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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인터뷰] 진성, 혈액암 투병 당시 “마취없이 생살 째 암수술…복귀의지로 버텨”
스포츠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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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인터뷰] 진성, 혈액암 투병 당시 “마취없이 생살 째 암수술…복귀의지로 버텨”
지난 22일 방송된 KBS 2TV ‘신상출시 편스토랑’(이하 ‘편스토랑’)에 출연한 진성이 “암 이겨낸 비법”이라는 건강 밥상을 공개해 최고 시청률 7.3%를 기록했다.

이날 방송은 ‘면역력 밥상’을 주제로 꾸며진 가운데 트로트 가수 진성이 깜짝 편셰프로 합류해 건강 밥상 비법을 공개했다.

이날 진성은 과거 림프종 혈액암과 심장판막증을 진단 받고 오랜 세월 투병 생활을 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한 달 만에 체중이 20kg나 줄고 걷기도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당시 진성은 스포츠경향과의 인터뷰를 통해 수술 당시의 생생한 모습을 복기해 감동을 던지기도 했다.

[아래는 2017년 2월10일 스포츠경향과 진성의 인터뷰 전문이다.]
[과거 인터뷰] 진성, 혈액암 투병 당시 “마취없이 생살 째 암수술…복귀의지로 버텨”
‘안동역에서’ 출발한 트로트 가수 진성의 급행열차가 임시 정차 중이다.

지난해 12월 19일 KBS 1TV ‘가요대상’ 이후, 밤 10시 진성의 나홀로 암투병은 시작됐다.

진성은 20일 기자에게 “지난해 10월 중순, 좌측 후두 옆에 혹이 생겼다. 걱정이 돼 종합병원에서 검진을 받았지만 종양이 아니라 낭종이란 진단을 받았다. 암이 아니라는 말에 안심했다”고 말했다. 액땜을 했다는 생각도 잠시였다. 1~2주에 걸쳐 그 혹이 커지기 시작했다. 진성은 “불안해서 다시 조직검사를 받았다. 여전히 암이 아니라고 했다. 아예 수술적 방법으로 혹의 조직을 크게 떼어 내 조사를 했다”며 “결과는 천청벽력과도 같았다. 암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심장병 때문에 마취없이 암수술”

암 앞에 다행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백번 양보해 그나마 다행이었다. 진성을 주저 앉힌 암은 ‘림프종 혈액암’이었다. 진성은 “다발성 혈액암은 위험한데, 내게 발병한 암은 목 쪽 한군데에만 두드러졌다. 고맙게도 전이가 안됐다”며 천우신조의 행운에 감사해 했다.

가수는 12월은 어느 때보다 바쁜 스케줄로 정신없이 뛰어야 하는 시기였다. 멀쩡한 몸도 무리가 가는 판에, 암에 침탈 당한 몸은 무너지기 십상이다. 지난해 연말, 진성은 그렇게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갔다. 그는 “그 와중에 심장병이 도져 3일간 중환자실 신세를 졌다”며, 그렇게 위기를 하나씩 돌파해 나갔다.

진단명이 확정이 됐으니, 12월 말 곧바로 수술을 해야 했다. 그런데 또 큰 산이 앞을 막아섰다. 심장병으로 인해 수술시 마취를 할 수 없단다. 그는 “심장병으로 인해 마취를 하면 심장이 막힐 수 있어 마취없이 수술에 임했다. 죽음을 앞에 놓다보니 생살을 째는 수술을 그냥 했다”며 “병이 빨리 나아 가수로 복귀하고 싶은 욕심이 컸던지 그 수술을 버텼다”고 밝혔다. 이어 “수술은 어찌어찌 버텼는 데, 골수채취를 마취없이 하려니 정말 죽겠더라”고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여전히 마취없이 몸에 호수를 꽂고, 수술도 한다. 비명은 쏟아지지만 그 울부짖음은 결국 살고자 하는 통성기도요, ‘저승사자’를 향한 경고의 외침이 됐다.

그의 몸무게는 70㎏ 후반대이던 것이 54㎏으로 줄었다. 항암치료를 시작하자마자 머리털이 빠지기 시작해, 최근엔 아예 밀어버렸다. 함암 치료을 시작하면서 생긴 당뇨병으로 인해 배에 인슐린 주사를 달고 산다. 현재 3차 항암치료를 마쳤다. 진성은 “담당의의 경과가 좋다는 말을 들으면 너무 기분이 좋다”며 복귀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그는 5월달쯤 항암 치료가 마무리도리 것으로 예측했다.

■“곧 ‘안동역에서’ 취입 4주년…노래 열정 샘솟아”

진성을 스타덤에 올린 트로트 가요 ‘안동역에서’는 오는 4월 24일로 취입 4주년을 맞는다. 이 노래를 만난 것은 무명의 긴 터널 속에 머물 때다. 그는 “‘땡벌’ ‘남자라는 이유로’를 만든 작사가 김병걸의 요청으로 안동가요모음집에 있던 이 노래를 부를 기회를 잡았다”며 “나훈아의 ‘어매’를 만든 정경천의 편곡으로 내 노래가 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게 2013년의 일이다. 앞서 2005년 ‘태클을 걸지 마’로 무명 탈출의 서막이 열렸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는 살려고 해도 살길을 찾을 수 없다.

그의 무명시절은 기구한 운명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3살 때 집나간 부모님 탓에 동냥젖으로 컸고, 7~8살 때는 친척집을 전전하며 눈칫밥을 먹었다. 10대가 되어 서는 유랑극단을 쫓아다녔다. 다행히 ‘트로트 신동’이란 소리를 들어 노래를 부를 기회는 적지 않았다”고 자신의 삶을 솔직 고백했다.

1960년 생인 그는 마흔이 훌쩍 넘어 그나마 가수란 이름을 붙일 수 있었고 50살이 넘어서야 ‘인생 노래’를 만났지만 또다시 암초를 만났다. 진성은 “억울했고, 불안했지만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다짐했다.

진성은 “탤런트 김성환 형님은 아침 저녁으로 걱정 어린 전화를 주시고, 어머니나 다름 없는 전원주 선배님의 걱정도 날 민망스럽게 한다. 축구동호회도 같이 하는 희극인 남보원 형님도 뵐 면목이 없다”며 “이분들도 고맙지만, 늦게 나를 만나 자식도 없이 병수발을 혼자 도맡아 하는 아내에게 정말 미안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꼭 재기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안동역은 2018년 복선화로 청량리역까지 지금보다 더 생생 달린다. 진성의 ‘안동역에서’도 그의 복귀가 가시화되면 또다시 기적 소리 당당히 울리며, 거침없이 중앙선을 달릴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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