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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식도시'의 시작, 4월 어느 날의 여수
트래비
3
지난 4월, 봄이 한창일 때 여수에서.
플래시백
어떻게 된 거냐면
그 맛있는 걸 왜 안 먹는데 하고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인데, 굳이 변명을 해보자면 이렇다. ‘남들 다 먹는 걸 우리까지 먹을 필요가 있냐’ 하는 알량한 자존심 두 큰술, ‘이미 다 먹어 봤던 음식들이지’ 하는 그럴듯한 이유 두 큰술, 줄 서기 싫다는(요즘 웬만큼 알려진 식당들은 다 줄 서니깐) 귀차니즘 두 큰술,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안 먹어 봤던 거 먹어야지! 세상에 먹을 게 얼마나 많은데 먹었던 걸 또 먹냐?’ 하는 호기심 두 큰술.
빌어먹을 코로나(더 심한 욕을 해 주고 싶지만 <트래비> 지면의 품격 때문에 참는다)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우리(박찬일 셰프, 레이먼 김 셰프, 최갑수 작가)의 출장을 빙자한 여행은 금지되어 버렸고, 어디론가 가지 못하면(사실은 어디론가 가서 뭐라도 먹지 못하면) 병이 나는 우리는 어느 날 충무로 인현시장의 허름한 막걸리집에 모여 고등어구이를 앞에 두고 투덜거렸으니.
박: 어디라도 가자, 이러다 죽겠다.
레: 안 가도 죽어요.
최: 마스크 잘 쓰고 다니면 되지 않을까.
레: 네. 그러면 될 거 같아요.
박: 어디 갈까?
최: 여수나 가시죠. 봄인데. 동백도 필 테고.
레: 그거 못 먹잖아요.
최: 동백은 못 먹지. 그래도 여수엔 장어도 있고 금풍생이도 있고…, 회도 있을 테고.
박: 그런 거 안 먹어.
최: 다른 거 뭐라도 먹을 게 있겠죠, 그래도 여순데.
레: 네. 그래도 여순데. KTX도 다녀요. 금방 가요.
박: 어, 그래? 그럼 내일 가자.
그렇게 시작된 거다.
요리사와 요리사와 여행작가
나른했다. 여수엑스포역에 내렸는데 봄 햇살이 환했다. 4월이었고 봄이 한창이었을 때다. 그나마 코로나가 잠잠할 때다. 그래도 우리는 마스크를 내리지 않고 걸었다. 중년의 남자 셋은 역을 나와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이 도시엔 어떤 먹을 게 있나’ 하며 도시를 탐색했다.
레이먼 김 세프는 “찬일형은 요리보다 글이 나아요”라고 한 적도 있다(미안하다 레이먼아). 레이먼 김도 셰프다. 덩치가 크고 고기를 잘 다룬다. 보기와 달리 요리를 잘하고 생긴 것과는 달리 순하고 부끄럼을 많이 탄다. 형님들에게 깍듯하고 예의가 바르다. 가끔 김조한으로 오해를 받는다. 같이 막걸리를 마시고 있으면 “와, 김조한이다”라고 옆자리 손님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여행작가다. 20년 동안 여행작가로 살았지만, 많은 곳을 가 보진 못했다.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다. 음식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가자미회를 홍어회라고 했다가 욕먹은 적이 있다. 가끔, 자주 가끔,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구분하지 못한다. 일명 ‘저주받은 미각’이다.
어쨌든, 요리사와 요리사와 여행작가가 걸어가는 4월의 여수 거리에서 레이먼 김 셰프가 말했다. “뭐부터 먹을까요?”, “짜장면에 빼갈!” 박찬일이 대답했다. 4월의 여수 거리는 따뜻했고 햇살에 눈이 부셨지만, 요리사와 요리사와 여행작가는 무엇보다 배가 고팠다.
요리사와 요리사와 여행작가. 참 좋은 직업이다. 평일 낮에 먹을 걸 고민하는 직업이라니.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라면 버스정류장에서 다가오는 버스를 향해 타지 않는다는 신호를 온몸으로 보내는 경기도민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몸짓으로 거부감을 표시하고 싶다. 회사원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잔뜩 있으니까.
