럼 즐기게 된다.
서울집에서 사용하던 가구와 이케아에서 새로산 가구들로 조화롭게 거실을 채웠다.
최소한으로 꾸몄지만, 꼭 필요한 가구로 채운 집.
서울과 강릉을 오가며 살아보자는 여유로운 마음가짐은 있었지만 여윳돈은 없었던 형편이기도 했다. 다행히 지은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23평짜리 낡은 아파트를 찾았다. 법랑으로 된 연식 있는 하얀색 가스레인지가 여전히 ‘하얀색’을 띠고, 주방의 후드도 베란다의 김치냉장고도 화장실의 타일도 오래되었지만 정갈하게 잘 쓴 흔적이 남아 있는 집이었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도 물론 있었다. 체리색 몰딩과 중국집을 연상케 하는 빨간색 실크벽지, 콩기름을 먹인 반질반질한 노란 장판, 그리고 옛날 스타일의 반짝거리는 화장실 타일이 그랬다. 그래도 키를 받자마자 텅 빈 집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집을 구하는 것에만 온 신경을 쏟아서 그랬을까. 가을이 끝날 때까지 집을 방치했다. 집을 고칠 돈이 없었다. 가구 살 돈도 없었다. 가끔은 와봐야 할 것 같아 캠핑할 때 쓰던 침낭과 매트, 코펠과 버너 등을 가져가서 임시로 지냈다. 침낭에서 잠을 청하니 아이가 몹시 즐거워했다. 몸을 기댈 수 있는 조립식 캠핑 의자를 하나 놓아두니 캠핑이라면 질색하던 남편도 만족스러워했다.집은 있되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이어가던 중 ‘어쩌다 보니’ 500만원이 생겼다. 이 집을 구하기 직전 다른 집을 계약했었다. 그런데 그 집주인이 정식 계약 전날 변심을 하는 바람에 부동산 계약을 파기한 위약금 조로 우리에게 500만원을 변상하게 된 것이다. 계약이 파기된 날 “아니 어쩌다가 우리에게 이런 일이!” 하며 발을 동동 굴렀는데, 어쩌다 보니 새집도 구하고 500만원도 생겨버렸다. 동시에 조바심도 들었다. 내친김에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인테리어 공사 가게에 들렀다. 올 리모델링은 2000만원 정도 든다고 했다. 물론 비싸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서울 집은 이미 몇 배나 더 들여 올 리모델링 공사를 마친 뒤였기 때문이다.아침마다 침낭에서 일어나 1회용 드립백에 커피를 내리며 생각했다. 우리의 두 번째 집은 인테리어 잡지에 나올 법한 자랑스러운 집이 아니라 언제든 와도 편한 집이 되어야 맞다고 말이다. 나는 당장 강릉의 옛 지명인 ‘하슬라’를 따서 ‘하슬라이프(@haseullife)’라는 SNS 계정을 만들었다. 빨간색 벽지와 반짝이는 화장실 타일들을 찍어 적나라하게 올리곤 ‘500만원으로 집 고치기’라는 부제를 달아놓았다. 내 목표는 근사한 집이 아니라 차선 중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방향을 정해놓으니 마음이 한결 가뿐해졌다. 나는 전 주인이 썼던 거의 모든 것을 그대로 쓰면서 눈에 거슬리는 몇 개만 조금씩 고치기로 했다. 체리색 몰딩은 시트지 기술자를 불러서 아이보리 컬러로 바꾸었고, 새빨간 벽지는 동네 지물포점에서 최저가 합지로 도배만 깨끗하게 해주었다.솜씨 좋은 지인 부부의 도움으로 주방의 가스레인지와 후드는 살리되, 싱크대는 나무 문짝과 상판만 바꿨고, 베란다는 틈날 때마다 흰색 페인트를 칠했다. 버릴까 싶었던 창문의 버티컬도 락스 물에 담갔다가 닦으니 햇빛을 막기엔 괜찮아 보여서 놔두었다. 갈 때마다 야금야금 일을 하려니 진척이 늦다. 벌써 세 번의 계절이 지났고 500만원으로 집 고치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난 주말에도 강릉에 다녀왔다. 이케아에서 산 조립용 나무 데크를 베란다에 깔아두었더니 맥주 마시기 편한 공간이 완성됐다. 베란다 전체를 데크로 깔거나 무리하게 공사를 할 수도 있지만 그래봤자 얻는 것은 몸살일 뿐이다. 때론 하슬라이프 계정에 근사하게 리모델링한 집 사진을 올리고 싶은 욕망이 들 때도 있다. 그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강릉에서 즐겁게 지내려고 왔지, 인테리어를 하려고 온 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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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심효진 기자
글·사진 이홍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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