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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주열의 '靑.春일기'] 춘추관 생활을 시작하며
더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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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청와대 춘추관 2층 브리핑룸에서 2021년 신년 기자회견을 개최한 가운데 기자들이 질문권을 얻기 위해 손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 /청와대 제공
[더팩트ㅣ청와대=허주열 기자] 사내 출입처 조정으로 새해부터 청와대로 근무처를 옮기게 됐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한 번쯤은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기에 새로운 업무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컸다. 우리나라 모든 기관의 정점인 청와대 내부와 거기서 이뤄지는 일들을 취재할 수 있게 됐다는 기대감에 들뜬 마음으로 지난 5일 처음으로 춘추관을 찾았다.

'깐깐하다.' 첫인상이었다. 전날 회사 사무실에서 준비한 출입기자등록 신청 서류를 들고 집에서 1시간 30분가량 걸려 첫 출근을 했지만, 입구에서 서류만 건네고 돌아와야 했다. 신원조회를 거쳐 정식 출입증이 나오기 전에도 방문증을 끊고 들어갈 수 있다고 들었는데, 사무실을 간 게 문제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코로나19 때문에 그런다면서, 집 외에 다른 곳을 간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서류 준비를 위해 전날 회사에 갔었다"고 답하니 "그러면 3일 정도 재택근무를 하다 왔으면 좋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좋겠다'는 표현이었지만, '그렇게 하라'는 뜻으로 읽혔다. 그렇게 3일간의 재택근무 후 본격적인 춘추관 생활이 시작됐다.

두 번째로 든 생각은 '폐쇄적이다'였다. 기자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춘추관뿐이었다. 참여정부의 취재 선진화 조처 이후 기자들의 청와대 경내 출입이 차단됐다고 한다. 근처에 대통령이 머물고 있지만, 실제로 볼 수 있는 날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취재와 보도에서의 제한도 많았다. 이전에 출입했던 국회는 취재할 대상도 많고, 의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거나 정적(政敵)에 대한 잘잘못을 평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당연히 보도 제한도 거의 없다.

하지만 청와대는 소위 안 되는 게 많다. 대통령 일정과 행보는 대변인 또는 홍보수석이 춘추관으로 와서 하는 브리핑이나 서면 브리핑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데, 이마저도 엠바고(보도유예)가 걸린 게 많았다. 아예 '비보도'를 전제로 이야기를 해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청와대 누리집에 공개된 문 대통령 일정. 해당 일정에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일부만 공개된다. /청와대 누리집 갈무리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른바 '세월호 7시간'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자, 대통령의 24시간 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실제로 공개되는 것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 비서실 업무보고 등 제한된 선에서 정보가 제공된다. 해당 일정에서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일부만 공개된다. 정책과 인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누구의 의견을 들었고, 어떻게 결정을 내려졌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모든 정보가 모이고,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곳이어서 그런지 청와대 관계자들은 말도 매우 아끼는 분위기다. 심지어 전화나 문자 연락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 유력 방송사 선배 기자는 "10년 이상 기자생활을 했는데, 이곳처럼 취재원(청와대 관계자)이 전화를 안 받고,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는 경우는 처음"이라며 "정무적인 내용이 아닌 정책과 관련한 취재를 하려고 해도 응답이 없어 답답하다"고 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단 단톡방에는 기자들을 상대하는 청와대 관계자들을 포함해 300명 이상의 기자들이 들어가 있다. 이들이 모두 같은 정보를 공유받고, 그것을 토대로 청와대 기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일부 유력 매체나 강력한 맨파워가 있는 기자들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정말 일부일 것이라는 게 청와대를 수년간 출입한 복수 기자들의 전언이다. 아직 3주밖에 안 됐지만, 그 기간 '아 이건 대체 청와대 관계자 누구에게 들은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기사도 없었다.

이 가운데 지난 18일 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번이 다섯 번째 기자회견이었다. 출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통령에게 궁금한 것을 직접 질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마련됐고, 온·오프라인으로 참여한 120명의 기자 중 한 명에도 포함됐다. 들뜬 마음으로 기자회견 주제에 맞춰 '방역·사회', '정치·경제', '외교·안보' 관련 질문을 총 11개 준비하고, 기자회견 전까지 해당 질문들을 수십차례 소리 내어 읽으면서 나름 철저하게 준비했다.

기자회견이 시작된 후에는 번호가 적힌 손팻말을 계속 들면서 질문 기회를 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24명의 질문자 중 한 명에 포함되지 못했다. 질문 기회를 부여받은 한 기자는 "개인적으로 3전 4기 끝에 질문할 기회를 얻게 됐는데요, 그 점 감회가 굉장히 새롭다"고 말문을 열었는데 충분히 이해가 됐다. 또 질문을 한 여러 기자가 시간 관계상 나뉜 주제와 무관한 질문을 하는 것도 '그럴 만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춘추관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현재까지 경험한 것들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시간 동안 춘추관 기자로서의 일을 하면서 알게 되는 새로운 것들이 있다면 꼼꼼히 기록해 나갈 것이다. 제한된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더 궁리하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첫 번째 청춘일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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