요리사와 요리사와 여행작가는 하기 싫으면 (다는 아니고 몇 개) 안 해도 되니까. 그러니까 요리사와 요리사와 여행작가가 된 건 필연이다. 그것밖에 길이 없었던 것이다. 그날 여수 하늘은 더 이상 파란색이 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파란색이었다.
그냥 맛있는 음식이나 먹으면 되는 거지,
낮술이나 마시면 더 좋고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요?” 가게 안으로 들어가 주인 아주머니께 물었다. “일단 주문부터 하세요.” “짜장면 하나, 국밥 하나, 볶음밥 하나요, 술도 마실 수 있나요?” 아주머니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따, 다들 밥 먹기 바쁜 시간에 웬 술이여. 그럼 5만원어치 먹어!” “네. 더 먹을 수도 있어요.” 주문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기다렸다.
요리사 한 명은 짝다리를 짚은 채 줄 서서 먹는다고 투덜댔고, 또 다른 요리사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내미랑 영상통화를 했다. 여행작가는 우리가 들어가려면 몇 명이 남았는지 고개를 까닥이며 머릿속으로 헤아렸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20분쯤 기다렸을까, “짜장 하나 국밥 하나 볶음밥 하나 빼갈 들어와요!” 아, 여긴 번호표 같은 게 없구나.
자리에 앉자 단무지와 양파가 담긴 접시가 나왔다. “아주머니, 여기 고량주 하나 주세요. 대짜로요.” 아주머니가 초록색 고량주 병을 가져왔다. 북경 특급 고량주! 5,500원! 우리는 잔에 술을 가득 따라 마셨다. 오후 12시50분. 바깥의 하늘은 더 이상 파란색이 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파란색이겠지.
짜장면의 면은 소다를 많이 넣지 않아 하얀색을 많이 띄고 있었다. 근래에 보기 힘든 스타일의 면이었다. 요즘 짜장면에는 배달 중에 불지 말라고 소다를 잔뜩 넣는다. 그래서 면이 노란색을 띤다.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다는 사람은 이 소다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양 사람들은 하루 종일 빵과 파스타를 먹지만 속이 더부룩하다고 하지 않는다.
뭐, 아무튼 짜장면 속의 양파에서는 단맛이 충분하게 올라왔다. 캐러멜 맛은 진하지 않았다. 양배추가 잔뜩 들어간 짬뽕에서는 ‘옛날 맛’이 났다. 적당히 매웠고 묵직했다. 볶음밥은 고슬고슬했다. 밥알에 계란 코팅이 잘 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것들을 안주 삼아 고량주 잔을 빠르게 비웠다. 옆 테이블의 남녀가 흘깃흘깃 우리 테이블을 훔쳐보았다. 네, 김조한 맞습니다, 맞고요. 레이먼 김 셰프가 계산대 앞에 있는 아주머니를 향해 말했다. “아줌마 고량주 한 병만 더 주세요.”
“잠깐만, 이 고량주가 이상하다.” 내가 말했다. 박찬일 셰프와 레이먼 셰프가 나를 바라보았다. “2011년 4월 8일이네요. 오늘이 4월 15일이니 지금으로부터 딱 9년 일주일 전에 고량주 250ml가 이 병 속으로 들어갔네요.” 레이먼 셰프가 병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고량주 병에 지니가 들어 있을 수도. 잠자는 알코올의 요정을 우리가 깨운 걸 수도.” “닥치고 술이나 마셔.” 박찬일 셰프가 말했다. “9년 동안 이 집에선 고량주를 시켜 먹은 사람이 없었구나.”
고량주 3병을 더 비우고 은혜반점을 나왔다. 각 1병씩. 은혜반점에서 술을 마시다가 주인이 얼마 전 바뀌었다는 걸 알게 됐다. 간판은 그대로인데 다른 사람이 은혜반점을 인수해 운영하는 것이다. “좀 걷자, 소화라도 시킬 겸.” 박찬일 셰프가 앞장서 걸었다.
