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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 복귀 무산’이 K리그에 던진 질문
스포츠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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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 인천 유나이티드 명예감독이 지난 21일 인천축구전용구장에서 열린 2020 하나원큐 K리그1 8라운드 부산 아이파크전을 이천수 인천 전력강화실장과 함께 지켜보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꼴찌로 전락한 인천 유나이티드는 지난 29일 췌장암으로 투병 중인 유상철 명예 감독의 재선임과 관련해 K리그에 새로운 고민을 안겼다.

인천은 당일 주치의의 의견에 따라 유 감독의 선임을 철회했다. 하지만 완치 판정을 받은 뒤에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마당에 항암 치료 중인 지도자가 하마평에 오르고, 지휘봉을 잡더라도 마땅히 말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는 사실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K리그에 여전히 안전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자연스레 축구계에선 감독이 부임하기 전 건강 상태에 따라 일종의 거름망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나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다. K리그 구단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사실 감독의 건강을 놓고 지휘봉을 맡기거나 뺏는 경계선을 정하기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면서도 “누군가 큰 사고가 나기 전에 한 번 고민할 문제는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사실 K리그는 3년 전 전도유망한 지도자를 갑작스러운 사고로 잃은 기억이 선명하다. 고(故) 조진호 부산 아이파크 감독이 2부리그에서 승격을 눈앞에 두고 출근길에 심장마비로 쓰러지면서 세상을 떠났다. 당시 조 감독의 나이는 44살에 불과했다.

큰 충격을 받은 K리그는 뒤늦게 지도자들의 건강 보호에 힘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지도자들이 매년 건강검진을 받는 규정(선수규정 5조 1항 5호)을 만든 것이 대표적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모든 지도자는 프로축구연맹에 등록할 때 연맹 의무위원회가 정한 ‘K리그 메디컬 체크 리스트’에 따른 검강검진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 개인 사업자로 간주돼 건강검진의 대상이 아니었던 지도자들도 정기적으로 관리를 받게 됐다.

새 규정은 올해 눈에 띄는 효과를 냈다. 수도권 구단과 지방 구단의 감독 2명이 올해 초 진행한 건강검진에서 이상이 발견됐다. 두 감독 모두 가벼운 수술을 받은 뒤 벤치로 복귀할 수 있었다.

다만 지도자들이 복귀할 때 몸 상태에 대해 자의적으로 평가를 내리는 게 아니라 의무위원회에서 복귀 허가를 받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프로축구연맹은 “감독에게 건강을 이유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규정은 없고, 그 규정을 마련할 근거도 찾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유 감독의 사례는 모든 걸 한 번 고민할 계기는 됐다고 본다. 일단 지도자들의 건강검진 빈도부터 늘리는 것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K리그 감독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명예를 얻기에 지도자에게 선망의 자리이지만, 거꾸로 그 이상의 책임과 부담감을 요구한다. 결과에 책임을 지고 성적에 신경을 쓰다보면 멀쩡한 지도자들이 쓰러지는 일도 자주 벌어진다. 스포츠인이라 건강할 것이라는 선입견도 이제 버려야 한다. 원광대 보건복지학부가 2011년 발표한 10년간 직업별 평균 수명 조사에서 스포츠인은 11개 직업군 가운데 10위(평균 69세)로 바닥권에 머물렀다. 유 감독의 사례가 K리그 지도자들의 소중한 생명에 조금 더 신경을 쓸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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