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금쪽같은 용돈을 스타크래프트 한판 하기 위해 PC방에 헌납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다. 스타크래프트라는 우리나라 대표 민속놀이가 출시된 지도 어언 20년이 다 되어가고 나는 어느덧 아조씨가 돼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7월 30일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열린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버전 런칭 행사 <GG투게더>는 뜻깊은 행사였다. 자주 이야기할 기회는 없었지만 스타크래프트는 나에게 있어 매우 특별한 게임이고, 어릴 적부터 붙임성 없던 내가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도록 도와준 녀석이기도 하다.
여전히 멋진 임요환 선수
오랜만에 만난 형님들 같았다
이분들도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을 듯
7월 30일 오후 3시, 내가 기억하고 있는 레전드급 스타크래프트 선수들과 만나볼 수 있어 영광이었다. 물론 지금은 각자 다른 일을 하고 계신 분들이지만 아직까지 나에겐 선수라는 말이 더 익숙하다. 실물은 처음 봤지만 어쩐지 오랜만에 만난 형님들처럼 반갑게 느껴졌다.

간담회 자리에선 '나에게 스타크래프트는 무엇인가', '리마스터 버전 플레이한 소감이 어떠한가' 등의 질문이 나왔다. 정말 간단한 질문이었는데도 모두 다 꼭꼭 숨겨놨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듯이 오랫동안 대답을 해주셨다. 시간과 소주만 있었다면 이대로 밤을 새버릴 것만 같은 기세였다.
부사장의 하트로 리마스터링~!
이어서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개발진들도 만나보았다. 피트 스틸웰 클래식게임팀 선임 프로듀서, 로버트 브라이든벡커 기술 전략 및 기획 부문 부사장, 그랜트 데이비스 클래식게임팀 선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참석했는데 특히 부사장 님이 상당히 유쾌한 분 같았다. 나를 향해 손가락 하트를 뿅 날려주시는 바람에 렌즈 초점이 흔들리고 말았다.
"한쿡의 픠싀방 너무 부러워요"
로버트 부사장은 'PC방'이라는 말을 특히 강조했다. 특유의 영어식 발음으로 픠싀방 픠싀방 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PC방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문화'라며 극찬했고, '그래서 한국에서만 독점적으로 PC방에서 얼리억세스를 하게 해주면 어떨까'는 생각에 도달했다고 한다. 내심 한국의 PC방 문화를 몹시 부러워하시는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미 다 알고 계시겠지만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버전은 오직 우리나라 블리자드 가맹 PC방에서만 미리 플레이할 수 있다. 오락실처럼 1등을 하면 해당 PC방에 내 닉네임이 랭크되거나 초상화를 빠르게 언락할 수 있는 식으로 재밌는 혜택들이 많다고 한다. 친구들과 다시 한번 뭉치기에 좋은 기회다.
저 큐브는 무엇인고 하니
경기 중 선수들의 모습을 비춰줬다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개발진상당수가 참석
경기~~~~~시작~~~~~하겠습니다~~~~~!
오후 8시, 가볍게 저녁을 먹고 본 행사에 참석했다. 세트장과 조명, 좌석들을 싹 둘러보니 상당히 많은 신경을 썼다는 부분을 알 수 있었다. 블리자드가 이번 행사를 얼마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느껴졌는데 실제로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관련 개발자분들이 대부분 이 자리에 참석했다고 한다.

이날 레전드 매치는 원래 국기봉 VS 기욤패트리, 박정석 VS 이윤열, 임요환 VS 홍진호로 총 3경기가 예정돼있었지만 나중에 이영호, 이제동, 김택용 같은 현역급들이 추가되면서 기대감을 더해줬다. 그래도 역시 나는 임요환과 홍진호의 승부가 가장 기대됐다.
스테이지에서 보니 새삼 또 감격
"임요환 선수가 벙커링하면 어떡하죠? ㅎㅎ" "..."
"뭐라구요? 잘 안들려요 홍진호 홍진호 선수" "..."
"어떤 전략이라도 다 막아낼 수 있습니다" "ㅎㅎ허허헣"
이날의 최고 인기스타는 역시 홍진호 홍진호. 전용준 캐스터도 '임요환 선수가 벙커링하면 어떡하죠?'하고 놀렸고 이에 울상이 된 홍진호의 표정이 익살스러웠다. 그러더니 이 악물고 '어떤 전략이더라도 다 막아낼 수 있다'라고 대답하시더라. 결과가 궁금하신 분은 포스트 하단의 영상을 시청해보시면 좋겠다.
조경물의 표현이 섬세해졌고 APM/자원/인구수를 확인할 수 있다
각 선수들이 맵 어디를 보는지 확인할 수 있다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버전에서 그래픽과 더불어 크게 바뀐 점은 관전자(옵저버) 모드다. 프로 리그를 어느 정도 감안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당 부분이 진화했다.

가령 위에 보이는 미니맵에 3가지 색깔의 미니박스가 보이는데, 이는 옵저버뿐만 아니라 양측 선수들이 맵 어느 쪽을 보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줌아웃으로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기 용이해졌다
뿐만 아니라 줌인 줌아웃 기능을 통해 전체적인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각 선수가 인구수 200 가까이 채워 한타 싸움을 벌이게 되면 한 화면에 모두 담아내지 못 한다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줌아웃을 하면 그 모습을 전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가운데 박스 부분이 뻥 뚫려 더 넓은 시야가 확보되었으며 각 선수들의 APM, 자원과 인구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간담회에서 대부분 선수들이 이 옵저버 모드를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어차피 집에 가도 잠 못자..' 새벽 1시까지 자리를 지키는 관중들
경기는 월요일 새벽 1시까지 진행됐지만 상당히 많은 분들이 자리를 지키며 선수들을 응원했다. 어차피 이대로 집에 가도 잠이 잘 오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싶다. 승부 결과도 궁금하고 말이다.

사실 나는 승패 여부보단 프로 리그를 열심히 챙겨보던 옛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임요환 VS 홍진호는 기대했던 대로 재미있는(?) 승부였고 해설진들도 흥분한 듯 아무말대잔치를 하는 모습이 너무 흥겨웠다. 이영호 선수는 거의 뭐 현역이라도 봐도 될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을 뽐내면서 보는 즐거움을 더해줬다.
결과는 아쉬웠지만 최선을 다 해준 이제동 선수
압도적인 실력을 뽐낸 이영호 선수
7월 30일 오후 11시 30분부터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를 PC방에서 플레이할 수 있다
5시간가량 쉬지 않고 진행된 행사였지만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가버린 느낌이었다. 내가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만큼이나 리마스터 런칭 행사도 뜻깊게 다가온 것 같다.

각 중계 플랫폼마다 수만 명의 시청자들이 경기를 지켜봤고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관련 검색어가 네이버 실검 순위를 장악했으니 우리나라의 많은 유저분들도 나와 같은 심정이 아니셨을까? 전설이 다시 시작될 조짐일지 내심 기대해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