약 500m를 걷는데 약국이 나왔고 우리는 그 약국으로 들어가 각자 소화제 2알과 드링크를 사서 마셨다. 술을 마셔서인지 나는 입고 있던 후드 셔츠를 벗고 반팔 셔츠 차림으로 걸었다. 코로나가 지나가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겠지. 세상의 모든 식당들은 옛날처럼 붐빌 테고 우리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 보며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며 맘 놓고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겠지. 비행기를 타고 바다 건너 나라로 가서는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을 수 있을 거야. 아 물론 그때도 취재지, 놀러 가는 게 아니라고. 코로나가 곧 물러가면 말이야,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와 있을 거야. 길 끝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은혜반점주소: 전남 여수시 공화북2길 21-2영업시간: 화~일요일 11:00~19:00,월요일 휴무전화: 061 662 7189가격: 자장면 5,000원, 간짜장 7,500원, 볶음밥 7,500원, 국밥 7,500원, 탕수육 2만2,000원
여수에는 백반집이 많다. 부산이 만두의 도시라면 여수는 백반의 도시다. 여수의 많고 많은 백반집 중에 인터넷에서는 ‘로타리식당’이 가장 유명하다. 8시에 문을 여는데, 문을 열기 전부터 줄을 선다고 한다. 우린 8시부터 줄을 서기도 싫을 뿐더러 그 시간에 일어나지도 못한다. 로타리식당 말고도 자봉식당이며 진남식당, 통일식당, 여수식당, 오뚜기식당 등이 있고 봉산동 게장 골목에도 게장백반을 내는 집들이 늘어서 있다. 아무 곳에나 들어가도 6,000~8,000원 사이인 백반값이 아깝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 집이나 들어갔냐면 그건 또 아니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덕충식당’이라는 곳이다. 소화나 좀 시키자고 걷다가 우연히 그 앞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야, 이 집 맛있을 거 같다!”라며 박찬일 셰프가 문을 열고 불쑥 들어갔다.
“선어회 큰 걸로다가 한 접시 썰어 주세요.” 박찬일 셰프가 수저통을 열며 말했다. 단골집에서는 단골손님한테 주문을 맡기는 게 제일이다. 여수에서는 활어회를 잘 먹지 않는다. 현지인들은 선어로 먹는다. 새벽에 들어온 생선을 받아다 적당히 숙성시켜 그날 밤에 판다. 병어, 민어, 삼치가 그득하게 올라간 회 접시가 나왔다. 역시 병어는 여수에서 먹어야 한다. 시루떡처럼 무른 살에 이가 깊숙하게 박히는 느낌이 좋다. 삼치도 기름지다. 꼭 겨울이 아니어도 지금도 맛있다.
데친 꼬막, 찐감자, 삶은 달걀, 갈치속젓, 돌게찜, 갓김치, 열무김치 등도 회 접시 옆에 가득 깔렸다. “아니 이런 걸 많이 주면 누가 안주를 시켜 먹어요?” 레이먼 김 셰프가 물었다. “장사도 장사지만 그래도 속이 든든해야 술을 많이 마셔도 속을 안 버리지.” 아주머니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근데, 테레비에서 많이 봤는데, 에이먼인가 레이먼인가 하는 요리사 아닌게벼?” “네, 맞습니다.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이먼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우리는 쉴 새 없이 술잔을 채웠고 젓가락을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역시 여수에 온 보람이 있군. “딱 잘라 말해서 여수에 와서 41번 포차에 오지 않으면 여수에 온 의미가 없다.” 얼큰하게 술에 취한 박찬일 셰프가 이렇게 말했던 것만 희미하게 기억한다.
다음날, 느지막이 일어난 우리는 ‘자봉식당’에서 백반으로 해장을 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열차를 탔다. 음, 그런데 말이다. 생각해 보니 우린 여수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한 거 같다. 여수 밤바다도, 오동도 동백도, 향일암도 아무것도. 거문도에도 가질 못했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어느 책에서 이런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열심히 여행을 한다고 당나귀가 말이 되는 건 아니다. 박찬일 셰프에게 물었다. “형, 여행을 열심히 한다고 요리사가 더 좋은 요리사가 될까, 여행작가가 더 좋은 여행작가가 될까?” 박찬일 셰프가 답했다. “더 좋은 여행작가가 되겠지, 임마. 그걸 말이라고 하냐?”
아무튼 탐식도시는 이렇게 시작된 일이다.
41번 포차주소: 전남 여수시 봉산남3길 17영업시간: 매일 16:00~03:00, 일요일 휴무전화: 061 642 8820가격: 해물삼합 5만원, 양념삼합 4만원, 삼치 5만원홈페이지: 41pocha.modoo.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